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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Aug 27. 2023

 '1988' 서울 쌍문동!!남편의 어린시절이 있다.

 흙수저는 부딪히기만 해도 한 줌의 흙이 된다

남편이 횟수로만 20번도 넘게 본 드라마'1988'을 보며 말한다.

'그때가 그때인 줄 알았는데 지금이 그때더라고...''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신세한탄 하는 남편을 향해 쏘아보며 이야기했다.


"뭔 소리야? 그냥 재미있게 봐. 그리고 말할 때 돌려서 얘기 좀 하지 마"


(그때가 가장 최악인 줄 알았는데... 지금이 더 최악이라고...)

난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그때라고 얘기한건 이미 겪었기 때문에 그때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지금은 우리가 이겨내야 할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인 거다."


"술이나 끊어라. 나에겐 가장 힘을 내야할 시간에

술을 먹는 당신의 모습이 최악이다."


술만 마시면 이성보다 감정이 살아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남편에게 인상을 쓰며 이야기했다.


나의 말은 공중으로 사라지고 남편은 보란 듯 식탁 위 남편 숟가락 옆에 늘 함께하는 소주 '화이트'를 말없이 소주잔에 한잔 가득 채운다.

쫄~쫄~쫄!!

소주 따르는 소리마저 우프다.


'1988' 서울 쌍문동!!

남편이 살던 동네이다. 지금도 TV에서 자주 방영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TV에서 그 프로가 나오기만 하면 새로운 드라마를 보는 사람처럼 빠져서 보고 있다.


부모님을 모두 잃은 남편은 나보다 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남편의 어머님은 아프셨지만 치료가 안 돼서 늘 기침을 달고 사셨다. 어린 시절 어느 날  머리맡에 엄마의 기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엄마가 돌아가셨다 했다.


살면서 그때 잠들었던 자신을 늘 자책했고 기침소리를 듣고도 잠들고 있는 엄마를 깨우지 않은 걸 힘들어하고 심지어 괴로워하기도 했다. 아빠를 잃어보고 동생을 잃어본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도 공감했다.


그리고 시아버님은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아들을 위해  혼자서 지내시다가 남편이 초등학교 때 어느 날 어디로 가셨는지 사라지셔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신다. 시아버님의 형제들과 친적들 경찰서 지인들까지 연 줄을 대서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했다.

남편의 고모님이 자신의 동생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용하다는 스님을 찾아가도 이 세상분이 아니라는 얘기는 없었지만 어디에 있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먹구름 같은 인생사는 예고도 없이 벌어진  영화 같은 일이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아이가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당장 잠잘 집을 걱정해야 하는 상처를 간직한 아이가 되었다. 몇 달 동안 주변 친척분들의 도움으로 한동안 여기저기 머물다가 작은어머니가 흔쾌히 허락하시면서 작은아버지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사촌 여동생들과  성별이 다른 자신 때문에 따로 방을 마련해 주시고 도시락까지 싸주던 작은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핑계 삼아 작은 집을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과  결혼 후 나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말은...

"나는 학교 다닐 때 항상 책가방과 짐가방을 같이 가지고 다녔어. 어느 집에 머물게 될지 몰라서..."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을 술만 마시면 이야기하게 돼서 이제는 안주거리처럼  무용담이 돼버린 이야기이다.


흑수저를 도금을 해서라도 금수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다. 남편 또한 자신이 만든 것들을 잃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철없던 때 힘든 처지를 알아주는 동정심도 싫었을 것이고 대놓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보란 듯 보여주고 싶고... 보란 듯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겠지.


S중공업 현장직 노동자들은 주어진 환경에 지배당해서 똑똑함을 발견조차 못한 채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중 남편도 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무언가 보여줘서 훗날 그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고 싶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욕심을 넘어선 도금은 쉽게 벗겨지기 마련이고 흙 수저는 부딪히기만 해도 부서지기 마련이다.

