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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pr 08. 2019

하산하는 길에 마주한 두 가지 광경

2013년 11월 15일(금)

▲  다섯째 날 경로: 장터목 대피소~  천왕봉 ~ 장터목 대피소 ~ 중산리 탐방안내소



주원이는 무릎이 아파서 힘들긴 해도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적당히 쉬어가며 꾸준히 내려갔다. 그래서 중산리 탐방로까지 내려가는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원이의 저력은 그와 같은 꾸준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리막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현세와 지민이었다. 내려가는 내내 많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의 구간은 급경사 구간이어서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내려가면 무릎에 부담이 많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발을 접지를 뿐만 아니라, 무릎 관절에도 부담을 안겨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내려갈 때는 더욱 더 허벅지에 힘을 주고 긴장하며 내려가야만 한다.

우리는 절반 정도밖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선발대 아이들은 벌써 탐방로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얼마나 들뜬 기분에 부리나케 내려갔는지 알만 했다. 건호에겐 교통편을 알아보라고 하고 우린 열심히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제 끝이 보이기에 지민이와 현세를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누구보다도 이 아이들이야말로 빨리 산에서 내려가고 싶을 테니 말이다.                






함께 해나가는 기쁨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지민이와 현세를 보며 ‘어린 아이들이 지리산에 왔다는 것’에 대해 대견하게 생각하며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려가면서 만난 사람 중에 두 팀이 인상 깊었다.  

한 팀은 아빠와 아들이 함께 천왕봉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아들은 유치원생처럼 보였다. 그런 아들을 데리고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온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아빠의 욕망(아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리라는 ‘아빠 어디가’류의 소망) 때문에 아들이 고생한다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아들은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데에 즐거워하고 있었으며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닌,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었으니 그 장면을 보는 내내 흐뭇했다.                




대안학교에 대한 고정관념 

    

다른 팀은 젊은이들과 중년 남성분이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회사 같은 데서 온 게 아닐까 싶었다. 젊은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지리산을 탄다는 것을 응원하며, ‘자신도 학생 시절에 선생님이 끌고 와서 탄 적이 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중년의 남성분은 대안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며 깎아내렸다.

그 분의 생각은 어찌 보면 ‘대안학교’라는 이름이 가진 한계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들은 ‘일반학교=정상학교 / 대안학교=특수학교 or 비정상학교’라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학교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당연히 다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다녀선 안 되는 곳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부적응자이거나, 장애인이거나, 문제아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안교육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사회가 규정지은 완고한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와 같은 편견을 지닌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을 고민하는 현장이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어찌 보면, 대안교육이라고 하면서 ‘엘리트교육을 한다며 극단적으로 주입식교육을 했거나’, ‘제도권 교육의 아류로 남아 설립될 때의 취지를 망각했거나’, ‘돈 없는 이들은 갈 수 없는 귀족학교로 진입장벽을 높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거나’하는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들이 여전히 ‘대안교육’이란 외피를 입고 있는 한, 대안교육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대안교육은 ‘학교가 품지 못하는 아이들’이란 틈새시장을 노려 교육사업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교과학습과 프로젝트학습의 장점을 취하여 일반학교에 다녔으면 ‘in 서울’할 수 없는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다님으로 ‘in 서울’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대안교육의 핵심은 ‘수단화된 공부’와 ‘너를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산다는 극단적인 경쟁 위주의 생각’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추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대안교육이 ‘교육다운 교육’을 해나갈 때, 제도권 교육에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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