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이쿠 <69>

2019년 12월 21일

by 허건수







돌아오는 길

반가운 게 뒤섞여

땅을 적시네




몇 년 만에 참석해본 결혼식이었는지 모릅니다. 제주에 내려온 뒤 보통은 축의금만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휴가를 내서라도 참석해야만 했던, 그리고 참석하고 싶었던 저의 어릴 적 친구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식장으로 향하는데, 중학교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나 다음 날 준비물을 전화로 물어보던 순간부터, 저희 어머니 3일장 내내 곁을 지키며 위로를 건넸던 손과, 지난가을 커피를 마시고 함께 볕을 쬐며 "이제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결혼식이겠구나..!" 하던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들이 창밖의 풍경처럼 다가오고 지나갔습니다.

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제주에서는 여태껏 보지 못한 눈이 하늘에서 내리더군요. '우와~ 또 이렇게 육지에 왔다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구나!' 반가운 기분이 마구 샘솟았습니다. 여러 해 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 기억, 굳은 악수, 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가운 것들이 뒤섞여 내리며 온 땅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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