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아침 6시 30분에 남부터미널에서 구례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지난 10월에 부산영화제를 갈 때 7시 30분 버스를 타려했는데, 늦은 학생들 때문에 차를 놓친 경험이 있었다. 개인의 작은 실수가 단체에겐 엄청난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때에 비하면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출발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하지만, 늦을 거라는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배낭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아침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 거리의 운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가로등 켜진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어볼 일이다. 그러면 지금껏 나의 밑도 끝도 모를 불안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건 내가 만든 환상이지만, 그 환상에 갇혀 바르르 떨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새벽 거리를 걸으며 ‘이제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니, 불안한 가운데 마음이 놓였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춥듯이, 막상 닥치기 전이 가장 불안한 법이다.
처음 운행 되는 모란행 전철은 5시 34분에 있다. 그러니 그 전철을 타고 남부터미널로 갔다. 이미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6시 15분이 되기 전에 모든 학생이 모였다. 이른 아침에 무거운 배낭을 안고 오는 학생들을 보니, 시작이라는 게 실감났다. 나처럼 두렵고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을 테지만, 누구 하나 그런 마음을 표현하진 않았다. 이럴 때 보면 어린 학생들이지만 바위처럼 강해 보인다.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차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주원 어머니는 우리를 배웅해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그런 따스한 마음이 잔뜩 긴장되어 있던 그 순간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구례는 3시간 10분 정도 달려 도착했다. 구례로 향하는 버스에선 실컷 잠을 잤다. 보통 때엔 시끄럽게 떠들던 녀석들인데, 이 날만큼은 이상하게 바로 잠들어 한 번도 떠들지 않더라. 거사를 눈앞에 둔 장수처럼 말은 최대한 아끼고 마음은 단단히 대비하는 듯했다. 나 또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광경을 마음에 담았다.
9시 48분쯤 되어서야 구례 터미널에 도착했고, 아이들은 화장실에 갔다. 나는 화엄사까지 가는 버스가 시내버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류장에 나가면 바로 버스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만약을 위해 직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화엄사로 가는 버스는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타야하며 10시에 버스가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시간은 9시 55분을 지나가고 있었기에 부리나케 표를 끊고 화장실에서 나온 아이들을 챙겨서 막 출발하려던 버스에 올랐다.
너무 갑작스러워 정신없이 올라탔는데 올라타고서야 인원을 점검해 보니, 4명만 보이는 것이다. 서두르는 바람에 무려 2명이나 놔두고 온 것이다. 아직 버스는 터미널을 벗어나기 전이었기에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민이와 주원이를 데리러 갔다. 다행히도 2명은 버스 타는 입구 근처로 오고 있었기에 바로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여행의 출발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문제도 없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 경우엔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나를 탓해야 맞지만, 어찌 보면 이런 게 여행의 묘미란 생각도 든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그걸 좌충우돌하며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여행은 완벽함을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그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할 것이고 그 과정 속에 만들어진 이야기, 인연들과 한껏 어우러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