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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카 Jul 30. 2020

진짜최최최종.doc...인생에 최종이 어딨니?

화일명에 담긴 을들의 분노를 위로하다

외주업체로부터 오는 메일의 첨부화일엔 을들의 감정이 묻어있다.

(최종).doc, (최종).jpg 등 착하게 시작한 첨부화일명은

어느샌가 최최종.doc, 최최최종.jpg 등 아슬아슬 경계를 맴돌다가

진짜최최최최종.doc, 이번이마지막최종.jpg 등

무언의 선전포고에까지 다다른다.


이쯤 되면 난감해지는 건 외주업체도, 윗분들도 아닌 '나'다.

외주업체가 얼마나 많은 힘과 시간을 들여 여러 번을 수정했는지

수정을 지시하는 윗분들이 알 바 아닌데

더 이상 수정을 시켰다간

마치 배달의 민족 플라스틱통에 꾹꾹 눌러 담은 마라탕이 오토바이 진동에 흥분하여

밖으로 벌건 국물을 배출해내듯

분노로 벌개졌을 얼굴이 전화 목소리나 일처리에 묻어나올 걸 상상하면 말이다.


게다가 최종이란 화일명의 수난시대는 위 문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도대체 어느 것이 '최종'인지를 알 수 없게 되는 더 큰 문제가 생기고 만다. 최종자료를 가지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검색해보니 제길슨. 모두가 최종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음 어쩔? 그러다 최종의 탈을 뒤집어쓴 덜최종이 보도자료로 나가거나 더 높은 윗분의 보고자료로 쓰여진다면? 그 후의 일은 아아아...


윗분들에게 잘 보이려 조아리자는 취지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 그렇게 하라고 한다고 그럴 사람들 아니잖나. 일을 하려면 사소한 화일처리 하나에도 야무짐을 기하고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윗분들의 기분이 안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 자신에게 쪽팔리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작은 화일명 하나가 조직이 돌아가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윤활유가 될 수 도 있음을 명심하자.


사실 이건 외주업체 화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내에서도

얼마든 분노의 국물 뺨치는 파일명들이 메일과 메일을 돌아다닌다.

당연히도 이 안에서도 조직체계와 위계가 있고 일을 시키는 사람과 일을 시행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는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안에서는 나 포함 모두가 을이다. 부서의 대장이라 해도 을이다. 누군가에게 다시 보고를 해야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는 자리는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을일 수 밖에 없다. 최고책임자라 하더라도 을이다. 그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뻘짓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을 묻고 따지고 감독하는 의회,국회 등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손발이 하는 일은 덜해지지만 심장이 하는 일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위로 갈수록 심장이 벌렁댈 일(책임의 강도)이 많다는 얘기지 실무자는 영혼없이 일한단 뜻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발의 어려움은 같은 손발들끼리 알아주고 달래줘야 한다. 그래서 내가 다음 브런치 작가가 된 거고...(아직 작가 합격도 안 됐는데 디저트질?)

최종.doc, 최종.jpg로 끝나게 해줄 묘안까지는 알려주기 어렵지만, 단계를 줄이거나 화일을 헛갈리지 않게 하는 몇가지 팁을 공개한다.


1. 인생에 최종은 없다. 화일명에도 최종을 함부로 쓰지마라.

처음부터 최종을 남발하다가는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 최종은 보고가 끝난 화일에만 붙여라.

예를 들면 이렇다. '최종'이 아닌 '버전'으로 우선 표기하는 것이다.

예)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1(20200724)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2(20200725)

숫자에 끝이 없듯 ver100, ver1000, 그 이상도 아무 제약 없이 만들 수 있다.

폴더명도 잘 지정(예: **커뮤니케이션 00건 제안서)해서 그 안에 저장해두면 순서대로 정리되므로

어느 것이 '현재까지의 최종'인지 알아채기 쉬워진다.

난 업체에서 오는 파일명을 위와 같이 직접 수정정리함은 물론 내가 만드는 파일명도 똑같이 정리한다.

여태까지 한번도 덜 최종파일이 나가 사고가 난 적이 없다.


2. 보고 완료본에 최종을 붙여라.

위와 같이 내부적으로 계속 수정보완을 하다가 보고를 하게 된 이후 최종을 붙여라.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5(과장님 보고 최종본)


과장님의 수정요청사항이 반영된 파일명은 이런 식으로 하라.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6(과장님 보고 이후 수정본)


부서에 뿌려 팩트체크를 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하라.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7(부서요청 반영본)


마지막에 대장님 보고가 끝나면?

이제 여러분이 *표시된 빈칸을 채워볼 차례다.

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홍보마케팅 제안 ver1818(**님 보고 **본)


3. 고친 파일을 남에게 전달할 땐 파일명을 반드시 고쳐서 전달하라.

화일명은 그대로 둔 채 보내면서 지난 화일 뒤집어쓰시면 된다는 식으로 메일을 보내지 마라.

당신이 예전에 보낸 파일들은 다운로더 폴더에 있을 수도 카카오톡 받은화일에 있을 수도 바탕화면에 있을 수도

어느 해골복잡한 이름의 폴더 안에 있을 수도 있다. 메일을 받은 당사자는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지난 파일이 저장된 폴더가 생각이 안 나 되는대로 아무 폴더에나 저장해버렸다가 며칠 후 그 파일을 급히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면? 엉뚱한 옛파일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해서 잘못된 파일이 집행된 경우 여러번 봤다.


4. 인생에 최종이 어딨니?

최종이 아님을 몸으로 알면서도 최종이라고 쓰는 이유는 이것이 마지막 수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발현일 것이다. 그 마음, 같은 을로서 충분히 이해하며 그래서 더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인생에 최종은 없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듯이 비즈니스 세계의 문서나 파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스스로 깨달아 바꾸고 수정하는 것과 별 걸 아닌 걸 가지고 깔짝깔짝 여러 윗분들이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도 없이 취향에 따라 수정시키는 것을 받아들여 고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윗분들의 그런 깔짝 수정요청들을 최소화시키는 노하우는 다음에 공개해보도록 한다.


다시 한번 '최종'을 생각해보자. 숨 꼴딱 넘어가는 순간, 그것이 최종 아닐까. 우리는 글이나 문서가 아니라도 인생 자체가 끊임없는 성찰과 퇴고와 교정 속에 버무려지며 살아간다. 적어도 브런치에서 내 글 따위를 지금까지 쳐다보아주신 당신의 놀라운 혜안과 마음가짐이라면 더욱 동감하리라 생각된다. Daum에 보자.


고로 최종 함부로 오남용하지 말고

인생에 숨 넘어갈 때까지 최종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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