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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Aug 29. 2023

현장에선 직장보단 변비가 낫다.

화장실 2개를 모두 테이프로... 빨간 펜으로 사용금지 문구를...

지금까지 남편이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호 식품을 옆구리에 끼고 까치 머리를 메 만지며 현관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 자신의 고독을 즐기는 일이다. 여기서 기호 식품이란 우리는 흔히  '담배'라고 이야기한다.


이른 새벽

그 기호 식품을 습관처럼 마스터하고 나면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뛰면서 화장실로

직행한다. 40대가 넘어가면 본능에 충실한 배출 앞에서는 어떤 체면도 불사하는 게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다 큰 아이들과 학교 등교 시간이 맞물리면 화장실 2곳은  샤워소리와 변기 물 내리는 소리 그리고  아빠가 남기고 간 향기에 아이들 고함 소리가 뒤 범벅이 된다.


여느 집에나 있는 떠들썩한 아침

남편의 이른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마치면 시끌벅적한 아침 일상은 모두 끝이 난다. 

남편의 소화기관은 회사에서  원점을 딛고 다시 진행이 된다. 회사 식당의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배출을 요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근과 동시에  여유 있는 층을 찾아가서 본능에 충실하며 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다. 사원들이 움직이는 회사의 아침 화장실은 남편과 같은 장 운동을 겪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다른 장 운동에 목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퇴근 후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는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의 야비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자기는 회사 화장실을 사용하면 옆에서 힘주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색을 하며 왜?라고 반박을 했다. 나는 힘주는 삶을 누구보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럽기도 했다.

바로 모든 걸 배출할 수 있으니 조금만 애쓰면 살이 금방 빠지는 몸이 부러울 수밖에...

10대 시절부터 살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는 진심 직장이고 싶었다.


남편은 직장 나는 변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이가 태생부터 다른 장기관의 조직구조를 이해할 것인가? 성격도 이해가 안 되고 몸 안에 장기마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부는 왜 같이 사는지 인간세계에서의 손꼽히는 불가사의 중 하나 이다.



퇴사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남편은 현장에서  곧은 직장으로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만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위기는 여러 번 찾아왔다.


아파트 공사를 하게 되는 현장에서  집안의  화장실은 어떤 이라도 쓸 수 있게 배려를 해준다. 2개가 있다면 한 개라도 열어두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입주 전 청소 업체를 통해 깨끗하게 청소한 후 입주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당연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당연한 것들이 새 아파트에 꿈을 꾸고 있는 고객분들께는 다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쓸 화장실을 외부인이 먼저 쓰는 것을 싫어하셨던 고객님의  화장실 2개를 모두 테이프로 봉해놓고  빨간 펜으로 사용금지 문구를 떡 하니 붙여 놓았다.


공사 진행을 하던 남편은 36층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발견한 것은 그 집을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신호가 왔다.

화장실 2곳에 사용금지 문구도 신호가 온 뒤에 알았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태어난 이래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면서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3개나 있는 엘리베이터는 한 개는 이사로 잠긴 상태고 남은 2개는 하자팀과 인테리어가 공사 중인 팀들이 있어서 층마다 멈추게 된다.

멈춘  엘리베이터는 입주 현장의 사람을 한가득 싣고 오기도 하고 넘치는 자재들로  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복불복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배출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 장은 꼬이고, 뱃속은 나가게 해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나는 상태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상황이다.

한  사람의 장난으로 1층에서 50층까지 엘리베이터를 눌러놓고 층마다 서야 하는 그 절실함은... 우리의 머릿속은 간절하고 복잡한  문제는 뒷전이 되고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 있을 뿐이다.


입주 시기와 맞물려  우리나라 제2의 대 도시 안에  50층에 가까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1층으로 가는 건 이 상황에선 뛰어내리는 게 가장 옳은 선택지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사람을 나약한 존재로 만든다.

