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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r 13. 2018

코딩 어렵지 않아요

스크릿 코더 1권 리뷰

한문을 처음에 배웠던 때가 생각난다. 익숙한 책의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펼쳐들었는데, 이건 뭐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그것도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던 미지의 세계, 또는 절대 알 수 없는 외계의 언어였기에 겁부터 났고, ‘이걸 꼭 해야만 하는 거야’라는 알량한 반감부터 들었다. 

그런데 『사자소학』부터 시작하여 한 권씩 떼어가다 보니 어느새 한문의 세계가 조금씩 가까워졌고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언어가 되어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일수록 사람은 경계를 하지만, 그게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그런 사고패턴에 익숙해지면 그때부턴 누군가 굳이 압력을 가하고, 좀 더 쉬운 방법으로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 세계에서 빠져 맘껏 유영하게 된다.                



▲ 이런 책을 어린 나이에 펼쳐 봤으니  겁에 질릴 수밖에.




ICT 교육꼭 해야 하나요?  

   

요즘 대한민국 교육계에선 코딩이 한참 유행이다. 오죽했으면 정규 과목에 코딩을 넣는다는 말까지 나오며, 이미 강남에선 코딩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까. 

하지만 이런 때에 돈도 많고 학구열도 높은 학부모라면 그다지 걱정할 게 없지만, 우리 같은 일반적인 소시민들은 더럭 겁부터 난다. ‘지금 보내는 학원만으로도 벅찬데, 코딩학원까지 보내야 하는 거 아냐?’라거나, ‘이미 여러 과목으로 아이들이 힘겨워하고 있는데, 또 한 과목을 늘려서 아이가 더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 거 아냐?’라거나,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게임중독이라 늘 전쟁터인데 더 게임중독에 빠지게 코딩이 웬 말이야?’라는 반응들 말이다. 첫째는 교육활동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며, 둘째는 학교 부적응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며, 셋째는 컴퓨터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의 목소리다.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게 제4차 산업의 도래와 그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고 싶은 현실적인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내가 한문을 처음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묘한 신경전까지 함께 하는 양상이니 이런 반응은 더욱 복잡하기만 한 것이다.                



▲ 코딩교육이 한바탕  휩쓸고 있다.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되고 있다.




지배당할 것인가지배할 것인가?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코딩교육으로 야기된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정보통신기술) 교육은 이젠 한다, 안 한다를 논할 수 없는 매우 현실적인 교육이란 사실이다. 그만큼 우린 이미 ICT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라. 거기엔 바로 스마트폰이 놓여 있고, 컴퓨터가 놓여 있으며, 온갖 전자기기들이 놓여 있을 거다. 이 중의 하나라도 없다고 생각하면, 또는 당장 스마트폰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편할지 굳이 긴 말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바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4차 산업시대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대비할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런 기기들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운용되며 또한 어떤 메커니즘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지 배워야만 한다. 

한참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 기계는 엄청나게 발달하여 심지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상황이 공장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그러자 인간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기계파괴운동(Luddite Movement)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은 더욱 더 기계의 대량생산에 뒤처지며 그저 과거에만 머물러 도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운동은 치열했지만 상처뿐인 영광만을 남겼고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은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이처럼 ICT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이 교육을 배척하거나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실눈을 뜨고 바라볼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익혀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청사진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           



▲ 코딩을 통해 어떻게  시대의 변화를 리드하며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코딩을 다룬 책이라고 책이 어렵다는 생각은 버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코딩이란 낯선 용어로 우리를 멘붕에 빠지게 하는 높디높은 허들을 박차고 넘을 수 있는 긴 장대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다행히 길벗 어린이 출판사에서 이런 장대역할을 해줄 수 있는 ‘헬로 !ct 시리즈’의 책을 내놨다. 오늘 독후감을 쓰고자 하는 책은 그 중 한 권인 『시크릿 코더』 1권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책을 한국판으로 내놓은 책으로 전체가 만화로 되어 있다. 그러니 한문을 배우기 위해 처음 책을 펼칠 때에 느껴지는 거부감, 혼란스러움, 아찔함 따위는 없이, 편안함, 재밌을 거라는 기대감, 너무 후딱 읽게 될 거란 섭섭함이 먼저 든다. 그림체는 미국에서 나온 책답게 서양식의 만화풍이지만, 읽다 보면 호퍼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되어 이질감은 사라지고 내가 막 전학 온 학교의 한복판을 거닐며 한껏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쯤이면 이 책은 이미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코딩이란 어려운 주제를 얘기하는 책임에도 전혀 이질감이나 거부감은 들지 않고 어느새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순식간에 20쪽 가까이 읽어갔으니 말이다.                



