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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Aug 24. 2023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 공짜, 비밀, 정답

'나는 돈을 잃었지만 남편을 얻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퇴직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때쯤 우리는 마주 앉았다.

남편은 죄인이 된 모습으로 나는 죄인과 함께 사는  동반자로...

퇴직 한 달 후 아이들과 퇴직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인 것 같다. 늘 자신의 문제가 먼저였던 사람이다.

퇴직후  바뀐 삶과 함께 찾아온 수많은 일로 바빴던 사람은  늘 화가 나 있었고, 쫓기듯 살고 있었고, 가족을  피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퇴직 전 나와 상의 없이 동료들에게 빌린 돈을 정리하고 나에게 약속한 퇴직금의 금액을 맞추기 위해  당장 이익을 내는 주식과 코인에 투자했다고 했다. 처음엔 잘 되고 있었지만 내리는 주식과 나락으로 떨어진 코인에 점점 조급해지는 마음에 더 투자를 했던 게 자신의 실수라고 했다.

그리고 지인분께 빌린 돈을 다시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고 얘기했다.


어떻게 해도 이 황당한 지금의 사태는 나의 예상에도 없는 일이었다

한 푼도 진짜 한 푼도 없냐가 나의 물음이었다.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진쨔냐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묻고 또 물었다.

어떤 의심을 하고 어떤 감이 왔어도 이보다 더한 시나리오는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퇴직후 혼자의 시간을 주기 위해 공간을 내줬던 사무실에서 모든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다.


아~ 아~ 미련한 그는 아직도 잃은 돈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어도였다.

내 옆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한심한 사람이란 게 나를 더 절망시켰다.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막연하게 알면서도 실체가 되어 돌아면 치명적이 되는 순간순간을 나는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은 넘어섰고 미칠수 있다면 미쳐버려서 이 상황을 접고 싶었다.


아니 앞으로 버티고 살 10년이 끔찍했던 것 같다.


장사로 10년을  고비고비 넘겨며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산 날들이였다. 퇴직후 나의 진짜 독립으로 충분한 보상을 얻고자 했던 내가  또 기약 없는 10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뭐든 아는 것이 무섭다고 했던가?

앞을 모르고 시작한 장사는

오늘 괜찮으면 내일은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긴다. 아침이 괜찮으면 몇 시간 뒤에 또 다른 힘듦과 마주 한다.

어떤 날은 사람 일수도 있고 어떤 날은 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날은 번 아웃이 되어버린 자신 일수도 있다. 가장 힘든 건 번 아웃이 오고도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여력조차 안 되는 날이다.


퇴직 전에는 절실함은 내려놓을 수 있는 무기였는데 모든 상황에 절실함까지 더해져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부터 발톱 한 개 한 개 까지 돌덩이 같은 고뇌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장사를 하며 살았던 10년 세월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였다.



내가 살면서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을까? 내 머릿속 기억의 첫과 끝을 낱낱이 끄집어내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는지 그래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찾고 싶었고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내가 바보처럼 살았던 걸까? 똑똑하지 못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신은 나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이 고통을 주는 걸까? 아무리 뒤지고 뒤져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원망이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죽고 싶었다. 차라리 남편의 선택권 안에 내가 있었다면 덜 억울했을까? 0.1%도  참여하지 못한 선택권 안에서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이상한 예감은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된 나였다. 뉴스 속 주인공이 된 나는 감당하기 힘든 절망을 가눌 수 없어 날마다 바다를 찾았다.

휴가의 끝자락에 찾아간 바다는 인적이 드물어서 혼자서 울기 참 좋은 장소였다.

날마다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밀려오고 축척되기를 반복했지만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될까 염려스러운  자식이 있어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오늘 자고 일어나면  깨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50!! 어른이 되있어도 괜찮은 나이...

나보다 더 힘겹게 살다 늙어버린 친정 엄마를 찾아가 나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남편의 퇴직 후 따가운 시선이 함께하는 좁은 동네서 내 가족사의 치부로 남을 이 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내 몫이리라...


그러기를 몇 주... 어느 날 아침 메일 속 좋은 글이 나를 살렸다.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

공짜, 비밀, 정답이었다,

우리가 은 돈이 판이 바뀌어 더 많은 부를 주고 내 것이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지금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나와 남편은 지금껏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50이 되어가는 나는 남은 날이 많을까 죽을 날이 가까워 있을까?


몇 주 후 남편과 다시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자세히 본 남편의 몸과 얼굴은 반이 되어있었다.

'아 돈이 뭣이라고...'


"내가 신이 아닌데 너를 용서할 수는 없어. 그냥 우리는 부모기 때문에 부모가 없는 삶이 어떤 건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서로를 지켜보는 걸로 하자."


"너의 퇴직금으로 우리가 수익을 얻었다면 우리는 무모한 도전을 또 했을 거야.  

어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로또를 꿈꾸듯 주식을 사고 코인을 산 게 너의 인생의 큰 실수야."

"우리는 이 만큼이 우리의 몫이고... 갚을 수 있게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언젠가 답 없는 삶에도 빛은 오지 않겠니? "

"당신이 좌절에 끝에서 삶을 놓지 않아 다행이고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야"

그날 남편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나와 약속했다.

술을 끊고 다른 삶을 살면서 사춘기가 된 아이들과 회복할 시간을 가져보겠다 했다.


나는 돈을 잃었지만 남편을 얻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딱 일주일 술을 끊었다, 기분 좋은 어느 날 남편은 다시 술을 마셨다.


'똥을 참지'

'모르겠다. 약속은 깨라고 있고 그거라도 해라' '나도 모르겠다. 아프지만 말아라. 아직 우리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많단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은 아직 우리는 사업가를 할 만큼의 그릇이 안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살면서 쿨하지 못하게  남편에 대한 원망은 늘 존재할 것이다.

아마 힘들 때마다 잃은 것들에 대한 미련도 밀려올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힘들어하는 딸에게 늘 이야기한다.

"~야 다 산 거 아녀. 다 산 거 아니다."라는 엄마의 말이

어느 날  정답처럼 다가올 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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