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원서접수와 금오신화
이번 주는 원서 접수하는 날이다. 첫 임용을 봤을 때가 2006년이었는데 그 당시엔 현장 접수만 받을 때였다. 경기도에서 시험을 봤었는데 수원까지 직접 가서 학교 강당에서 원서접수를 했던 것이다. 그곳은 이미 인산인해였고 작성해야할 항목도 많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작성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2008년인가 2009년인가부터 온라인 접수로 바뀌었다.
교육청별 정식 공고문은 저번 주 금요일에 나왔다. 예전에 임용을 볼 땐 늘 하던 일이고 늘 닥쳐오던 일이었기에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물론 그 때에도 공고문이 나오던 날, 그리고 접수하던 날의 마음의 풍경을 일기장에 쓰긴 했지만 일기장은 이미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되돌아 생각해볼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땐 밥 먹듯 당연히 찾아오던 순간이었던 반해 이번엔 내가 원해서 찾게 된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김어준의 상담을 듣다 보니 아주 재밌는 상담 내용이 있었다. 누군가 “이혼을 생각 중인데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한 것이고 그 질문에 따라 김어준은 “하라 마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결혼은 수많은 여건과 조건에 의해 타의적으로 하는 것인데 반해 이혼은 오로지 나의 결정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이혼을 하게 되면 그게 30대에 했건 40대에 했건 30대의 지성이나, 40대의 지성을 가지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즉 좀 더 품위 있어지고, 좀 더 여유 있어지고, 좀 더 자신감이 넘친 상태로 20대로 돌아간 거죠. 그러니 막상 20대 때엔 여러 이유로 주저하던 일들도 맘껏 할 수 있고,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대로 옮긴 건 아니지만, 저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상태가 저 말과 거의 흡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막상 임용에 달려들던 20대 후반의 내가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이 자리로 다시 돌아왔지만 위의 말처럼 그때와 지금은 같지만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30대 후반에 마치 이혼이라도 한 것처럼 20대 후반의 나로 돌아온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엔 주눅 들었고 버벅 거렸고 힘겨워만 하던 한문공부가 지금은 정말 재밌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 투성이다. 물론 좀 더 잘하는지는 논외로 쳐야 할 거 같다. 시험공부를 하는 이상 그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성적으로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와 관계없이 지금은 한문을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그 때와는 무척 달라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번 주는 원서접수를 하는 날이기에 월요일에 곧바로 원서접수를 했다. 그동안 시스템이 정착이 되었는지 예전에 접수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이 단순해졌더라. 입력해야 할 상황은 개인 신상명세와 교원자격증 종류, 그리고 한국사능력시험 자격증 번호 정도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원서 접수가 끝나서 뭔가 잘못한 거 아닌 지, 빠뜨린 건 아닌지 다시 검토해보긴 했지만 정말 그것만 적으면 됐다. 예전에 기억하기론 교원자격증 번호까지 입력했던 걸로 아는데, 지금은 그게 실시간 검색이 가능한지 그런 번호조차 입력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다.
막상 이렇게 원서 접수를 하고 나니 내가 정말 임용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진 인식도 잘 하지 못한 채 뜬 구름을 걷듯 있었다는 소린가^^
한문소설은 나에겐 산 같은 존재였다. 원체 내용도 많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예전에 임용을 할 땐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넘지 못할 산이란 없다. 모두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누군가 그랬듯이 사람이 후회하게 되는 일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후회하게 되는 일보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건 미련으로 남고 두고두고 ‘왜 그 때 좀 더 용기를 내보지 못했을까?’하는 자책으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다면, 아니 하고 싶다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게 실망으로 남는다 해도 쓸데없는 짓이라도 해보려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엔 금오신화라는 벽을 맘껏 넘어봤다. 그림책을 읽어보며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원문과 해석을 같이 편집하여 하나의 자료집으로 만들었고 관련 논문을 함께 편집하여 금오신화의 내용을 좀 더 체계적으로 알 수 있도록 덧붙였다.
물론 이런 작업을 했다고 해서 금오신화를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하나는 분명해졌다. 금오신화가 예전엔 벽이었고 산이었다면 지금은 동네의 언덕처럼 가깝고 친근해 보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금오신화에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예전엔 겁부터 먹었던 데에 반해, 지금은 환호성을 지르며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하지 않아 후회했던 일이 태반이었다. 안 할 이유는 언제나 차고 넘쳤고 해야 할 이유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핑계를 만들고 합리화하기 좋아하는 습관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 이상 예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맘껏 해보는 것도 나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뭘 바라는지 확실히 알아 그것을 부담 갖지 말고 맘껏 해볼 일이다. 지금의 모토는 딱 하나. ‘해보고 나서 생각해보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