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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27. 2018

가슴 뛰는 사람을 만나 전염되다

박준규를 만나다

임용공부를 시작하기 전엔 잘 몰랐던 게 있다. 단순히 하고 싶던 공부만 실컷 할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는데 망각해버린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험생이 된다는 건 존재 자체가 작아진다는 걸 의미했다. 존재가 작아진다는 건 스스로 위축되고 남들 앞에 서길 꺼려하며, 여태껏 맺어왔던 관계에도 쉼표를 찍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합격하기 전까지는 평소와는 다르게 거의 공부에만 몰두하며 은둔자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수험생이 된다고 해서 꼭 이런 삶을 강요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수험생임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솔직히 이건 내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다. 시험이란 압박이, 그리고 결과치를 원하는 시험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잔뜩 옭아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수험생 시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삶은 피폐해져가고 존재는 위축되어 간다. 

예전에 임용공부를 할 때 이런 사실은 아주 적나라하게 느꼈으면서도 밥벌이를 하며 살다 보니 완전히 망각해버렸던 것이고, 올해 다시 준비를 하면서 그 느낌이 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 임용공부를 하며 나의 불안을 직면하게 됐다. 공부, 특히 임용공부는 존재를 작아지게 만든다.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생각을 좌우한다 

    

바로 이런 때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다. 한때는 지극히 잘 나가던 때도 있었고, 2NE1의 노래처럼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흥겹게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지만,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텅 빈 무대처럼 지금은 쓸쓸함을 친구 삼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때 준규쌤에게 카톡이 왔다. 12월 13일에 연락이 왔고 한번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통화를 했더니,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조금 일 있었던 지라 그게 어떻게 해결됐는지 궁금하던 차였지만, 함부로 전화하진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시니, 기분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절로 행복해지더라. 





임용시험 공부를 그만두기로 하고 직업을 찾아 전전하던 때에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된 건 여러모로 행복한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는 건 당연하다. 학원에 취직했다면 현실적인 욕망에 따라 성적을 높이기 위해, 자격증을 따도록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러니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당장 사람들이 원하고 하길 원하는 것들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재학교는 대안교육이었고 현실적인 욕망보다 학생 개개인을 좀 더 깊이 있게 보려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이런 곳이니 당연히 교육의 본질이 뭔지, 교육이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학생들을 만나고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이런 고민들이 가능했기에, 아니 더 치열하게 부딪혀볼 수 있었기에 여러 교육모임(민들레 읽기 모임동섭쌤 강의우치다 타츠루와의 만남교컴 연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힘이 되어 단재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것을 고민하는가가 많은 것들을 좌우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되어 6년 동안 함께 한 것을 어찌 축복으로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단재학교에서의 마지막. 졸업식 겸 발표회를 끝으로 나도 이곳을 떠나게 됐다.




그래 작아진 채로 있기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바로 단재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맘껏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나래를 펼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 준규쌤이다. 그러고 보니 전주로 내려와 다시 임용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인데 이번에 연락이 되었고 준규쌤은 한 번 보자는 말까지 하셨다. 그것도 지금 내 상황이 서울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전주에 직접 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 버스를 타고 오셔서 전주에서 만나게 됐고 한옥마을로 이동해 비빔밥도 맛있게 먹었으며, 커피숍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순간은 임용공부를 하며 한없이 위축되고 작아진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간이기도 했고, 저번에 앵두를 만나 얘기를 나누며 ‘그래 나도 앵두처럼 작아지지만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야지’라는 감상이 어렸듯이, 준규쌤을 만나고 나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으니, 기죽지 말고 나아가야지’라는 감상이 어렸다.                



▲ 준규쌤과 정식을 먹었다. 엄청 깔아주진 않아도 먹을 게 딱 맞게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유니크하지만 오히려 절실한 동섭쌤의 이야기

     

준규쌤은 지금 여러 일들을 기획하고 당장 할 수 있는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다. 그걸 ‘방아쇠를 당겼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말에 느껴지는 감정은 ‘참 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하고 싶은 일은 하고보는 마음’이란 것이었다. 

