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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Sep 24. 2020

때때로 하이쿠 <101>

- 지난 여름. 4연작 -



 여름이 지나간 것은 알겠지만, 이번 여름이 언제 왔었나 싶습니다. 마치 오지도 않았는데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7, 8월 성수기를 맞아 정신없이 일하다가 코로나 확산으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글감도 잘 떠오르지 않아 연재를 쉰 적도 있었구요. 그리고 언젠가 완성시켜야지.. 하다가 미루고 미뤄 발행할 시기를 놓친 글도 몇 개 있었습니다. 괜시리 아쉬운 마음에 늦었지만 '지난 여름'이란 소제목으로 4연작을 꾸며보았습니다.




1.





2.





3.





4.









1.


 선인장 위에

 발가락이 생기면

 더위의 시작



 선인장 주위에 열매들이 맺히면 더워질 시기입니다. 그리고 노란 꽃이 피면 한창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이지요. 6월이면 산책을 하다가 선인장에 달린 열매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 모양이 발가락이 돋아난 것만 같아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몇 번이고 쳐다보고 바라보았었습니다.




2.


 음악 소리에

 노래로 화답하는

 벌레들의 밤



 더운 여름밤,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소리보다 창밖의 풀벌레 소리가 더 웅장하게 들리더군요. 평소 음악을 즐겨 듣지만 오름, 숲, 곶자왈에 갈 때는 음악 없이 귀를 열고 가듯이, 이 날은 노랫소리를 멈추고 창밖의 음악 소리를 들었습니다.




3.


 고갤 내밀자

 소란도 지워지네

 별과 풀벌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몰려오고 점점 우물 속으로 들어가던 때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조용히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그 아래, 보이진 않지만 그 소리로 가득 메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잠시나마 소란한 마음도 잊고 그저 멈춰있었던 밤이었습니다.




4.


 창밖에 매미

 여름은 저물어도

 한 번 더 울고



 이미 여름은 저물었으나 매미 소리에 다시 한번 여름을 떠올립니다. 왜 그리 난 뜨겁지 못했나..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하고 바깥에 나갈 수 없고 기분이 우울해지고, '코로나 때문에'라는 쉬운 핑계에 자신을 놓아버렸던 시간이, 놓쳐버린 듯한 여름의 끝자락이 그래서 이 마지막 매미의 울음이 그토록 긴 여운을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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