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1
마침내 임용고시일이 밝았다. 아기다리고 고기다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날 하루를 위해 일 년 동안 애를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기대는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여느 때의 임용고시일에 비하면 부담은 적었다.
2006년 12월에 처음으로 임용을 봤을 땐 첫 임용시험임에도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 말이다. 그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만들기보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힘겹게 싸우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경기도에서 시험을 본 덕에 오랜만에 군대 친구인 민호도 만날 수 있었고 생전 처음으로 시흥이란 곳에도 가볼 수 있었지만, 시험의 중압감을 한껏 치켜 올려 마치 넘지 못할 선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2010년 이후로 8년이란 공백기를 두고 다시 보게 되는 임용시험은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시험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이젠 첫 시험에 대해 좀 더 맘을 놓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공부를 했고 첫 시험을 보는데 뭔 합격이냐?”라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시간을 오롯이 맛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합격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상황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줬고 8개월 간 어떻게 씨를 뿌렸는지 그 수확물을 목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합격이 아닌, 뿌린 씨를 거둔다는 마음으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있으면 그 뿐이라고 맘을 다잡았다.
그래도 긴장은 되나 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올해 2월에 정말 오랜만에 시험다운 한국사능력시험을 봤을 때도 모처럼만에 느껴지는 긴장감이 왠지 모르게 좋았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한가득 느끼게 만들어줬기 때문이고 시험을 통해 내가 해왔던 걸 확인한다는 게, 결과가 보이는 시험을 본다는 게 두근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강도가 센 만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절로 느껴질 정도의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니 잠이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거의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다가 6시에 시계를 맞춰놨음에도 5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임용고시 시험 시간은 9시부터 오후 2시 20분까지 5시 20분 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 이 시간에 잠을 더 자두는 게 당연히 낫지만, 더 이상 잠이 안 올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교육학을 펼쳐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학을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나중에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냈고 거의 닥쳐서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다. 특히 교육학은 평소의 꾸준히 봐두고 정리해야 함에도 그러질 않았고 닥쳐서까지 제대로 들여다보기보다 얼렁뚱땅 넘어갔으니 참 할 말이 없다. 정말 버나드쇼의 말마따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다
집에선 7시에 나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학교는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입실이 가능하다고 하니, 집에서 하는 둥 마는 둥 할 거면 차라리 빨리 도착해서 교실 분위기도 좀 익혀두고 거기서 집중해서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이때가 되고 보니 내 머릿속엔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마치 지구를 정복하는 외계인이라도 막아서려는 듯 혼자 한껏 비장해진 상태로 외투를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듯 폼나게 걸치고 운동화끈을 힘껏 묶은 후 문을 잡고 나간다. 마치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향해 있다는 듯, 그리고 모든 시선이 날 향해 쏠려 있다는 듯 비장미 넘치게 한 걸음을 뗀다. 무거워지지 말자, 진지해지지 말자고 그렇게 수도 없이 외쳤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내 감정 내가 어쩔 수 없다면 이 순간만큼 한껏 이런 비장한 기분을 맛보리라.
여기서 온고을중학교로 바로 가는 버스는 8시 이후에나 운행이 되니 환승할 마음으로 모래내시장까지 가는 버스가 오면 무작정 탈 생각이었다. 나가자마자 온 버스는 안골까지 가는 버스더라. 그래서 그걸 바로 탔다. 사위엔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빗방울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저번 주에 일기예보를 봤을 때만해도 비 예보는 없었지만 엊그제 일기예보엔 바뀌어 오늘 오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에 임용이라. 예전에 다섯 번 임용시험을 봤었는데 그때 딱 한 번 2007년도에 광주에서 시험을 봤을 때 정말 많은 비가 왔었다. 그래도 그때는 졸업 동기들이 있어 임용시험이 끝나서 함께 밥을 먹으로 갔던 기억이 있고 그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만감이 들었던 아련하고도 씁쓸한 추억이 있다.
가는 길에 재밌는 일이 있었다. 102번 버스는 온고을 중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다. 그러니 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102번 버스로 환승할 수 있다면 좀 더 편안하게 학교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6번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 버스가 전주시청 앞 쪽을 지나갈 102번 버스가 중앙시장 쪽에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걸 다음지도로 확인했다. 그래서 그 순간 ‘그렇다면 여기서 내려서 그 버스를 환승하는 것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유심히 102번 버스의 행방을 쫓고 있었는데 우리 버스가 신호에 걸렸을 때 102번 버스는 그 사거리를 휑하니 지나가는 게 아닌가. 맙소사!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앞으로 무심히 그것도 매우 빨리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있노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것이야말로 한껏 긴장된 나에게 주는 우연이란 선물이 아닌가. 아쉽고도 허탈했지만, 매우 재밌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었다. 또 한 번 마주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나는 안골에서 내려 용문객잔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면 탈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6번 버스가 훨씬 빨리 안골에 도착해야 하고 102번 버스는 전고의 좁은 거리를 지나서 오니 거기서 꽤 지체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6번 버스가 안골에 도착했을 때 정말 열심히 달렸다. 102번 버스는 2정거장 전쯤에서 오고 있었다. 지금은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이니, 과연 뛰어간다고 탈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신호를 두 개나 건너고 마지막 신호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102번 버스는 저 멀리서 쾌속 질주를 하더니 내 앞을 유유히 지나가 버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102번 버스와의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두 번의 상황을 겪고 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이건 도대체 언제 개그냐^^;;).
근데 재밌는 점은 버스는 놓쳤지만 10분 정도 되는 거리를 5분 만에 달려온 바람에 온고을중학교까지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래서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 건가 보다.
어쨌든 이런 에피소드 덕분에 시험 날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고 맘속 깊은 불안들은 누그러졌다. 그래 이번 시험의 모토는 합격도, 불안도, 긴장도 아닌 즐김이다. 딱 이런 컨셉에 맞는 완벽한 시작이다. 두 번의 엇갈림의 미학이 안겨준 즐거움, 그래 이제 나도 한 번 즐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