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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6. 2019

진도기록판과 경쟁의식

닫는 글1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학생들과 함께 각자의 여행기를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쓴 후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직도 카자흐스탄에 있는 것처럼 모든 기억이 생생하고 그 때의 감흥은 그대로다.                




워드작업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등장한 진도기록판

     

하지만 이젠 좀 더 냉정하게 카자흐스탄 여행기의 여는 글에서 썼던 ‘자기 자신을 돌아봤나? 인한 존재가 되었나?’라는 것을 짚어볼 차례다. 

아이들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틈틈이 기록을 남겼고 그걸 워드작업하고 있다. 기록한 것은 많은데, 그걸 워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워드작업을 하여 학교 카페에 올리고, 한글파일로 편집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니, 벅찰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날짜가 지날수록 긴장도와 집중도는 떨어져서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 게임을, 누군 웹서핑을 하기도 한다. 이대로 놔두면, 시간 내에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분위기를 잡고 열중할 수 있도록 진도기록판進度記錄板을 만들어 화이트보드에 게시해놨다. 

기록판에 각자의 진도를 체크하자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경쟁시키는 거예요?”, “나쁜 거 봐봐. 이런 걸로 서로 경쟁이나 시키고.”하는 등등의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아이들이 보기엔 ‘보험회사의 실적표’처럼 보였나 보다. 하지만 내 의도는 결코 남과 자신의 진도를 비교하여 분발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행기를 쓰는 것 자체가 경쟁이 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각자가 쓴 여행기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 하루만에 1주일 것을 모두 워드 작업할 수 있을 정도로 분량이 적은 반면 누군 2~3일치도 겨우 할 정도로 분량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판은 단지 자신의 현재 진도를 체크하며 스스로 분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것이다.                



▲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비교 속에서 큰다. 그러니 뭘 해도 경쟁의식이 발동하는 거다.




경쟁만이 남은 학교불인을 부추기는 사회

    

하지만 이런 표를 보면서도, 단순히 ‘실적표’ 내지는 ‘성적표’와 등치시키는 것을 보면서 경쟁주의 사회가 남긴 깊은 상흔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한없이 경쟁에 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에선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인생은 레이스라고 배워왔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힐 것이다. 태어나기 위해서도 300만의 정자가 경주해서 한 놈만이 성공한다. 1978년 오후 5시 15분에 내가 태어났다. 5시 16분에 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들은 공학자가 될 거야. 파르한 쿠레쉬. 공학박사.” 내 운명은 이렇게 정해졌다. 내가 무엇이 되고픈 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라며 경쟁주의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다. 

이 영화는 인도영화지만 한국 사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남보다 빨리 걷기를, 남보다 빨리 한글 떼기를 바라고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식을 키운다. ‘남보다 빨리’가 어느 순간 아이 키우기의 중요명제가 된 것이다. 그게 학교에 들어가면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가시적인 형태로 바뀐다. ‘나의 열심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너보다 나은가?’하는 비교와 상대평가만 남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니, 나의 위치를 표시한 표를 보여주면 나의 위치만 확인하기보다는 남과의 위치를 비교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경쟁주의 사회가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이고 이 때문에 생긴 왜곡된 인간관이 상처가 되어 오늘과 같은 학생들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한 사람이 되어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아픔에 초연한 불인不仁한 사람이 되어 남을 이길 때에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세상은 은근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세 얼간이]에선 시종 경쟁하라고 부추긴다. 그런 세상이기에 살아남으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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