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어느새 몸 안 깊숙이 자리 잡은 추위는 입술을 바싹 마르게 하는 난방기의 건조한 바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귀와 발가락에는 환상통처럼 아린 듯, 뜨거운 물에 담겨있는 듯, 부어오르는 통증이 자꾸만 자극적이다.
떨리는 손으로 귀를 감싸여, 말단 부위인 두 기관 사이의 열전도를 실감하며 동시에 주위의 소음을 막았다.
평소 한산함에 익숙해있던 강원도 양구의 군 병원은 낯선 소란스러움에 가득 차 있다. 생전 처음 노출된 항원에 몸이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 병원 전체가 뒤집어지는 과정이다. 그 항원을 몸소 배달해 온 나는 귀를 막음으로써 잠시의 평화를 누리려고 했다. 그러나 소란은 으레 그렇듯 회피한다고 없어지지는 않았다.
웅웅 거리는 진동은 손등을 뚫고 두개골로 이윽고 가슴 깊이 자리 잡은 추위마저 공명 시킨다.
그렇게 시작된 떨림은 다시 심장에서부터 몸통 팔다리까지 혈류처럼 뻗쳐나간다.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나는 떨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떨었던 걸까?
숨을 의식적으로 쉬는 걸 인지하면 그 순간부터 수의적인 운동이 되는 것처럼 이 떨림도 마찬가지다. 멈춰야 한다. 심호흡.
...
잠시 나와의 사투 끝에 떨림이 약간 잦아든 것을 느껴 손을 뗐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고성을 지르며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군 간부들과 그런 사람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되려 더 큰 소리를 내는 간호 장교. 설명을 못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 같은 말만을 반복하는 당직 군의관과 다른 간부. 빨리 인계하고 떠나기 위해 아무나 붙잡고 신고받은 경위와 이송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급대원들과 붙잡힌 채 얼타는 응급구조사.
응급실에서도 반년 넘게 일을 했었고, 공황 발작으로 온 환자들도 많이 상대해 봤지만 내가 역으로 환자를 간접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소란스러운 풍경에 정신이 팔리며
병원 특유의 소독약의 은은한 향이 코를 찌르자 현기증이 생겨서 이번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둠 속도 나의 피난처는 되어주지 못했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되려 온갖 잡생각이 많아지는 내 성격 탓이다.
동시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인 지난 몇 시간이 닫은 눈꺼풀 안으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지다 숨 고르듯 단 하루 쉬어가는 날이었다.
제설된 도로를 일부러 피해 굳이 누구의 흔적도 없는, 허리까지 올라오는 눈밭을 걸을 때였다. 길의 흔적은 모두 하얀 이불에 덮여 정처 없이 헤매다가, 우연히 보았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의 경계면, 그 절벽의 밑에쯤 도착했을 때 눈의 연속성을 깨고 그 공간을 대신 차지한 진녹색빛의 덩어리. 홀린 듯 다가갔고 이윽고 깨달았다. 이 형체는 사람인 것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오래전 의대생 시절부터 면허를 따고 병원에서 인턴을 했을 때까지 이 고민은 수도 없이 해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질문은 무의미한 고민의 연속이란 거다. 이미 지나간 것은 바꿀 수 없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대비를 위해선 더 좋은 질문들이 많다. '뭐가 부족했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열정적이었을 때에는 멋지게 구조행위를 통해 사람을 살려내고 이를 통해 인정받는 상상을 했었고, 비록 1년뿐이었지만 사회의 쓴맛을 제대로 맛봤을 때는 119에 신고하고 모른 체하는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서 상황을 눈앞에서 홀로 목도하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의식... 호흡과 맥박... 신고와 그리고 가슴압박.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많은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까?
분당 100~120회와 5cm, 30대 2.. 아니 마지막은 잘못된 정보다. 혼자 실행할 때에는 인공호흡을 생략하고 가슴압박만 지속하는 게 맞다. 아니다. 그것은 기도확보와 양질의 인공호흡이 어려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다. 지금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다. 우선 압박만이라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cpr은 평평한 바닥에서 하는 걸로 배웠고 늘 그래왔는데 눈과 사람 안 다니는 들길 그리고 두꺼운 겨울옷이란 환경은 낯선 문제였다. 얼어붙은 손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가슴압박을 위해 두 손을 포갠 그대로 고정되어 옷을 벗기는 건커녕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두들기는 것도 어려웠다.
