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3
8시 45분에 답안지를 나눠줘서 수험번호를 체크하게 했다. 교육학 시험지는 한 장이지만, 논술로 써야하기 때문에 답안지는 두 장을 나눠준다. 그래서 1페이지인지, 2페이지인지를 체크하게 되어 있더라. 2010년 임용 때까진 교육학 시험은 오지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였지만, 이젠 확 달라졌다. 문제를 논술형으로 쭉 풀어쓸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교육학 논술을 정식으로 쭉 한 편을 써보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진 그저 눈으로 정리하기만 했고 막상 현장에서 글 쓰는 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8년 동안 단재학교에서 생활을 하며 글은 어느 때보다 더 자세하게, 그러면서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트위스트교육학’ 같은 경우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26편이나 되는 글을 썼을 정도로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것이야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 문제는 문제를 받고 어느 정도까지 구상한 다음에 언제부터 쓰기 시작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시험지를 받자마자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전체적으로 써야 할 것들의 체계를 세우고 그걸 가지고 시험에 임해야 함에도 받자마자 긴장이 된 나머지 꼼꼼히 읽으려 하지도 않고 무작정 쓰려고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이건 경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시험의 분위기에 휩쓸린 나머지 마음만 앞서는 상황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 맘을 늦추며 진장하라고 단속을 하고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워낙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테일러의 학습경험선정의 원리 중 기회의 원리와 만족의 원리에 대해 쓰는 것은 어떻게 때려 맞췄으며,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나 척도법, 그리고 그걸 사용할 때의 문제점 같은 나올 거라 생각도 못했던 것이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마지막의 변혁적 리더십의 경우는 그저 알고 있던 대로 썼다. 평소에 쑥 시험 체제에 맞춰 써보는 연습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다가 이렇게 닥치고 보니 이런 상황에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시험장에선 평소처럼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풀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 순간에 매몰된 나머지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학 문제지를 받고 구상하고 써야하는 데까지 1시간이란 시간은 무척 짧다는 것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교육학 어려웠고 뭔 말을 쓰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알게 된 건 20분 정도 진지하게 문제지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도 40분이면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글을 쓰던 버릇이 있으니,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럽진 않다. 내년엔 정말 진즉부터 조금씩 해서 전태련 선생님 말마따나 체계를 세워둬야겠다.
드디어 전공시험이다. 예전엔 전공시험이 나눠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1시가 되기 전에 시험이 끝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공을 두 번에 걸쳐서 보니 2시 20분이 되어서야 시험이 끝난다. A형 시험 문제는 단답식 문제들이 6문제 정도는 나오기에 그것도 단순암기에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시험지를 받아들고선 ‘과연 어떤 문제들이 나왔으려나?’ 저절로 기대가 되었다. 지금껏 5번이나 시험을 봤는데 시험지를 앞에 두고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도망가고 싶고 그렇기만 했었지, 저걸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라기보다 서두에서도 말했다시피 맘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리라.
10시 40분이 되자마자 시작종이 울렸다. 시험지를 훑어보지 않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가기 시작했다. 단답형들은 모두 교육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침까지 외웠던 것들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그래서 바로 작성을 했고 두 번째 페이지부턴 맹자의 글을 비롯하여 모르는 문장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집중을 하고 해석해보니 웬만큼은 풀어볼 만했다. 마지막까지 푸는 데 무려 11시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아직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40분 정도의 시간으로 재점검한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와 한바탕 씨름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엔 정말 문제 자체가 나에게 포근하게 안겨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문제를 푸는 그 시간자체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지금까지 임용을 보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A형은 모르겠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문앵聞鶯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턱턱 막혀서 시험시간이 흐르는 걸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 다 해석이 되었고 쓰는 데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처음으로 문제를 보면서 나에게 포근히 안겨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제도 11시 30분 정도에 거의 푼 상황이었고 그 후론 검토하며 맞춰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과연 B형은?
그리고 코도 안 나오고 겁나 집중도 잘 된다는 게 최고로 좋다. 지금의 내 컨디션은 최상이다. 옆자리 커플이 쉽다는 얘길 한다. 내가 쉬웠으면 남도 쉬운 거겠지. 그걸 염두에 두고 B형은 어떨지 봐야겠다. 그리고 A형 열어보기 전에 ‘정말 궁금하단’ 생각이 최초로 들었다. -12시 15분
A형에 대해선 모두 쉬웠다고 입을 모으더라. 하긴 뭐 나에게만 쉬울 리는 없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역시나 문제는 B형이었다. 이걸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나에게도 조금이라도 희망은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B형이 시작되기 전 시간에 싸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있다. 나는 사과도 가져왔고 초코렛들도 가져왔지만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어제 잠을 못 잤기 때문인지, 늘 요 시간 때에 자던 버릇을 들였기 때문인지 스르르 잠이 오더라.
B형은 역시나 지문들도 길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 시간이 무진장 지체되었고 특히 마지막 문제가 논술 문제다 보니 부담이 더욱 배가 되었다. 그것을 풀려면 앞에서 차근차근 모두 다 풀 수 있어야 하는데, 앞에선 막혀 있지, 아예 해석이 안 되는 문제도 있지,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긴장이 되던지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결국 앞부분은 빈칸으로 남겨둔 채 8번 문제부터 풀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건 고문진보에 나오는 효행에 관한 내용을 다룬 『진정표』였다. 이번엔 본다 본다 하면서 결국 보지 않았지만, 대체적인 윤곽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써나갈 수 있었다. 그걸 다 쓰고 나서 앞에서 풀지 못한 문제들을 풀려고 들여다보는데도 역시나 풀지 못하겠더라. 그리고 그 시간쯤 되니 손이 너무도 아파왔다.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점 짜리 문제 3개 정도는 아예 써보지도 못한 채 놓고 나와야 했다.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은 최선을 다해서 풀었으니 괜찮다.
드디어 시험은 끝났다. 2009년에 임용시험이 끝났을 때 무척이나 참담한 기분을 느꼈었고 도망치고 싶기까지 했었다.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번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풀 수 없는 문제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8개월 동안 공부에 대한 수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한다면 나는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고 이번에 했던 공부방법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분명한 건 이건 희망이고, 내년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기반을 마련했으니, 이걸 기초로 삼아 내년엔 더욱 더 꿈의 나래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