모든 상황이 여유 있는 상태라면 괜찮지만 그건 하찮은 바람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왼손은 장기를 붙잡고 오른손은 언제 분출할지  모르는 둔부를 가리고 있는 옷을 잡고 다시 튀어 집안의 로 들어왔다. 그리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사용 금지라는 빨간딱지를 떼고  모든 일을 마친 후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공사까지  깔끔히 마쳤다.


물론 티 안 나게 변기의 붙여놓은 문구까지 붙이고 완벽하게  마무리한 상태였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얼마나 철저하게 봉해놓았는지 그 문구를 떼면서 본능적인 절실함에 사나이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고객님께 전화가 왔다.

"혹시 화장실 썼어요?"

나는 일단 네라고 하면 어떤 사태가 될지 몰라 모르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누가 똥을 싸고 물도 안 내리고 갔어요<<"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나를 몰아붙였다. 마치 당연히 우리가 한 행동이란 걸 눈으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단정 지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말은...

"이럴까 봐 딱지까지 부쳐놨더니 cctv로 확인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일단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하고 한숨을 쉰 뒤... 감정을 추스른 후 다시 고객분께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저희 사장님은 안 쓰셨다는데요? 입주민센터에 화장실 있어서 집안에 화장실을 쓰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그랬더니 하자팀 왔다 가고 우리가 오늘 처음 들어갔다는데 그럼 누구냐고 따졌다.

"잘 모르겠지만 저희 남편은 변비라서..."까지 말이 나왔다.


어찌어찌 전화를 끊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향해 고객님의 말처럼 그렇게 처리하고 나왔냐고  따져 물었다.

일단 씻고 이야기하자는 남편을 붙들고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인지 복잡한 심정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완벽히 모든 걸 처리하고 왔다고 답하고 내가 의심이 생길 만큼 크게 화를 내며 반박을 했다.

집에서도 화장실 청소 한번 안 해주고 흔적은 모든 내 몫이 되었던  남편의 과거 행적을 떠올리며 나도 맞 받아쳤다. 여기서 그게 왜 나오냐며 남편은 열을 올렸다.

또 나는 " 화내는 거 보니 고객님 말이 맞네 너지? 너 맞지?"라고 돼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직장과 변비 사이를 오가며 그리고 과거사까지 들추며 유치한 싸움을 했다.


되돌려 생각해 보면 고객과의 전화통화에서 추스르지 못한 나의 감정보다 퇴직 후 화려할 줄 알았던 남편의 모습이 그날따라 더 초라하게 보여 화를 냈던 것 같다. 퇴직 후 3분의 1이나 줄어든 몸무게로  야위어 버린 체구, 검은색 옷 위로 하얗게 쌓인 먼지, 듬성 등성 보였던 흰머리 위로 앉은 회색 석회가루 그 모습이 애잔해서 남편에게 비수를 꽂은 건 아닐까 한다.


알 수 없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자정 12시 넘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북을 들으며 우리 집 강아지 아띠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눈물이 자꾸 났다.

'희망퇴직 후 희망이 있는 게 맞는 건지...''고된 중년은 언제쯤 끝나는 건지...'

그리고 후회했다.

'고객님보다 남편의 말을 믿어줬어야 하나'라고...


장사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주변에 부부끼리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우리 부부처럼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힘들게 버터온 이들이 가끔씩 무너지는 때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퇴직한 후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은 인스타에 올라온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 사진과 잘 나가는 친구들 사진을 보면 자신의 늘어진 티셔츠에 김칫국물이 잔뜩 묻은 모습이 초라해서 눈물이 나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임에 잘 안 가게 된다고...

 그 말에  나도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시공사진 외에 SNS를 잘하지 않는 나도 한 번씩 보면 주눅이 드는데 누가 얼마나 멘탈이 강해서 움추러들지 않을까? 아무리 거짓된 삶이 반이라고 해도 보이는 사진 속에서는 그들은  웃고 있고 행복해하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 야~^^ 식당에 손님이 남기고 간 빈 그릇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 누가 봐도 우리도 장사가 잘되고 대박 나는 집 아닐까?"하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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