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支文德의 ‘與隋將于仲文’
어떤 한문학사책을 펼쳐보든 제일 먼저 언급되는 시다. 그만큼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작품치고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대구의 구성 등이 절묘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죽했으면, 허균은 “비록 을지문덕과 진덕여왕의 시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그 손에서 나온 것인지 감히 믿을 수 없다.(『성소부부고』)”라고 했을 정도였을까.
예전에 이 시를 배웠을 때 1, 2句가 대구로 되어 있다는 부분을 크게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을지문덕이 우중문 장군에게 ‘싸움을 그만둬라’라고 그냥 말하긴 뭣하기에 1, 2句에서 한껏 띄워주는 것이다.
이건 지금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과 상담을 해야 할 때에도 곧바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선 반감만 든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좋은 지적도, 그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라 해도 그것부터 말하는 건 상대방에게 ‘맘을 닫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게 있을 때엔 더욱 더 신중해야 하고, 상대방의 묘한 마음의 결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할 땐 그 마음을 이해하려, 그리고 최대한 아이의 장점을 북돋워주고 인정해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어색함을 버리고 편안하게 다가와 마음을 열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래서 주로 활용했던 방법이 교실이란 공간에서 벗어나 함께 걸으며 시답잖은 얘기 나누는 것이었다.
을지문덕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찍부터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시작부터 칭찬 퍼레이드로 상대방을 완전히 무장해제 상태에 이르도록 만든다. 그것도 대우법이라는 아주 절묘한 기술로. 아마 이쯤에서 우중문은 ‘왠지 모르게 빠져든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이 최치원의 「격황소서檄黃巢書」다. 이 글에선 시작과 함께 적장인 황소를 완벽하게 까대며 기를 질리게 만드는 경지를 발휘해 버린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런 식으로 글을 써서 줬다면, 현대판 악플보다 더 심각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앉으나♬ 서나♩ 최치원을 죽일 생각’에 삶은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다.
그러다 3句에서 돌연 시상을 전환하며 본론에 들어간다. 5언절구의 형식 안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담아야만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 아주 절묘한 방법이다. 그래서 유득공은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서 “을지문덕은 진실로 재주 있는 무사로, 오언시를 부르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乙支文德眞才士 倡五言詩冠大東)” 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공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당신은 이미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이젠 뭘 해야 할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라고 말하는 거다. 그런 시상의 전환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던 『노자』의 한 구절인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까지 멋지게 부르며 그 의미를 더욱 배가 시킨다. 『노자』란 어떤 책인가? 그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비움만이 모든 가능성의 시작이라며 강조하던 책이 아니던가. 그건 달리 말하면 지금 당장의 욕심을 버려야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니, 지금은 ‘맘을 비우고 떠나시게’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론 이 시를 보내고 을지문덕은 우중문을 반격하여 30만 대군을 2천여 명만 남도록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