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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Apr 28. 2022

때때로 하이쿠 <121>

2022년 4월 28일




1.





2.





3.









1.


 등을 보면서

 등을 보면서 걷네

 아버지 등을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전이가 없었기에 불행 중 다행으로 항암치료 없이 위 절제술만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면 무조건 누워있는 것보다는 조금씩 자주 걷는 것이 회복에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기에 아버지를 부축하여 병실을 나왔습니다. 아직은 코로나로 인해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까지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병동의 환자들이 거닐 수 있는 공간은 두 병동이 만나는 복도가 전부인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환자와 보호자가 2인 1조를 이루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줄을 지어 사람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행렬이 이루어 걷는 것처럼, 어색하긴 했지만 저와 아버지도 그 행렬에 참가하였습니다. 한동안은 나란히 걷다가 자꾸 저의 걸음이 빨라지기에 아버지 뒤로 가서 걸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참 얼마만이던지요. 아버지의 등을 보는 것이, 등을 보며 걸어보는 것이, 그리고 그 등이 이제는 조금 굽은 것이...




2.


 봄비보다 더

 기다릴 줄 몰랐네

 방귀 소리를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었기에 수술 후 3일간은 물도 마실 수 없는 완전한 금식이었습니다. 넷째 날부터 물만 조금씩 마실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부터 미음을 먹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전에 꼭 방귀가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방귀가 나와야 몸이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근데 평소에는 멋대로 나와버려서 곤란하던 방귀가 또 막상 나오라고 하니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힘도 주어보고 복도로 나가 걸어봐도 그 방귀 한 번 나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아버지가 부담을 느낄까봐 '때가 되면 어련히 나오겠지요.'라고 말하면서도 조금씩 초조해지는 것은 저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결국 수술이 끝난 후 5일째, 의사의 처방으로 약까지 드신 후에야 기다리던 아버지의 방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편으론 웃기기도 했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아버지도 살면서 이토록 방귀 소리를 기다려본 것은 처음이었을 겁니다.




3.


 어릴 적 듣던

 말들을 내가 하네

 아버지에게



 "자~ 죽은 조금씩 천천히 드세요."

 "아버지~ 씹을 건 없지만 물도 꼭꼭 씹어 드세요."

 "아이구 이젠 방귀도 뿡뿡 잘 나오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부모님은 제가 똥만 싸도 오줌만 싸도 '아이구 잘 쌌네 이쁜 내 새끼~'하며 칭찬을 해주시곤 했지요. 그리고 이번에 병실에서 아버지와 8박 9일간 머물면서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누운 자리에서 방귀를 뀔 때마다 저 또한 아버지에게 '잘하셨어요~'라고 말하게 되더군요. 모쪼록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니까요.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릴 적 듣던 말들을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참 묘해지기도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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