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stal Lake - Helix
이제 적은 나이는 아니기에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면 열린 마음을 가져보려고 노력을 해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좀 더 폐쇄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 특히 최근의 메탈 음반들을 들을 때 이러한 배타성이 더 심해지는데, 이는 얼마 전까지의 씬의 트렌드에 내가 약간은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윈 페달을 활용한 난폭한 드러밍이나 모든 악기가 빠졌다가 들어오며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브레이크, Korn의 7현 기타 다운튜닝은 우스울 정도로 지하 땅끝까지 내려가 암반수까지 퍼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히 다운튜닝된 극저음의 기타 사운드, 소위 Meshuggah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djent라는 용어로 불리는 그 음악들의 대부분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다운튠이나 트윈페달, 브레이크는 사실 나도 좋아하는 음악의 요소이고 그것을 잘 활용하면 정말 좋은 메탈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단, 그것이 과해지고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면서 근래의 메탈 음악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치 '호러 영화의 고어 장면들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 무한으로 잔인하게 만들자'라는 느낌으로 제작된 것 같은 소위 말해 'torture porn(고문 포르노)'라고 불리는 과하게 잔인한 공포영화들, 매운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려서 먹는 행위를 즐거움이 아닌 도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괴식들이 특정 매니아들은 공략할 수 있지만 하나의 수준 높은 문화로서 대접받을 수는 없듯이, 엄청난 난이도로 만든 곡들을 연주하고 브레이크 타이밍에 맞추어 쉴 새 없이 점프를 하며 관객 앞에서 뽐내는 밴드의 공연이나 음악은 처음 봤을 때 감탄을 자아낼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한 음악이라기보다는 현란한 묘기로 느껴지게 만들며 피로감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음악 중에도 예외적으로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도 있는데, 모던 메탈이라 부를 수 있는 근래의 밴드들 중에 항상 나의 귀를 잡아끄는 팀 중 하나가 일본의 밴드 Crystal Lake이다.
Crystal Lake의 음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들이 다양한 장르를 맛있게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현란하고 난폭한 연주와 끊임없는 괴성으로 듣는 이를 공격하고 압도하는 음악을 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메탈 쪽에 관심이 있는 리스너라면 이들의 음악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요소들 중 적어도 한 두 개 이상은 즐길 부분이 있는 것이 이들을 다른 밴드와 차별화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멤버 개개인의 테크닉이 뛰어나고 앨범의 사운드가 훌륭한 것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부분이다. 메탈코어의 축을 기반으로 비슷한 서브장르의 타 밴드의 음악에 비해 선율이 살아있는 기타와 베이스라인, 시종일관 조이고 때려 부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씩은 느슨하게 풀어주는 유연한 그루브와 비트, 그로울링과 스크리밍뿐만 아니라 랩과 멜로디에 심지어는 Korn의 Jonathan Davis나 Disturbed의 David Draiman처럼 스캣 창법도 구사하는 다재다능한 보컬 등으로 인해 Crystal Lake의 음악은 다른 팀에 비해 청량하고 깔끔하고 다채롭게 느껴진다.
앨범 'Helix'는 이들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을 때에 만들어낸 훌륭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앨범은 쉽게 말하자면 '조진다', '신난다', '비장하다'의 세 가지 모드로 진행된다. 개개의 트랙별로 한 가지의 모드만 채택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의 트랙은 이 중 두 가지 이상의 모드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을 준다. 앨범의 2번 트랙인 'Aeon'은 러닝타임 내내 청자의 고막을 조지는 데에만 집중한 공격적인 곡이고, '+81'은 림프비즈킷이나 비스티보이즈의 메탈코어식의 진화인가 싶을 정도로(실제로 Crystal Lake는 자신들의 공연에서 림프비즈킷과 비스티보이즈를 이따금 커버하기도 한다) 신나게 분위기를 띄우는 것에 곡의 진행이 집중되어 있다. 6번 트랙인 'Outgrow'는 시종일관 공격성을 띄는 앨범에서 숨을 잠시 돌릴 수 있는 비장하면서도 차분한 트랙이다. 그 외에도 'Lost in Forever'는 나름 감성이 느껴지는 멜로디와 공격적인 비트가 잘 조화되어 있는 곡이고, 'Devilcry' 역시 비장하고 차분하게 시작하지만 초중반부터는 밴드 특유의 다채로운 공격력(?)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앨범의 백미는 11번 트랙 'Apollo'로 이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큰 스케일의 곡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훌륭한 곡 구성과 보컬 Ryo Kinoshita의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청자를 강하게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아쉽게도 현재의 Crystal Lake는 기타리스트 Shinya와 보컬 Ryo의 연이은 탈퇴로 이제는 이 멤버들 간의 이전 같은 상호작용과 케미스트리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새로운 멤버들을 선발한 후에 재기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미래가 어떨지는 새 앨범이 발매되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훌륭한 기량으로 우리에게 그간 좋은 음악을 들려준 현 멤버들과 전 멤버들의 미래를 조용히 응원하며 이들 각자의 새로운 결과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