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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Sep 13. 2023

우리의 현장은 당신의 공간보다 아름답다.

가슴으로 울고 온몸으로 말하는 부부의 뜨거운 밤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여자:"내가 니랑 여기를 다시 오면 짐승 새끼다."" 버스를 타고 가든 내 알아서 할낑게 차 문이나 열어<<"


남자:"이런 미친, 더위 묵었나? 니 오늘 내 손에 죽어 볼래?"


여자:"그래 죽여라<< 죽여<<."

"내가 미쳤지. 이 더위에 지 고생할끼라고 도시락 싸 댕기면서 따라다닌 게 무슨 시다바리로 보이는가"  

"야!! 차문이나 열라고<<"


 여자가 크록스로 보인듯한 신발을 신은 뭉뚝한 발로 바퀴를 찬다. 아마도 차에 다른 곳을 차면 손상이 가서 인 것 같았다. 저런 순간에도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들의 모습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발목이 부러져라 차바퀴를 차며 화풀이를 한다.

나는 안타까움에 '아플 텐데...'혼잣말을 했다.


잠시 후 '삑삑' 리모컨으로 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울면서 차 안에 물건을 던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연신 흐느끼면서... 폐쇄된 주차장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흐느낌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러더니 잠시 후


"이~씨!!"....


"퍽"  " 아!!" 여자가 상체에 반쯤 뒤 돌아 남자를 한번 째려보더니 머리를 만지며 뒤 돌아 다시 운다.


울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가던 여자의 실루엣은 점점 점으로 멀어지고 차가 다니는 주차장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깜깜한 실루엣에 확연히 보이는 것은 위로는 하얀색 머리와 아래로는 차바퀴를 차던 뭉뚝한 하얀 크록스 신발의 잔상만 남기고 주차장은 조용해졌다.


'머리에 남은 건 뭐지?' '분명 검은색 머리카락이었는데....'


뒤 돌아가려는데 남자가 절뚝거리며 여자 가던 길을 따라 걷다가 한발 뛰기로 다시 그 길을 간다.

'턱'' 턱" " 턱' 그리고 하얀색 뭉뚝한 크록스 신발을 주워 신는다.


'아~그래서 머리카락이 그랬구나'


그리고 남자는 차로 다시 와서 차 앞문을 열고 운전대에 앉더니 운전석 문을 닫고 여자가 갔던 길을 따라 올라간다.


나지막이 멀리서 "타!! 타라고" 남자로 보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됐을까?''탔을까'


그리고 살짝 웃었다. '

'만나서 데리고 가셨겠지...'

 


대도시 재개발 지역의 적은 용적률은 많은 세대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높이 높이 집을 짓는 것 외에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고층의 아파트 사이로 입주가 시작되면 인테리어 업체들이나 입주품목의 다양한 업체들을 엘리베이터 전쟁을 벌인다. 우리 또한 그 엘레이터에 짐을 싣기 위해서는 내리는 방향은 포기하더라도 오르는 방향은 더 많은 공간을 위해 더 깊숙한 지하로 내려가서 집을 싣는다. 그래야 시작점이라도 여유 있게 가면서 짐을 엘리베이터 안에 실을 수 있다.

입주하는 아파트 지하 5층까지 있는 현장의 작은 공간에  넣어둔 짐을 싣고 있는데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 여자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욕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데이트 폭력은 아닐까? 아님 집을 보러 왔다 싸우는 것일까?'

언론에서 본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며 미로 같은 주차장을 걸어서 걸어서 싸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실루엣이 많이 본듯한 사람들 이였다.

혹시나 마주칠까 가장 어두운 기둥에 기대어 있었는데  Y 사장님의 부부싸움 현장을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아파트 공동구매 현장을 가다 보면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아닌가 싶다.

'나한테만 왜?'라는 생각이 들 때 이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 사연 없는 집은 없구나'라는 생각에 또 하루를 살게 해주는 버팀이 되기도 한다.


우리처럼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을 꿈꾸시던 분들도 있고,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다가 코치로 승승장구하며  식당을 운영하다가 모든 재산을 잃어서 이곳 일을 시작하신분도 있다.

서울에서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혼자서 내려와 장사를 하시는 분...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청소를 하며 딸아이의 아이돌 꿈을 키워주고 계신 분도 있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힘든 현장에 있다 보니 치열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는 늘 우리를 아프게도 하고 웃게도 한다. 우리 또한 겪고 있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현장 일을 어떻게 시작했든 펜트 하우스부터 밑바닥까지 경험하신 분들의 삶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중 부부끼리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힘든 현장과 소비자의 대면을 모두 해내야 하는 입주 현장은 직원을 구해도 끝까지 버티기도 힘들고, 일을 배운 직원들은  곧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나가면서 경쟁 상대가 되는 일이 많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보면 처음에는  배우자를 보는 안타까운 마음에 주말 바쁠 때 잠깐 도와준다. 다음에는 배우자가 맘 고생하는 게 속상해서 전화까지만...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아르바이트로 들어간다.


한 두 개씩 사업에 관여하다 보면 가족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본격적로 동업자로 자리를 잡는다. 수직 관계는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가 되지만 책임은 상사의 몫이다. 사장이 둘이된 장사에서는 일을 가정까지 끌고 와서 대화가 이어지고 가지고 책임은 서로에게 있어야 하며 원망도 서로를 향해 있는 때가 많다.


두 부부 중 한 사람이 파업을 하기라도 하면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이들은 모든 일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업이란 말은 언감생심이다. 


