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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Nov 16. 2023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고객님이 자살했다.. 그리고... 번 아웃이 왔다.

story1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오늘만 10번째

시공을 마친 후 입금을 위해 문자만 10회 이상 보냈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23층-


시공하기 전 집안에 이곳저곳에 조명을 추가하고 싶어 하시는 고객분을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보기에도 남 부러운 게 없을 만큼 완벽한 중년의 부부가 새집에 이곳저곳을 살피고 계셨다.


낡은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쓴 내 모습과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에 어느새 나의 손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더욱 밝은 모습으로 "안녕하세요~^^"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조합 아파트라는 것은 일반 분양아파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가온 입주이기 때문인지 고객님은  무척 설레는 모습이었다.

 


"집이 넓은 평수라 시어머님이 같이 살아야 해서 걱정이 태산이에요"

라고 손님은 말씀하셨다

시어머님이 없던 나는 나의 남편의 가족사까지 운운하며

"저는 시댁에 없어서 애들 키울 때는 좀 부럽더라고요"하고 같이 계시던 남편분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잠깐이야. 지금은 그냥 아들 옆에서 사는 게 낙이라 그거 하고 싶어서 그래"라고 손님이 답하셨다.


예기치 못했던 고객님의 가족사 이야기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혹시 계약이 깨질까 애타는 마음을 감추며 영혼 없지만 정중하게 나는 답을 했다.

"네~"

남편분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고부간의 갈등을 이야기해 주시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어떤 공감대도 형성할 수 없던 나는 어릴 적 친정엄마와 할머니에 관계까지 소완시켜 공감대를 만들어 드렸다.


남편은 사업으로 바빠서 자신이 어머님의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고

그 소식을 전한 다음부터 심장이 떨려서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셨다.


톤이 높은 목소리에 모든 상황을 무마하기 위함인지 너무도 무거운 얘기를 가볍게 하고 계셔서 대수 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계약을 앞둔 나는 그 자리가 가시 방석이었고 남편 되시는 분의 눈치도 심상치 않아서 부부 싸움의 시작을 만든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시공의 주체가 된  나는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가정사의 문제로 계약이 무산될까 봐 더 조마조마했다. 이야기의 화제를 돌려서 조명이 어떻게 들어가면 좋을지 말씀드리고 식탁에 시공될 예쁜 조명도 골라 보시라고 카탈로그로 시선을 돌렸다.


다양한 책자를 보시더니 눈물 훔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하시며 샹들리에처럼 우아한 조명을 골랐다. 


마들렌 식탁이라 이 제품을 달면 예쁘겠다고 좋아하셨다.

집 전체가 화이트톤이라 포인트로 검은색이 어떠냐는 고객님의 물음에 블랙은 실증날 수 있으니 실버가 들어간 샹들리에  조명을 선택해 드리고 급하게 그 집을 나왔다.


며칠 후 시공을 마친 나는 고객님의 핸드폰으로 입금 문자를 보내고 통장에 돈이 입금되길 기다렸다.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도 답은 없었고 전화기조차 꺼져있는 상태였다.


'사정이 안되면 답이 라도 주지...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며 서럽기도 하고

있는 사람이 더 한다면서 고객님에 대한 원망도 여러 번 했다.


그 후로 며칠을 10번 이상 전화를 하고 문자를 넣은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번호가 없는 번호라 했다.


드디어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대던 배신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돈도 급했지만 자신의 상처까지 이야기하며 나누던 대화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가며 고객에 대한 배신감이 날 더 힘들게 했다.


'이게 바로 먹튀구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온화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나 말지...'


10년 장사를 하면서 거래처 외에는 고객에게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화를 견디지 못하고

남편 되는 분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기 위해 조합사무실로 찾아갔다.

'두고 봐라 내가 꼭 찾아서 망신을 줄테다. 세상에 어디 힘들게 일한 시공비를 떼먹어'


혼자서 씩씩거리며 조합 사무실 문을 들어서는데 그 집을 공사해 주신 인테리어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장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내 얼굴 앞으로 당신의 얼굴을 내밀며 손으로 입을 막고 나에게 말했다.


 "자기야 그 아파트 새집에서 자살한 사람 있다던데? 알고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진짜요?"


"자기도 알 텐데...?  그 23층 여자분 "

.

.

.

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장 내 눈앞에 것만 보다가 무엇을 놓친 것인가...?


'삶을 버틸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문자로 마지막 답을 했는가?


이사 전부터 고부갈등이 심했던 고객님은 우울증이 있었고... 홀로 새로 들어갈 집에 완성된 인테리어를 보러 갔던 날이 이 세상.. 마지막 날이 되었다고 전해졌다.


몇 주가 지나서야 남편 되시는 분이 전화가 왔고... 입금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번 아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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