인턴이 끝나고 군의관이 되며 한동안 안 했던 가슴압박도 낯설었다. 내 체중이 실린 손에 의해 부서지는 갈비뼈와 늑골.
그 달그락거리는 감촉과 손에서부터 전달되는 소리.
홀로 몇 분을 했을까? 정신 차려보니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나는 같이 병원에 오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눈을 떴다.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답답한 악몽에서 깬 기분이다. 깨고 나서 내가 겪었던 일들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님 꿈일 뿐인지 헷갈리는 그런 악몽. 단지 이번엔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자각해야 했다. 이는 어렵지 않다. 단순한 소음과 소란들로 가득 차 보이는 지금 이 풍경을 하나하나 뜯어 집중하면 된다.
"... 여단장님한테도 보고 드렸다시피 이미 사망한 상태로 병원에 왔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이걸 몇 번을... 연락 오는 사람들한테 제가 계속 같은 말 다시 하고 있습니다. 전파 부탁드립니다!... 아뇨 저도 주말에 휴가 중이다가 급하게 복귀한..."
낯이 익은 얼굴. 나와는 부대에서 오며 가며 몇 번 본 사이이다. 직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폰을 귀에서 떼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상황을 설명 중인가 보다. 늘 목소리가 크던 사람으로 기억난다. 결국 병원 간호장교에게 밖으로 내쫓긴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DOA라고 하는데, 병원에서는 유가족 연락하고 병원 측 장례식장 연결해서 시신 양도하고 끝이에요. 그 이상을 바라지 마시고요, 그쪽 부대 일은 보고든 뭐든 알아서 처리를 하세요"
"이게 우선 윗선과 감찰에게 보고가 되어야 사후처리를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보고를 드리려면 왜 사망하셨는지랑 언제랑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거는 저희가 형사도 아니고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구요, 부검을 하지 않는 이상 원래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저한테 계속 물어본다고 답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좀 나가서 기다려주세요 그러면"
"아니..."
병원 군의관 선생님과 또 다른 우리 부대의 간부다. 둘 모두 일요일 당직 중에 갑자기 발생한 사건과 서로에게 지쳐 보인다. DOA, death on arrival의 약자. 아 결국 사망한 채로 왔었음을 실감한다. 구급차 안에서도 호흡 맥박이 없어 cpr을 했던 기억이 문득 다시 난다. 그때쯤엔 가슴뼈가 완전히 함몰되어 구멍처럼 보였다.
"저희 도착 당시에도 의식 호흡 맥박 전부 없었구요, ekg상 asystole이었고 cpr 12분간 하면서 오는 동안 rosc 없었어요. 원래는 현장에서 사망이다 판단되면 112랑 연락해서 인계하고 끝내는데, 신고하신 분이 같은 부대 군의관이라고 해서,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계시길래 일단 병원으로 같이 왔고요. 다른 정보들은 그분한테 물어보면 될 거예요... 아 저기 계시네"
*ekg : 심전도검사
*asystole : 무맥박
*cpr : 심폐소생술
*rosc: 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맥박의 회복
나를 가리킨 구조대원은 응급구조사가 시선을 돌리자마자 돌아서서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어어 거리며 당황하던 구조사는 내게 다가왔다.
"저... 선생님"
물음표와 마침표 그 사이 어딘가의 맺음. 본인도 날 불러서 무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을 터다. 나라고 별반 다르진 않다. 뭘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단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뭘 어떻게 했어야 됐을까?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대시절부터 온갖 언구들로 과거는 돌이킬 수 없음이 구전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에 대해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여태까지의 상황이라도, 머릿속에서 파편화된 기억을 정리할 겸 설명을 시작했다.
"오후 7시 반 경 근처를 산책하던 중에 눈밭에 무언가 있어 다가가 보니 의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호흡맥박 없어서 바로 119 신고했고 cpr 시행했습니다. 2분 주기로 총 5회 호흡 맥박 확인했지만 회복된 바 없었고, 신고 후 총합 약 10분 지났을 때에 구급대원 도착해서, 이후는 아까 그분이 말씀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앰뷸런스에서 신원 확인을 해보니 제 부대 대대장님이더라고요. 과거력은 제가 아는 바로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진단받고 약 복용했던 걸로 압니다."