▲ 호퍼는 학교에 전학을  와서 부적응을 한다.




만화와 적절한 예시로 코딩이 쉬워졌어요

     

그런데 이쯤 되면 ‘이 책은 호퍼의 학교 적응기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호퍼는 전학 오자마자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채로 학교를 배회하며 친구와 한바탕 기 싸움을 하고 있고 수업에 들어가선 수업에 대한 온갖 불신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내용으로 코딩을 어떻게 다루려하는 걸까 은근히 기대도 되며, 걱정도 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이 들 때 전혀 놀라운 방식으로 컴퓨터적 사고(2진법적 사고)를 너무도 쉽고 명료하게 알려준다. 아까 전만해도 한참 기 싸움을 했던 에니의 입을 통해 2진법을 알려주고, 그건 학교에 날라 다니는 버드봇(눈이 4개인 새)과 호퍼의 귀걸이 장식인 숫자 7을 통해 쉽게 익히도록 도와준다. 2진법에 전혀 문외한인 나도 버드봇의 눈이 어떤 숫자에 따라 어떻게 떠지고 감아지는지를 익히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이쯤 되면 내가 원래 천재였던 건지, 이 책이 아주 쉽게 설명해주는 건지 헛갈릴 지경이다. 

그리고 더욱 백미는 ‘리틀가이’라는 꼬북이를 닮은 엄청 귀여운 청소용 로봇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턴 가장 기본이 되는 컴퓨터 용어를 통해 어떻게 리틀가이가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게 매우 단순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보(forward 10)”라고 외치면 리틀가이는 그 명령어대로 행동한다. 

바로 이런 부분이 이 책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언어’나 ‘코딩’이라 하면 매우 어려워 보이고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천 길 낭떠러지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걸 만화를 통해, 간단한 예를 통해 보여주니 마치 순돌이에게 손을 내밀며 ‘앞발’이라 외쳤더니 두 다리를 내 손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이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문도 마찬가지였듯 막상 처음에 ‘어려울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게 문제지, 한번 시작해보면 한문도 어느새 읽을 수 있는 문자가 되듯 코딩도 익숙한 체계가 되는 것이다.                



▲ 이진법을 쉽게 설명해준다. 이 책만 읽어도 컴퓨터 언어를 쉽게 알 수 있다.




짧지만 강렬하다강렬한 만큼 흥미롭게 익혀진다

     

어느덧 한 권을 순식간에 다 읽었다. 막상 중요한 부분에서 1권이 끝난지라 2권이 바로 읽고 싶어지더라. 아이들 책이라 얍잡아봤지만 어려운 컴퓨터 용어를 상황에 따라 쉽게 이해시켜준다는 점에서 알차게 느껴졌다. 

처음엔 다 읽었을 때만 해도 ‘오히려 호퍼의 부적응에 대한 얘기는 최소화하고 내용을 전개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너무 변두리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 막상 중요한 코딩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두 번째 읽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그런 호퍼의 이야기가 있기에 흥미롭게 책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코딩에 대한 용어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호퍼는 어찌 보면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고, 이진법은 ‘고거 이씨 성을 가진 사람 이름이지’라는 헛소리나 팽팽하는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니 말이다. 그런 호퍼가 점차 빠져들어 코딩을 익혀가는 것만큼이나 나 또한 그런 호퍼에 이입하며 자연스럽게 그 언어들에, 그런 식의 사고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학교 청소부인 미스터비는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에 학교 곳곳에 코딩적인 요소들을 심어놓고 ‘버드봇’과 ‘리틀가이’와 같이 코딩으로 움직이는 로봇들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왜 미스터비는 호퍼의 아버지 이름이 적힌 체육복을 보고 그들을 퇴학시키지 않고 기회를 줬던 걸까?

이거 감질나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2권을 읽으러 고고씽~



▲  시크릿코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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