준규쌤은 동섭쌤의 유니크한 이야기에 흠뻑 매료되어 동섭쌤의 이야기가 좀 더 힘을 가지고 세상에 울려 퍼지길 원했다. 동섭쌤은 ‘기술이 곧 처방이다’, ‘지적 폐활량을 키워라’, ‘학습=획득이란 관점을 지우고 학습=실천이란 관점을 획득하라’와 같이 아리송한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그건 곧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게 된 상식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적이기 때문에 그걸 버릴 때에야 교육에 대해,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 동섭쌤의 강의는 충격의 도가니다. 메시지는 유니크하지만 충격적이란 표현이 더 맞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단재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접한 동섭쌤의 이야기는 너무도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너무 삐딱선을 타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단재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했던 6년이란 시간을 통틀어서 보자면 일반적인 상식, 주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는 말들이야말로 얼마나 아이들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인지, 얼마나 현실을 무시한 삐딱한 시선인지를 여지없이 느끼게 해줬다. 아이들은 ‘영원한 아이’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도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역사적인 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처방’이 아닌 그 아이에 대한 ‘기술’이었고, 지적 폐활량을 키우고 그 아이를 지지하고 받아들이는 거였다. 그건 마치 『엑스맨』이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넌 돌연변이야.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맞추려 노력해봤니?”라는 나무람이 아니라, “넌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너의 재능을 펼 수 있도록 해보자.”는 신뢰일 뿐이었던 거다.                



▲ 엄청 사람이 많다. 주인에게 부탁하여 사진 한 장 찰칵.




방아쇠를 당기다

     

이렇게 유니크한 동섭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준규쌤은 그 얘기가 더욱 널리 퍼지도록, 그리고 그런 얘기들에 가슴이 뛰는 사람이 함께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가는 장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자신의 책이 나온다는 것과 그리고 ‘배움’이란 제목을 지닌 월간지가 나올 거라는 것을 알려줬다. 

책이 나온다고, 월간지가 나온다고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준규쌤은 ‘방아쇠를 당겼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작은 하나의 불씨가 모든 걸 활활 태우는 거대한 불꽃이 되듯,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결말로 이어지듯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정도의 일로 무언가가 되겠어?’라는 자책은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로 시작해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것도 나름대로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게 마련이고 그렇게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결실을 거두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 커피숍으로 사진을 옮겨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 한마당 속으로.



이미 도보여행을 통해 그저 한 걸음씩 내딛는 행위가 목포에서 고성까지 걸어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올해 임용공부를 하며 공부 방법을 바꿔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는 작은 행위가 모여 『논어』와 『맹자』를 통으로 집중하며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시작은 미약할 뿐만 아니라, ‘괜한 일로 시간 낭비하는 거 아냐?’라는 온갖 불안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렇게 미약한 시작이 쌓이고 쌓이면 그 끝은 창대하다 못해 결코 후회도 없으며 오히려 무언가 해왔고 해냈다는 뿌듯함을 안겨주는 상황까지 이르게 한다. 아마도 준규쌤이 말한 방아쇠를 당긴 시작은, 그 사실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으며 그 과정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태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 한 걸음의 철학을 몸소 알려줬던 도보여행. 이 여행을 통해 믿게 됐다. 지금 해야 하는 작은 일들의 소중함을.




나이 먹는 것과 늙는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 오랜만에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됐고 임용을 준비하는 이 순간이든, 나중에 교사가 된 순간이든 어느 순간이든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고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준규쌤은 거의 1년 만에 보는 것임에도 마지막으로 만나고 헤어질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됐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건,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과 늙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이는 유기체로 태어난 이상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먹지 않을 수 없지만, 늙는 건 시간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은 어떨 때 늙는 것일까? 그건 이번의 만남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 그래서 맘껏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지만, 세상에 무관심해지고 사람에 아무런 감흥도 없으며 하고 싶은 일조차 사라진 사람은 늙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가슴 뛰는 현재를 살아가는 그대는 청춘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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