우다다다 말들을 토하듯 쏟아냈다. 말로, 언어로 머릿속의 기억들을 표현하자 상황이 내 일이 아닌 어떤 제삼자의 사건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니다. 다시금 머릿속은 복잡해지며 이게 내가 처한, 방금 겪은 현실임이 맘속에서부터 속삭이듯 상기되며 잠식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었다.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십니까?"
"그, 담요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아 네, 하고 사라지는 구조사를 잠시 쳐다보다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내가 많이 추워 보였던 걸까? 혹은 아직 떨고 있는데 자각을 못하는 걸까? 내 꼴은 지금 어떨지를 잠시 상상해 본다. 애초에 외출이 길거라 생각하고 나왔던 게 아니라 두껍게 입고 나오지 않았다. 검은 내복과 트레이닝 복 그 위에 바람막이와 고글 귀마개 모자 장갑. 그중 절반은 현장에 던져두고 왔다.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온 데다가 땀이 났다가 추위에 식어 얼굴에 말라붙어있다. 떡진 머리는 질척하게 내 얼굴에 달라붙어 지금의 지독한 현실로 날 잡아둔다.
'누가 보면 내가 유가족인가 싶겠네'
자조 섞인, 아무한테도 말 못 할 농담은 나 자신도 웃기지 못했다. 웃음을 내기엔 지금 내 마음속은 빛 한점 들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들 뿐으로 가득 차 있다. 죄책감, 두려움, 걱정 등.
그래도 잠시간 나 자신을 매몰시키는 잡생각들의 압박은 회피할 수 있었다.
"군의관님, 양구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고개를 들자 한 사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복차림이 아닌 평상복의, 평균 키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인상.
나름 군 병원이라 민간인이 들어오는 것이 낯설 법도 한데, 병원의 소란에 다들 바빠서인지 혹은 민간인에게 개방된 병원이라 괜찮은 건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초기에 물어볼 게 있어서요, 시간 괜찮으실까요?"
"아... 네, 큼. 괜찮습니다"
아를 입밖에 습관처럼 내뱉으며 목소리가 잠시 깨졌다. 헛기침으로 무마했지만 괜히 수상해 보일까 근거 없는 두려움이 절로 들었다. 그야 그럴 것이, 의사와 사망 사건은 같은 문장에 존재만 해도 괜한 불안감이 들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게 내 일이라면, 그것도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거라면...
나의 두려움은 합리적인 사고회로의 도출 결과이며 정당화된다.
자신을 방 형사로 소개한 그는 소란스러운 병원 내의 풍경을 잠시 눈에 담더니 입을 다시 열었다.
"잠시 자리를 옮기시죠"
...
병원 안의 인위적인 온기는 마치 거짓말이었는 듯 나오자마자 밤과 겨울의 한기가 날 에워싼다.
바람이라도 안 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날 데리고 나온 형사가, 추운지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나에게 하나 권한다.
"한대 피시렵니까?"
"아뇨 전 흡연 안 합니다"
별다른 대꾸 없이 자신이 한대 물고는 불을 피워 연기를 내뿜는 방 형사. 일련의 행위엔 아무런 지체가 없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전신을 훑었다. 담배는 더원 임팩트, 나이는 약 40대에 체형은 마른 편이다. 얼굴은 늙어 보이진 않지만 주름이 많아 얼굴 곳곳에 병원 밖 가로등 조명에 그늘진 흔적이 생긴다.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라고 생각했다. 녹다 만 눈에 젖어있는 등산화와 밀리터리 룩의 패딩으로 추정컨데, 아마도 주말 밤에 갑자기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급하게 뛰어왔으리라. 그래서일까 땀에 젖었다가 추위에 식어 말라붙은 머리카락들이 그를 훑는 내 눈에 마지막으로 잡혔다.
"일단, 시간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관찰과 상념에 잠시 잡혀있던 나를 깨우는 질문이다.
시간. 명확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에서 119 신고시각을 본 후에 얼추 설명을 시작했다.
"19시 45분경에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쓰러져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의식과 호흡 맥박이 전부 없는 것을 확인하고 47분에 119 신고를 했고, 군 병원 위병소에 20시 11분에 도착했습니다."
형사는 무언갈 더 요구하는 듯이 날 쳐다봤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친절함을 바랄 때는 아니지만 묘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어 그의 시선이 불쾌했다.
