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이쿠 <68>

2019년 12월 14일

by 허건수








시간도 잊고
계절도 잊게 하네
오름과 안개



이번 주 수요일에는 반가운 사람과 함께 노꼬메 오름을 찾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시험 준비에 마음고생을 했던 이야기부터, 합격 소식에 몰려왔던 벅찬 기쁨과, 이제는 취업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까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더니 기온이 뚝 떨어지더군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길옆 초원 위로 안개가 달려오듯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길은 짙은 안개로 둘러싸였습니다. 열 발자국 이상 떨어진 곳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우리도 모르게 어떤 차원문을 지난 것 같았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켰지만 새벽 시간 같았고, 가을처럼 따스한 날씨에 오름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어느 겨울날에 호수 주변을 돌고 있는 듯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 걷고 있는 듯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도, 겪었던 일도 모두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도 잊고 계절도 잊은 채 안개가 낀 오름을 걸었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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