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30대 후반에 다시 게이머가 되다

'청장년 전자오락 견문록'의 시작

by 핵보컬

스스로 생각했을 때 지금의 나는 참 애매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MZ 세대의 범위를 좀 느슨하게 규정했을 때 그 꼭대기층의 경계선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그 범위 자체가 마치 '수도권 사람'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느낌인지라 어디 가서 농담이라면 몰라도 진담으로 "나는 MZ 세대다!!"라고 외치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하진 않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청년'의 범위를 공식적으로 만 39세까지 확대했다는 얘기를 듣고 '아, 나도 다시 청년이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봤자 그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청년으로 칭하기에도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대한민국의 교회에서는 대학교/청년부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늙고, 그렇다고 다른 어르신들과 묶기에는 좀 너무 젊은 애매한 이들을 '청장년'이라는 말로 하나로 모아서 분류하는데, 어쩌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 내가 속하게 될 나이 그룹을 칭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 이 '청장년'이라는 용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은 여전히 청년인 것 같지만 실제로 중장년에 버금가는 무게의 책임감이 부여되는 나이, 실제로 청년들과 어울리고 놀기에는 왠지 조금 주책없게 보일 수 있는 나이, 그렇다고 해서 진짜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서 착실하게만 살다 보면 정말로 폭삭 늙어버리는 나이가 지금 나와 주변 또래들이 속한 그룹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속한 청장년 속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니, 청장년속이라는데 왜 이렇게 다들 늙었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되짚어보니 그분들 당시 나이가 지금 나보다 젊었다.


어쨌든 청년이라고 하기엔 좀 나이 들고 장년이라고 하기엔 좀 젊은 만 38세에 나는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한창 '스타크래프트'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 류의 게임을 한창 즐기던 10대, 20대 시절, 심지어 '리그 오브 레전드(롤)'가 국민게임에 가까울 정도로 플레이되던 30대 초중반 때도 손도 대지 않았는데 뒤늦게 게이머가 되었다. 물론 가정도 챙겨야 하고 일도 하고 밴드도 하고, 심지어 글까지 쓰고 있으니 스트리머나 매니아들 수준으로 열심히 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그 외의 시간에는(?) 꽤나 열심히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한 때는 온게임넷으로 게임 중계를 시청하거나 트위치 혹은 유튜브로 다른 스트리머들의 게임 영상을 보는 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요즘은 나도 유튜버로 게임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꽤나 고정적으로 시청하기도 한다. 이전엔 '게임, 그런 거 즐기는 건 현실 도피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치면 나도 꽤 열심히, 자주 현실을 도피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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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릴 때부터 아예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세대에서 단 한 번도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는 건 청학동에서 자란 게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했을 수준으로, 어린 시절에 아케이드와 콘솔 게임, PC 게임의 대중화가 절정에 이르렀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주 어릴 때는 MS-DOS로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인돌 게임'이나 '남극탐험' 같은 게임을 즐기기도 했고, 조금 나중에는 '울펜스타인', '둠', '듀크 뉴켐' 같은 슈팅 게임도 꽤 열심히 했다. 집에 콘솔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세가 제네시스(일본에서는 '메가드라이브', 국내에서는 '알라딘보이'라고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가 있어서 자주 플레이했고, 고학년 때와 중학교 시절 초반에 닌텐도 64로 친구들이 집에 오면 '마리오카트 64'를 꽤나 즐겼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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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 정도가 가장 많이 즐긴 게임들이었던듯...?

