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하이쿠 4연작

<특별기획 6.>

by 허건수


1.




2.




3.




4.









1.

나비는 날고
꽃은 피어있음에
그저 웃는다


어느 날 아는 동생이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인생은 무엇이다'라는 형식으로 인생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기본적으로 '존재가 곧 목적'이라고 생각해. 즉 내가 태어난 의미나 살아갈 목적을 꼭 찾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는거야.
오름이나 산에 다니다 문득 든 생각인데, 나비는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꽃은 그저 피어있음에 행복해보이더라. 그러니 꼭 이 형식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이 하이쿠로 답을 하고 싶어."



2.

음이 멎으면
풀벌레와 물소리
그 뒤를 잇네


음악을 멈췄더니 열린 창문으로 풀벌레 소리와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음악이 그쳐도 '음'은 계속되는 밤입니다.



3.

해 떠오를 때
해보다 더 밝은 배
하룰 마치네


아주 가끔, 일 년에 몇 일 정도는 해 뜰 무렵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지요.
산책을 나갔는데 배 한 척이 포구로 들어오더군요. 어선등의 불빛이 너무 강하여 그렇게 눈이 부실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걷는데, 저 배에 탄 사람들은 밤새 저 불빛 아래서 일을 했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다시 그 배를 돌아보는 순간, 배 뒤편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어선등을 밝히며 돌아온 배는 어쩐지 그 해보다도 더 눈부셔 보였습니다.



4.

비 오면 봄을
긴 비 오면 여름을
떠나보낼 때


장마가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됩니다. 그나마 아침, 저녁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봄 기운마저 모두 사라지지요.
제주에는 신기하게도 봄에 고사리 장마가 있듯, 여름 끝 무렵에는 가을 장마가 있습니다. (어쩌면 육지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번 가을 장마는 유난히 길고 비도 많이 뿌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4일 간 비가 오더니, 다음 주엔 한 주 내내 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 한 번에 봄이 지나가고, 긴 비 한 번에 여름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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