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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Jun 05. 2019

간사이 지역에서 가장 산뜻하게 아침을 맞는 법

이른 오전의 아라시야마 산책

도시로 여행을 가면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아침에 딱히 할 것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맛집들은 문을 닫아걸고 있고 쇼핑을 하려 해도 갈 곳이 없다. 성이나 공원, 유적지는 지겹고 지난밤 취객들의 지저분한 흔적만이 남아있는 도심 속 음침한 골목을 거닐고 싶지도 않다. 오사카나 간사이 지역에서 그런 아침을 맞을 때는 조용히 기차를 타고 사가 아라시야마 역으로 향한다.

사가노유 외부 전경과 내부 인테리어: 목욕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면 간단히 모닝커피를 한잔 하고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치쿠린을 산책하면 되지만 배가 고프다면 역 주변을 적당히 산책하다가 사가노유에 들러서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사가노유는 기존에 동네 목욕탕이었던 건물을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카페로 개조한 가게이며 현재 아라시야마에서 가장 유명한 업소 중 하나이다. 식사 메뉴는 카레, 팬케익, 파스타 등 잡다하게 다양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지만 의외로 맛도 괜찮은 편이다.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대나무 숲 산책을 시작한다. 평일이지만 치쿠린은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편이다. 고층건물 대신에 대나무가 양측으로 일렬로 늘어선 강남대로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고요한 대나무 숲이라는 수도승에게 어울릴 법한 장소와 그곳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의 번잡스러움 사이의 괴리감이 불편하다면 가볍게 고개를 위로 들면 마음이 다소 평안해진다. 과장과 허세가 섞인 발언이라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치쿠린은 그 정도의 무게감을 가진 곳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몰려들어도,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들지라도 대나무 숲은 마치 자연 속 도서관처럼 나름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늘 유지한다. 사진기를 어느 각도로 틀어도 사람이 찍히지 않게 하는 것이 어렵지만 사진 한 장 예쁘게 찍는 것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당연하지만 여행에서 늘 지켜지지 않는 진리가 여기에서는 확실히 유효하다.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다면 노노미야 신사와 텐류지까지 돌아보고 천천히 반대 방향의 도게츠교까지 걸으며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특히 텐류지는 사계절 그 어느 때에도 풍경이 예쁘고 그 규모도 크기 때문에 불교 사찰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필히 방문해야 할 명소이다. 정원을 들어가는 데에는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여유를 갖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을 때에 후회가 없을 만큼 잘 정돈된 정원과 연못의 풍경이 관람객에게 만족감을 준다.


텐류지를 나와 도게츠교로 돌아가는 길 옆으로는 카츠라 강이 흐른다. 뱃놀이를 유유자적 즐기는 커플과 가족단위 관광객들 사이에서 MT를 온 듯한 대학생들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테마를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부르며 전투적으로 배를 몰고 있다. 평소 같으면 ‘위험하다, 시끄럽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등의 이유로 눈을 찌푸렸겠지만 장소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주는지 그냥 귀엽다는 생각만 든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라시야마 역에서 토롯코 열차를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장 좀 보태면 호그와츠로 가는 열차 같기도 한 형태의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기차에 탑승하면 아라시야마의 예쁜 풍경을 앉아서 즐길 수 있다. 내세우는 슬로건이 ‘로맨틱 열차’이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더 느리게 달린다는 장점도 있으니 편안한 여행을 선호하는 이에게 적합하다. 단, 좋은 자리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미리 역에 도착해서 자리를 예매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아라시야마는 교토의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구석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당일치기 교토 여행을 선호하는 관광객들은 시간에 쫓겨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아라시야마에 들른 사람에게 교토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느냐 라고 물어보았을 때 거의 항상 일 순위로 입에 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굳이 교토에서 숙박하는 여행객이 아니라도 오사카 시내에서 1시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하고, 미리 잘 찾아보고 가면 맛집에서의 식사와 당일 온천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여행지이니 간사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쯤은 들르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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