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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4. 2016

단재학교, 성내동 시대를 끝내고 송파동 시대를 열다

단재학교 학교 이전 기록

단재학교를 알게 된 것은 2011년 8월 30일이었다. 「한겨레 신문」 광고판에 난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보러 오게 된 것이다. 9월 6일에 둔촌역에서 내려 성내동 학교에 도착했다. 그 땐 3층에 학교가 있었고 1층엔 ‘단재카페’가 있던 때였다. 그 날의 면접은 1층에서 진행되었기에 단재학교를 볼 수는 없었다. 

면접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사전 미팅을 위해 다시 단재학교를 찾은 것은 15일이었다. 3층에 올라가 상담실로 들어가며 단재학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둔촌동에 있을 때의 단재학교, 09년도에 반포에서 개교하여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성내동 학교의 모습

     

성내동 단재학교는 두울빌딩 3층에 자리하고 있다. 3층엔 이화메디컬이라는 사무실과 단재학교가 한 층을 반씩 나누어 사용한다. 

단재학교라는 명패가 걸린 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상담실로 통하는 문이 보이며 그 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기나긴 복도가 보인다. 그 복도를 따라가면 세 군데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단재학교의 출입문과 복도.



상담실은 말 그대로 교사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작년(2013년 1학기)까지는 교사들의 책상이 모여 있어 교사 회의와 각종 업무를 하며, 학부모나 학생이 상담을 원할 경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후론 교사 책상이 각 교실로 옮겨져서 일반 교실 형태가 되어 영어 수업을 하는 공간이자, 교사 회의와 학생 상담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복도 왼쪽 편엔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통해선 ‘단군방’에 들어갈 수 있다. ‘단군방’은 단재학교의 교실 중 가장 크다. 빔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중요한 회의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들이 이루어진다. 이 방엔 특이한 시설물이 있는데 바로 붙박이 침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누군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이다(거의 사용하지 않음). 이곳에서 연극팀 수업과 학부모회의, 외부 강연 등이 이루어진다. 



▲ 단재학교 단군방의 모습. 가장 큰 교실이다. 거기엔 쉴 수 있는 침대도 있다.



복도 오른 편엔 두 개의 문이 있다. 끝 쪽에 설치된 문으론 ‘아뜰리에’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단재학교가 출판하는 『다르다』와 학생들이 자유분방하게 미술작업을 하는 등 예술활동이 주로 이루어졌기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곳에서 영화팀 수업과 『다르다』 제작이 이루어진다. 



▲ 아뜰리에는 예술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후엔 영화팀의 공간이 되었다.



오른 편에 설치된 다른 문으론 ‘혁거세방’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어찌 보면 단재학교내의 쉼터 같은 느낌이 있다. 방엔 창문이 설치되지 않아 밖과 완벽하게 차단된 곳이다 보니, 문만 잠그면 완벽하게 아지트로 변신한다. 이곳 책장엔 『민들레』 과월호를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이 있어서 밀폐된 독서실 같은 분위기도 흐른다. 이곳에서 개인프로젝트가 주로 이루어진다.                



▲ 2014년 7월 18일에 있었던 영화팀 전시회. 이게 성내동 학교에서의 마지막 활동이었다.




터전 이전 

    

빌딩에 위치한 성내동 학교는 세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공간이 비좁다는 것이었다. 30평 정도의 공간에 20명 내외의 학생이 생활하는 건 일반학교의 상식으로 봤을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보다 획일성을 중시하고 교과 위주의 수업을 하며 자유분방함보다 통제 위주로 갈 경우 30평은 오히려 적당한 규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공간의 비좁음은 활동 반경이 좁다는 의미와 함께, 의식의 협소함으로 이어진다. 환경을 초극할 수 있는 의지가 사람에겐 있다지만, 웬만한 경우를 제외하곤 환경에 따라 사람의 의식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서도 서로 부딪치며 으르렁 대고 싸우게 되며, 감정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공간이 지닌 한계로 인해 인식의 범위조차 협소해진다. 

둘째는 학교가 아닌 학원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단재학교를 처음 들어서면 왠지 사설 학원 같은 느낌이 든다. 빌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모델링을 학원 같은 분위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잘 꾸며진 학원 같은 분위기는 나지만, 왠지 대안학교가 으레 지니고 있을 법한 친밀감 같은 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는 자연광을 잘 받지 못하는 곳에 있다 보니, 학교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조량은 정말로 중요하다. 빛을 웬만큼 받지 않으면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빛은 ‘밝다’는 의미 외에 ‘생동감’과 ‘활기’와 같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서 낮이 될수록 빛이 충분히 들어오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 외에 월세가 비싸다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터전 이전을 진즉부터 고민했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학부모들과 의견 일치를 이루어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단재학교가 2009년 9월에 개교했으니,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단재학교도 5년 만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다.                



▲ 우물 속에 산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우물과 같은 협소한 의식 구조가 된다는 게 문제다.