금수저는 낡거나 구부려져도 없어지지 않고 그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흙수저는 조그만 돌멩이로 내리 치기라도 하면  모두 한 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냥 흙이다.


그 한 줌의 흙은 다시 만들면 된다. 더 곱게 다져서  물을 넣어 반죽을 해서 다시 만들면 된다.


처음부터... 천천히.... 흙 안에 단단한 무언가를 넣고 틀을 만들어 예쁘게 다듬어 불속에 구우면 전보다 단단한 흙수저가 되는 것이다. 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흙수저는 어떤 색을 넣고 어떻게 정교하게 만드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 두 부부는 그 과정을 거치고 있으리라'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우리는 7년을 한동네에서 하던 가게를 내놓아야 했다.


세월이 무섭다고 일은 많아지고 고객도 늘었고 헛으로 다니지 않았던 회사의 경험으로 고객분들의 늘 좋은 피드백은 따라오고 있었다.


남편의 퇴직과  계산에도 없던 코로나시대에 받았던 대출의  원금 상환이 맞물리면서 장사로 벌어들인 돈은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 앞으로 되어있던 집 대출이 내 몫으로 오고 많은 것들이 내 앞으로 당면하게 되는 현실적 문제가 되면서 저금리 대출을 갚기 위해 고금리 대출을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은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다시 조선경기가 호황기라 하지만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월급쟁이들은 늘 같은 상황이이다. 체감경기의 바닥으로 지방 소도시는 일거리리 보다는 주머니 사정이  충분치 않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부동산 경기회복이 관건인데

지방까지는 오지 않은 허상이 존재하는 회복이었다.


다리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대 도시로 눈을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가게도 정리하게 되었다. 7년을 그곳에서 일하던 나는 희망만 품었을 뿐 현실은 암담했다.




입주 전까지 몇 개월 묶어놔야 하는 공동구매 행사비가 없어서 예약받아야 하는 입주 아파트 공동구매를 들어가지 못했다.

소 상공인을 2번 울리는 기획사에 대한 불신이 첫 번째이기도 해서 나는 이참에 반항을 하기로 했다.


 계획된 일이 없다는 건 사업에서 불안함이다.

하지만 이참에 내 의지를 꺾는다면 난 불만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황은 자연스레 흘러갔지만 돈이 있음에도 내 의지로 들어가지 않은 게 아니라 없어서 못하는 상황은 비참하고 우리의 삶조차 움츠러들게 했다.

해야 할 목표치가 없어져 버린 남편은 절망한 사람처럼 우울해했고 힘들어했다.


커가는 자식이 있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어디로 간지 모르게 없어지는 통장의 잔고는 이 시대 40대 50대 중년의 삶이다.

남편은 불안함에 고민하다가 형편이 고만 고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봤지만 월급쟁이들의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포기했다.


새로운 사업 전환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모른다.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방향을 제시하다 보면 나 또한 그 방향을 위해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부모가 있으면 참 좋으련만'

나는 엄마가 있지만... 남편은 모든 것들을 혼자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70의 중반을 넘기고 있는 친정엄마는 자식의 입장에서 큰 병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다 큰 자식이 늙으신 친정엄마께 또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어제 보다 오늘이 더 힘든 것 같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비빌 언덕이 없다는 말을 절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신은 우리를 버리진 않으신 것 같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은 들어오고 있었다. 틈틈이 써둔 블로그글과 고객분들의 소개가 이어지면서 무의미한 10년은 아니란 생각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더디지만 조금씩 조금씩 일어서면서 내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 사업을 왜 하고 있는지... 내 문제와 내 것에만 집착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건조해져 버린 내 마음에 남들에게 진정 진심을 다해 베풀고 살았는지 돌아보면서 살아야겠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면 차라리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리라.'

그리고 나의 다짐을 위해 브런치에 자판을 두들겨 본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지금이 그때라고 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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