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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y 14. 2018

이별의 눈물 때문에 대동강은 마르질 않겠네

鄭知常의 ‘送人’

시는 나에게 고통이었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으며, 여전히 맞닥뜨리기 싫은 그 무엇이다. 

고등학생 때 언젠가 시를 쓰라는 과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도무지 펜을 들어 쓸 수가 없었다. 시란 늘 분석해야 하고 정답이란 게 정해져 있으며, 중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내 시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만 배웠지, 한 번도 내 삶에서 편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듯 시는 객관적인 잣대로 분석하고, 의미를 무작정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늘 벽과 같던맘 떠난 여인 같던 시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한문교육과에 와서 외우며 배웠던 시가 바로 이 시다. 교수님은 절창絶唱이다라고 자평하며 침을 튀기며 설명해주고 우린 그 말을 한 자라도 놓칠 새라 받아 적고 무작정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성수시화』엔 ‘사신들이 오면 부벽루에 걸린 시들은 모두 떼어냈지만, 이 시는 떼어내지 않았다’는 재밌는 내용이 쓰여 있다. 오죽하면 한문을 7년 동안 놨음에도 이 시는 저절로 외워지는 정도이니 그 치열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맹점은 그렇다고 시가 친해졌고 가까워졌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평측이니, 대구니, 압운이니 하는 온갖 난해한 이론까지 들이대면 ‘이번 생엔 시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라는 절망감이 깊어졌다. 

그래도 이젠 시간이 꽤 흘렀고 공부의 목적보단 감상에 목적을 두고 이 시를 보니 꽤 맛깔스럽고 재밌다고 느껴지긴 한다.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게 김형술 교수와의 『성수시화』 스터디로 가능했다. 어려운 용어들, 난해한 것들은 거두절미하고 시인이 그 배경 속에서 왜 이런 말들을 풀어냈는지 접근하는 방식이 참신했고,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같았기에 ‘시=어려움’이 아닌 ‘시=작가의 마음이 담긴 글’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왔다.      



▲ 시란 늘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 시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거라 당연히 생각하게 됐다.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옛 인기가요가 담긴 멋진 시

     

이 시는 그토록 오랜 기간 외워왔지만, 이번에 공부를 하며 처음 안 사실은 1, 2구는 이미 중국에 있던 부를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하긴 이 말도 어폐가 있긴 하다. 어느 글이든, 사상이든 전대의 온축된 기풍 속에 만들어지는 걸 테니, 이 시만 유독 그렇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의 같은 어조로 말하고 있는 시가 있다는 걸로 봐서는 아마 이 당시엔 ‘이별시’를 쓸 땐 그만큼 강엄江淹의 「별부別賦」가 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직조해 나갔던 것 같다. 

더욱이 재밌었던 건 2구에서 ‘노래가 흐른다(움직인다)’라고 표현했는데, 그건 지금도 무수히 양산되고 있는 그러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이를 테면 ‘차라리 잘 된 거야. 그래 그렇게 믿을래(캔디맨)♬’과 같은 노래였을 거다. 하지만 그게 어떤 노래인지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3구와 4구가 그 당시 대동강에서 이별할 때 누구나 부르던 인기가요였다는 걸 알았다. 정지상의 특출한 재기가 발휘된 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당시 대동강에 나가면 쉽게 들을 수 있던 노래였다고 생각하니 한결 가깝게 느껴지더라. 이래서 한국인들은 가락과 흥을 아는 민족인 건가. 



▲ 모란봉 동쪽에 있는  부벽루 사진이란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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