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한문임용 후기2
거기서 15분 정도를 걸으니 드디어 익숙한 곳이 나온다. 온고을중학교다. 나의 2010년 마지막 임용을 봤던 장소이자, 새롭게 시작하는 첫 임용을 볼 장소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장소라 할 수 있다. 임용고시날에 학교는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입실이 가능하며 그 이후엔 당연히 입실은 통제되며 교문까지 폐쇄하고 심지어, 운동장에 주차된 모든 부모들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서 대기해야 한다고 하더라.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더욱 삼엄해진 것 같은 느낌은 든다.
102번 버스와의 우여곡절 끝에 학교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5분이었는데 이미 학교 앞은 한 바탕 난리더라. 각과 후배들은 모두 나와 응원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 부모의 차를 타고 온 수험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는 축축한 날씨다 보니 더 번잡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번 주에 소화시평 스터디를 할 때 김형술 교수님은 “이번 임용고시엔 교수님들이 모두 나가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신다. 지금껏 전북에서 시험볼 때 후배들이 학교 앞에서 응원해주는 걸 본 적은 있어도 교수님들이 온 적은 없으니 색다른 광경이긴 하지만, 시험에 대한 압박에 교수님들의 응원은 더 큰 부담을 안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난스레 “그렇다면 교수님들 오시기 전에 얼른 들어가던지, 그게 아니라면 후문으로 몰래 들어가야겠어요.”라고 농을 쳤던 것이다.
내가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땐 7시 35분이었는데 그때 소현성 교수님이 후배로 추정되는(?) 아이들과 함께 서계셨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마주친 터라 하마터면 인사할 뻔했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마치 남인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현성 교수와 일면식이 있다면 당연히 인사를 해야 맞지만 그러지도 않는데 인사를 했다면 서로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온고을중학교는 8년 전과 비교해보니 학교에 페인트를 새롭게 칠해서 그땐 노랑이 학교였는데 지금은 파랭이 학교가 되었다. 뭔가 색깔 자체가 매우 유아틱한 느낌이 있다. 마치 ‘꿈동산 오신 여러분 맘껏 기량발휘하세요’라고 온 맘과 성심을 다해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반갑다, 온고을중학교야. 8년 동안 잘 있었니~
중앙현관에 들어서니 덧신이 있더라. 예전에 임용을 볼 땐 덧신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신발 그대로 신고 들어가서 임용을 봤었는데 지금은 학교의 위생을 위해 좀 더 짜임새가 갖춰진 느낌이다. 더욱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신발에 진흙이 묻었을 테니, 덧신을 신게 하는 건 더욱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내 신발 곁에 덧신을 두르니, 뭔가 촌스러우면서 색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교실에 들어오니 두 사람이 와 있었고 나머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너무 일찍 온 거 아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이런 기록을 남겨놨다.
8년 만의 try다. 분명한 건 들어올 때만 해도 신이 났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즐기기 바빴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긴장감이 몰려오고 하나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맞다. 이게 현장성이고 이게 현실이다. 그곳 그 자리,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결국 실력발휘란 이런 압박, 억눌림 등을 모두 대수롭지 않게, 하찮게 여기는 절대 정신에 있었던 셈이다. 뼈저리게 그리고 매우 실감나게 다시 느껴본다. -7시 55분
왜 아니었겠는가. 시험장, 특히나 임용시험이란 나에겐 벽과도 같은 그래서 감히 넘어볼 생각도 못한 채 주눅 들어 주저앉아 있기만 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매번 1차도 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기에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불안, 초조, 그리고 막상 경쟁상대라고 느껴지는 뭇 사람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고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맹자도 늘 느꼈던 것 같다. 주눅들 수밖에 없는 상황, 나를 눌러버리려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맹자는 “대인을 설득할 땐 그들을 하찮게 여겨 드높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니 실력에 대해 당당하고 너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데 그들의 지위, 재산, 학력 등의 외부적인 여건 등이 나를 어떻게 휘젓느냐는 것이다. 그처럼 나도 시험의 압박을 하찮게 보고 평소에 쌓아온 실력을 풀어낼 수 있으면 된다. 시험 앞에 나를 믿고 뚜벅뚜벅 걸어갈 마음 자세만 있으면 된다.
임용고시장엔 최대한 일찍 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는 아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어서 평소보다 기온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히터까지 틀어줘서 외투는 벗어놓고 후리스만 입고 있었는데도 막상 문제를 열나게 풀다 보면 살짝 덥게 느껴질 정도의 날씨였다.
교육학이 원체 미진했던 터라 이 시간만이라도 하나라도 더 봐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일찍 온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를 바꾸기에 여념이 없더라.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실에 들어오면서 깜짝 놀랐던 게 책상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다는 거였고, 그 이름은 1교시가 시작되기 20분 전쯤에 붙였기에 일처리가 빠르지 않고 늦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충남에서 시험을 본 다겸이와 얘기를 하면서 그건 일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다. 충남에선 자리에 이미 이름표가 붙어 있어 의자는 바꿀 수 있었지만 책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북에선 그러지 않았기에 원하는 책상과 의자를 맘껏 바꿀 수 있고 그렇게 시험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일찍 와야 할 이유를 알았다. 의자나 환경을 나에게 딱 맞추기 위해서다. 그게 되지 않으면 시험 보는 내내 다른 환경이 신경 쓰여 시험엔 덜 신경 쓰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빨리 와서 좀 헤매도 좋으니 일찍 와서 분위기도 익히고 환경도 맞춰라. -8시 10분
그 모습을 보고 의자가 약간 높다는 생각이 들어 의자를 한 번 바꿔봤다. 그렇게 하면 편할 줄 알고 바꾼 것인데, 막상 바꾸고 나서 보니 원래 바꾸지 않았을 때의 의자가 훨씬 편하다는 걸 알겠더라. 그래서 다시 원상복귀를 시켜놨다. 드디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8시 30분이 되니 모든 핸드폰과 전자기기를 걷어갔고 35분쯤엔 가방을 앞으로 내라고 하더라. 정말 오랜만에 매우 낯익은 광경이었다. 예전에도 가방은 교실 앞에 냈던 기억은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뀐 시험 체제의 매우 특이한 점은 컴퓨터 사인펜으로 수험번호조차 마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시험의 경우엔 수험번호나 컴퓨터로 처리될 것들은 컴퓨터 사인펜으로 나머지는 빨간색 펜으로 쓰는 게 일반적인데,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이 번지지 않는 펜으로 써야 한다고 크게 명시되어 있었고 계속 강조했다. 논술형 시험 체제로 바뀌면서 저런 부분들이 크게 달라졌다. 여기엔 번지는 펜으로 썼다가 운반되는 과정 속에 답안지가 번져 채점이 곤란해진 상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마음에 컴퓨터 사인펜을 챙겨가긴 했었고 수험번호는 그걸로 칠할까도 생각해봤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펜으로 수험번호를 칠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그걸로 하기로 했다. 꼼꼼히 번호를 맞춰가며 수험번호를 최대한 까맣게 칠했다. 마치 색칠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순간만큼은 다들 천진난만해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