"... 쓰러져 있는 곳 바로 옆이 작은 동네 뒷산이 있습니다. 쓰러진 곳 근처에 바위도 있었고 혈흔도 있었고요. 아마 추락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추락이요"
그는 추락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곱씹는 듯 보였다.
"예, 그 산절벽이 바로 옆이었으니까요. 가보시면 아마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잘 압니다. 저도 그 근처 살아서"
그리곤 다시 시선을 돌리고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그 모습에 데자뷔를 느끼며 이유 모를 불쾌함은 지속된다.
왜 그런가 점검해 보니, 근본은 억울함과 의아함이다.
데자뷔는 이제 고인이 된 대대장이 날 이렇게 불러내고는 저렇게 말을 툭툭 내뱉고는 했었다. 아마도 그게 떠올랐나보다. 비슷하게 담배를 피워대며 사람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보고해 보란 듯이 서있는 형사. 그는 내 상사도 아니고, 내가 무슨 살인사건의 용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불우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나선 것뿐인데, 스스로 지레 겁먹고 위축되어 저자세로 나왔나 싶어 발생한 억울함.
의아함. 원래 사건 조사를 이렇게 대충 하는가? 담배타임에 하는 스몰토킹처럼 간단하게? 경찰 조사와 관련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그 외에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야 환자 처치에만 집중했으니까요"
음인지 코웃음인지 헷갈리는 의성어와 함께 그는 담배를 발로 밟아 잔불을 꺼트리며 부정도 긍정도 아닌 리액션을 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고생하며 아무 힘도 없던 내 마음속에 잔불은 화르륵 타오르며 열이 뻗쳐올라 나도 모르게 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마주치는 두 눈. 벌어지는 입과 나올 말들을 기대하던 차였다.
"저 97부대 군의관님? 군사경찰에서 나온 분들이 찾고 계십니다"
"... 네, 지금 갈게요"
병원의 의무병이 나와 날 찾아 우리의 대치상황은 밟혀 꺼진 담뱃불처럼 흐지부지 끝났다.
"가시기 전에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 환자 상태 확인이라는 걸... 좀 길게, 그러니까... 오래 하는 편인가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무언가가 심장을 손으로 잡고 있는 듯한 느낌. 언제든 이걸 터뜨리겠다고 협박하는 기분이다. 그 압박감.
티 내선 안된다. 심호흡. 하지만 너무 늦게 대답해서도 안된다.
고개를 옆으로 갸웃한다 그리고 다시 돌려 시선을 맞추고 잘못 들은 듯 되묻는다. 예?
시선은 이제 피하고 고개와 함께 좌측으로 약간 돌린 후 다시 갸웃. 마치 이상한 걸 들었지만,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듯이
"글쎄요, 남들과 비교해 본 적은 없어서 그런 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요?"
말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배에 힘을 꽉 주고 호흡을 중간중간 쉬어주며 천천히 내뱉었다. 그런 와중에 심장은 그 압박감에 혈류를 무지막지하게 전신으로 뿜어낸다. 내 얼굴이나 귀 목 다른 곳들이 빨개지는 기분이 든다. 제발 이게 추위 때문으로 보여야 할 텐데. 어두워서 안 보여야 할 텐데.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의 마음이 되어 판사를 쳐다보는 마음으로 방 형사를, 그의 입을 다시 본다.
"밤이 참 어두운데... 거기서 어떻게 그걸 보셨을까"
그리곤 피식, 웃는다.
이젠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녜요, 그냥 한 말입니다.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또 보죠 하고 후련하다는 듯이 떠난다. 첫 조우의 끝이었지만, 마지막 대면은 아니려나보다.
아버지가 히치콕과 서스펜스에 대해 말한 게 불현듯 떠오른다.
'관객은 알되 배우는 모를 때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라고.
난 모르는 걸 상대방은 알고 있다.
재촉하는 의무병을 따라 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가며 아까의 불쾌함과 불안함이 합쳐 생긴 압박감을 느낀다.
다시금 찾아온 현기증
'어떻게 해야 했을까?'
또다시 후회만 남은, 무의미한 생각의 연속이다. 그보다 더 좋은, 유익한 고민들은 여전히 많다.
'뭘 본 걸까? 뭘 아는 걸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