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이쿠 <101>

- 지난 여름. 4연작 -

by 허건수



여름이 지나간 것은 알겠지만, 이번 여름이 언제 왔었나 싶습니다. 마치 오지도 않았는데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7, 8월 성수기를 맞아 정신없이 일하다가 코로나 확산으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글감도 잘 떠오르지 않아 연재를 쉰 적도 있었구요. 그리고 언젠가 완성시켜야지.. 하다가 미루고 미뤄 발행할 시기를 놓친 글도 몇 개 있었습니다. 괜시리 아쉬운 마음에 늦었지만 '지난 여름'이란 소제목으로 4연작을 꾸며보았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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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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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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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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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인장 위에

발가락이 생기면

더위의 시작



선인장 주위에 열매들이 맺히면 더워질 시기입니다. 그리고 노란 꽃이 피면 한창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이지요. 6월이면 산책을 하다가 선인장에 달린 열매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 모양이 발가락이 돋아난 것만 같아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몇 번이고 쳐다보고 바라보았었습니다.




2.


음악 소리에

노래로 화답하는

벌레들의 밤



더운 여름밤,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소리보다 창밖의 풀벌레 소리가 더 웅장하게 들리더군요. 평소 음악을 즐겨 듣지만 오름, 숲, 곶자왈에 갈 때는 음악 없이 귀를 열고 가듯이, 이 날은 노랫소리를 멈추고 창밖의 음악 소리를 들었습니다.




3.


고갤 내밀자

소란도 지워지네

별과 풀벌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몰려오고 점점 우물 속으로 들어가던 때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조용히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그 아래, 보이진 않지만 그 소리로 가득 메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잠시나마 소란한 마음도 잊고 그저 멈춰있었던 밤이었습니다.




4.


창밖에 매미

여름은 저물어도

한 번 더 울고



이미 여름은 저물었으나 매미 소리에 다시 한번 여름을 떠올립니다. 왜 그리 난 뜨겁지 못했나..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하고 바깥에 나갈 수 없고 기분이 우울해지고, '코로나 때문에'라는 쉬운 핑계에 자신을 놓아버렸던 시간이, 놓쳐버린 듯한 여름의 끝자락이 그래서 이 마지막 매미의 울음이 그토록 긴 여운을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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