대략 중학교 2, 3학년 시절부터 게임과 본격적으로 멀어지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첫 번째 이유로는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게임이 나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그러한 게임들을 전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Command and Conquer',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창세기전', '문명' 같은 게임들을 당시 친구들이 좋아했는데 마리오나 소닉 같은 류의 게임 위주로만 즐겼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고 여기에 빠져들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조금 해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도무지 시스템에 적응할 수가 없었고,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놀러 가도 몇 번을 시도해도 처음 하는 친구보다도 못하게 되다 보니 전혀 즐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영화나 음악에 좀 더 빠져들었고, 게임이라는 취미는 그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접어버렸다. 이후에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밴드를 시작하게 되면서 실제로 일과 밴드를 병행하며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기에 나에게 있어 게임이란 것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남의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게임을 멀리한 지 20년이 넘은 어느 날, 갑자기 꿈에 마리오가 나왔다. 갑자기 등장한 슈퍼마리오가 내 눈을 쳐다보면서 "우리가 예전엔 참 즐거웠는데, 그렇지? 근데 요즘의 너는 날 아예 잊어버린 것 같아."라는 류의 말을 했고,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마리오카트를 하다가 잠에서 깼다. 그날 바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집 주변에 가장 가까운 일렉트로마트로 달려갔고, 닌텐도 스위치 섹션 앞에 도달한 이후에야 뭔가 겨우 이성을 찾았다. '아니, 무슨 꿈에 마리오가 한 번 나왔다고 해서 몇십만 원짜리 게임기를 바로 구매를 해? 사고 나서 얼마 안 하고 또 접을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에 그날은 자그마한 마리오 피규어 정도를 사는 것으로 스스로와 나름의 타협을 하고 돌아온 후, 한참 후에 함께 밴드를 하고 있는 우리 베이시스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자기가 갖고 있는 스위치를 플레이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무기한으로 빌려줄 테니 가져가서 해보라고 흔쾌히 내게 넘겨주었다.

221006163039-super-mario-bros-movie.jpg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오랜만에 해본 마리오 게임들은 내게 신세계와도 같았던 것 같다. 이전 닌텐도 64 시절이 마지막이었으니, 그 이후에 눈에 띄게 향상된 그래픽과 다채로워진 게임플레이로 '이게 내가 알던 마리오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의 적응 기간만 거친 후에는 너무나도 재미있게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포켓몬에도 빠지고, 이런저런 다른 게임들을 조금씩 해보다가 이후에는 내 소유의 스위치 기기를 새로 구매하게 되었고, 더 다양한 다른 게임들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결국 몇 개월 전에 플레이스테이션 5까지 장만하면서 두 콘솔을 오가며 여러 가지 게임들을 즐기고 있다.


사실 게임이라는 것은 내게 취미로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어느 정도 음악을 많이 듣고, 노래도 나만의 스타일로 어느 정도 잘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음악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파고들 수 있었고, 어릴 때 본 영화 대부분 그 스토리와 내가 느꼈던 감상들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주조연급 상관없이 배우들 얼굴과 이름도 잘 기억하는 편이며, 일단 감상한 작품의 양 자체가 꽤 적지 않기에 어느 정도 영화 감상에 있어서 남들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부분에 있어서도 내가 잘 못하는 부분,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쉽게 파고들지도 않고, 어디 가서 가볍게 떠들어대지도 않는 편이다. 그러나 게임은 좀 다르다. 플레이를 다시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게임 실력은 평균을 훨씬 밑도는 편이고, 20년이 넘는 공백이 있기에 게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극히 적다. 아마 내가 잘 못하고 잘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기고 있는 유일한 취미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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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음악이나 영화, 또는 여행에 비해서도 게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이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다. 잘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 함부로 떠드는 것은 보는 이에 따라 경박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려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게임을 꾸준히 즐겨온 이들과 다르게, 뒤늦게 시작해서 빠지게 된 나 같은 늦깎이 게이머만의 독특한 시각, 새로운 관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읽는 사람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나와 비슷하게 예전부터 게임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어떤 선입견을 가진 누군가의 편견을 좀 완화시켜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쓰게 될 글들에 대해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열린 마음과 관심을,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분들에게는 넓은 아량을 부탁드리며, '청장년 전자오락 견문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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