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Oct 11. 2018

카자흐스탄 밤거리에서 외면했던 나를 만나다

2013년 6월 27일(목)

노래하는 시간이 끝나고 이향, 승빈, 혜린, 연중, 민석과 대통령 학교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                




카자흐스탄 볼링장에 가다

     

나머지 친구들은 노래를 부를 때 집에 갔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었다. 미리 일정을 알려줬으면 다 함께 볼링장에 갈 수 있었을 텐데, 닥쳐서야 볼링장에 간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볼링장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이곳에도 볼링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단재친구들이 볼링을 처음 쳐본다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골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시 운동이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감이 잡히는 맛이 있다. 민석이도 서서히 감을 잡으며 스트레이트를 칠 때도 있었다.                



▲ 처음 볼링을 쳐보는 아이들도 금방 익숙해져 스트레이트를 연달아 치기도 했다.




밤거릴 거닐다 

    

밤거릴 거닐었다. 근데 하필 밖엔 큰 비라도 내릴 듯이 어둡더라. 카자흐스탄에 오고 나서 세 번째 오는 비다. 어찌되었든 그것 때문에 조금만 걷다가 들어왔지만, 여태껏 밤거릴 거닐 생각을 못 해봤다. 

알마티에 있을 땐 교육원에 있던 여학생들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밤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밤거릴 거닐고 싶었으면,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홈스테이로 흩어진 탈디쿠르간에 와서는 백번이라도 나갔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말하면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걸 테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말이 통하지 않기에 이곳 사람이 무섭다’는 걸 테다. 혹 해꼬지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 앞선 것이다. 여태껏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충분히 느꼈고, 그걸 말로 풀어냈으면서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내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엊그제엔 호텔이 정전이 되어 구경도 할 겸 혼자 산책하고 들어왔으며 오늘은 9시가 넘어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릴 걷고 왔다. 여긴 가로등도 거의 없어 어둠이 짙게 깔리면 어둠의 세상이 된다. 그 세상 속을 거닐며 이국의 정취를 만끽했다. 



▲  쓸쓸하고도 벅찬 나 혼자만을 누릴 수 있던 순간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 혼자 외국에 나와 있다는 쓸쓸함이 파고든다. 어찌 보면 가상의 상황처럼 완벽하게 홀로 되었다고 느낀 이 순간에 나의 감정들, 나의 어릴 때 모습들이 하나 둘 생각나는 것이다. 난 겁이 많았고, 세상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었다. 지금은 알량한 자존심, 어설픈 지식, 그럴듯한 직업이란 외피로 날 가려 세상에 나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 외피 또한 벗고 보면 여전히 어린 시절의 여리디 여린 핏덩이가 울고 있다. 이국의 밤거릴 거닐며, 난 핏덩이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 나와 나의 조우遭遇, 그건 감춰뒀던 그리고 못내 꺼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자리였다.      



▲ [써니]의 한 장면. 어렸을 떄의 자신을 만나 그저 다독여주고 안아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 함과 못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