터전을 옮긴다는 것의 의미 1 - 기회주의여선 안 된다 

    

학교 터전 이전이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과연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군자는 그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행동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자리를 벗어난 환상적 그 무엇에 욕심내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이적에 처해서는 이적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환난에 처해서는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한다.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다. -『중용』 14, 해석: 김용옥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中庸』 14  


        

위 글은 중국 고전 중 하나로 조선시대 학자라면 필독해야할 책인 『중용』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위 글을 문맥 상 읽어보면, ‘그 환경에 처해선 그 환경에 순응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이걸 단순하게 이해하면 ‘상황에 따라 기회주의적으로 살아라’라는 말처럼 해석할 여지도 있다. 우리가 친일파에게 욕할 수 있는 까닭은, ‘시대 상황이 아무리 그렇게 살길 부추겼을 지라도, 진정한 대의를 위해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환경에 따라 살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진정으로 옳다고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문장은 친일파의 행위를 동조하고 적극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친일 옹호의 논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볼 수 있다. 누군 친일을 할 때, 누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터전을 옮긴다는 것의 의미 2 - 위기는 기회?   

  

하지만 위 문장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위 구절의 핵심은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다’에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 환경 속에 소극적으로 묻어가려 하거나 도망치려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고심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환난과 같은 상황에 봉착했을 때에도 군자에겐 그것이 기회가 된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의 다른 버전인 것이다. 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는가? 위기상황은 나를 전면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나의 욕망 구조를 철저히 파헤쳐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관념’들이 현실과 덕지덕지 달라붙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했고 관계를 어그러뜨린 것이다. 위기 상황은 바로 그러한 ‘어떤 관념’의 민낯을 보게 만든다. 그럴 때에 그것을 고쳐야 할 것으로 여기는지, 자신의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지가 자신의 역량인 것이다. 그걸 고친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일 것이며, 당연한 자신의 모습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위기는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일 것이다.                




터전을 옮긴다는 것의 의미 2 - 적극적인 고민그리고 행동 

    

이적의 나라에 가서도 군자는 도망가거나 멸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합당한 도를 행해야 한다. 이적을 알기 위해서는 ‘중화中華-이적夷狄’의 이분법을 알아야 한다. 당시 漢민족은 자기네 나라의 우월성을 드높이기 위해 자신들을 문명을 일으킨 민족인 ‘중화(중심의 빛을 받은 민족)’라 불렀으며 변방의 나라는 야만스럽다 하여 ‘이적(오랑캐-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는 방위에 따른 명칭으로 불렀음)’이라고 불렀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철학이란 미명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에게 이적의 나라는 멸시의 대상이거나 함부로 짓밟아도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와 같은 고루한 이분법을 뛰어넘는 의식의 경지를 위의 구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적의 나라에도 드높은 가치들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면 폄하하며 업신여기려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치들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묻어가면 ‘친일파’가 되고, 적극적으로 되물으면 ‘군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그냥 흘러가면 ‘친일파’가 되는 것이고 환경이 주는 의미를 부여잡고 그 본질적인 의미를 고심하며 그런 고심 끝에 정리된 가치를 추구하면 ‘군자’가 되는 것이다. 나에게 단재학교 터전 이전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과연 나는 송파동 단재학교 시대에 ‘친일파’가 될 것인가? ‘군자’가 될 것인가?               



▲ 우리편과 남의 편으로 나눌 때, 남의 편은 적으로 인식된다. 그러한 이분법의 인식은 과거의 역사에도 번번이 있었다.




터전 이전 일지 

    

4월 21: 학교 터전을 옮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 학교 운영 위원회 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찬성의사를 표현했고, 주변에 괜찮은 공간이 있는지 알아봐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다. 

4월 30: 송파동에 다녀가다. 1층과 2층이 통으로 묶여 있는 구조이며 방 또한 여러 개가 있어서 학교로 쓰기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주변이 주택가라, 학교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심이 들었다. 

5월 23: 학부모 임시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터전 이전 문제를 다루다. 거의 모든 학부모의 동의를 얻었고, 기정사실화 되다. 

5월 28: 송파동으로의 이전이 거의 확실해졌다. 교사들도 그곳으로 확정을 지었고 학부모님들에게도 그 사실을 전하다. 

6월 20: 송파동 학교 계약 완료

6월 27: 학생들과 함께 송파동 학교를 청소하다. ‘반짝반짝 눈이 부’시진 않지만 깨끗해진 공간을 보니 흐뭇하다. 

8월 6: 송파동 학교 대문공사. 낮은 나무문이 아닌 육중한 철제문이 설치되다. 

8월 8: 송파동 학교 대문과 이층 부엌방을 페인트칠 하다. 

8월 12: 2층 난간에 펜스 설치 공사 완료. 

8월 13: 단재학교의 송파동 시대 개막



▲ 육중한 철문이 아닌 나무문을 바랐는데, 도움을 주신 것이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송파동 단재학교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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