올해처럼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습한 공기와 싸워야 하는 현장은 고독이고 극한 노동이다.

현장사진
누군가는 자식을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그 누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산다.


늦은 저녁 Y업체 사장님께서 저녁을 먹자며 연락이 왔고 우리 부부는 일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침에 본 두 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를 하며 웃고 계셨다.

사모님의 머리카락에는 하얀 페인트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아침 주차장일은 나만 아는 비밀로 하고 밝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사모님께  머리카락이 왜 그러냐고 정색을 하며 물었다.


Y업체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조색을 하다가 신발에 하얀 페인트가 흘렀고 시공 예약시간이 다 되어서 급한 마음에 신발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시공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일회용 신발을 신고  손님 집에 시공까지는 잘 마쳤다. 그런데 신발을 벗다가 실수로 마루에 페인트가 묻어서 고객분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죄송하단 말과 함께 신속하게 처리해 드리겠다고 했다.

연신 고개를 숙이시는 사장님께 자신의 자식 같은  젊은 부부는 화를 냈고 마루를 깨끗이 닦은 결과물을 보고 돈을 입금하겠다고 했다.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사모님이 사장님의 기분을 달래주려 계속 애쓰고 있었고 사장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을 거들었던 한마디에 손님에게 내지 못한 화가 그대로 사모님께 꽂혔고 참다못한 사모님은 결국 주차장에서  분노의 게이지를 넘기고 부부가 싸우게 되었다고 전했다.


 화가 난 사장님이 페인트가 묻은 자신의 신발을  깜박하고 그대로 사모님께 날렸는데 하필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고 하셨다.


다음 시공 일이 밀려서 미처 닦아내지도 못하고 대충 마무리했는데 그 흔적이 지금의 머리카락 위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고 하셨다.


그 얘기 끝에 y사장님은 식탁 아래로 발을 곧게 뻗어 보이셨다. 나의 시선이 고정되자  다양한 비즈로 장식한 새 크록스 신발을 발끝을 이용해서 좌우로 움직이며 자랑을 하셨다.


그런 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트콤 한 개 찍은 사람들처럼 세세하게 웃으며 이야기했고 나 또한 박수 세례로 답했다. 아침 부부 싸움을 목격한 사람이지만 그 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그 순간을 잘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얼마나 삶의 노고가 쌓여야 그들처럼 순간순간을 감정에 담아두지 않고 시트콤에 한 장면처럼 입담으로 전해질수 있을까'


그 싸움 현장을 누군가 봤다면 대책 없다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보통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Y사장님댁 사모님은 20살까지 홀 아버지 밑에서 고모 손에 자랐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남편을 만나 제주도까지 도망가서 결혼하게 된 우리 세대 러브스토리에 주인공 들이다.


아버지와 고모의 반대에 결혼을 하고 힘들게 여기까지 오면서 안 해 본일이 없다고 했다.


 사모님의 질문 중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건


"자기야 해외여행 가본 적 있나? 난 한 번도 해외를 가본 적이 없다"


그 자리에서 난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 차마 갔다 왔다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뇨 우리도 한 번도 못 갔어요"


"그래? 그럼 쫌 위로가 되네. 나는 회사 댕기는 사람들은 다들 당연하게 이야기해서 자기들도 간 줄 알았지. 그럼 우리 애들 가르치는 거 끝나면 같이 한번 댕겨 오자"


"와<< 좋아요"나는 물개 박수를 치며 답했다.

"여행은 어디 가냐 보다 누구랑 가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같이 가요"


대학생인 두 자녀를 위해 일은 하지만 자신의 일에서는 프로라고 자부하며 늘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부다.


그런데 덥고 습한 한 여름 방독면을 쓰고 방수 복을 입고 일을 한다는 것은 죽음의 시간이다. 베란다 시공에서 페인트가 안으로 들어갈까 모든 문을 닫고 작업해야 하는 현장을 마치고 오면 땀으로 속옷까지 젖어있고 일을 마치고 방독면과 옷을 벗으면 한 여름 더위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셨다.

그런 날 마음까지 다쳤으니 오죽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웃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짠했다.


어떤 날은 진짜 파업이란 걸  하고 싶기도 하다. 직장인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듯 이혼 서류를 품고 다시는 분도 있다. 월급도 없고 보너스도 없고... 퇴직금도 없는 이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마음이 다치면 맥이 풀려 살아온  삶에 회의가 밀려온다.


가슴속 깊은 얘기를 하며 회포를 풀고 다음 현장이 있는 Y부부는 모텔에 가서 숙박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단기로 빌린 원룸으로 향했다. 누구의 밤이 더 뜨거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장 속 이들은 술 한잔의 위로 속에  부부가 나란히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하루의 고단함을 길가에 한 개씩 내려놓듯 고해 성사하며 말없이 걷는 그 길이 두 사람에게는 버무려진 감정의 무게까지 덜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객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몇 번의 고개 숙임 속에 자신을 안타깝게 보는 배우자의 연민의 눈빛...


가족 앞에서는 당당하고 싶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준 자신의 모습과 상대를 향한 사악함으로 무장시킨 순간들...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페인트 묻은 신발을 던지고 흔적을 남겨준 것...


그리고 차마 건네지 못한 한마디

'잘해 주고 싶었는데...'


아무도 없는 두 부부만 있는 공간으로 향하는 순간

오늘에 일은 취기 오른 밤을 위해 준비된 전초전에 불과한 것들이 된다.


상대를 끌어안으며 가슴으로 울고 온몸으로 말하는 뜨거운 밤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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