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6
Dear Your Name
살아봐야 너보다 겨우 며칠 더 많이 살았는데 태어난 해가 다르다고 수화기 너머로 형님 하며 부르는 너의 친절한 목소리는 내 평생 간직하게 보석함에 넣어두어야 하는지 몰라. 너한테도 참 고마움을 많이 느끼지. 때때로 나한테 먼저 연락 주고, 그래서 네가 겪고 있는 삶을 나눠주고 전생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너로 인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거 같아. 그러니 먼저는 너의 존재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시작하려고.
너와 전화할 때 나누는 이야기는 결국 눈앞에 보이는 우리의 현실이니, 이러한 이야기들이 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게 아닌지 몰라. 거기에 우리의 의지가 더해진다면 그것이 꿈이던 현실이던 그건 진짜 우리의 삶에 가까워진 채로 살아가게 되겠지. 그렇다면 이전에 너로부터 들었던 꿈들을 가끔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움직이는 걸까 생각해보게 되는 거 같아. 어쩌면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조금 더 꼰대가 돼가는 거 아닐까?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어. '나'를 '나'로서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야. 예를 들어 이런 거지. 사람마다 무언가를 잘하는 특징이 있을 텐데 그것이 두각이 되어 나타난다면 내가 가려지지 않을까. 비단 나는 책을 읽기를 꽤 좋아하다 보니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볼 때면 본연의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는 게 아닌 '책 많이 읽는 사람'으로서 기억이 되는 게 싫었던 거 같아. 내가 무언가를 선택해서 하겠다는 결과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극단적으로 생각하더라고. 내 삶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돼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기도 해.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겁이 나기도 하는 거 같아. 무언가를 좋아하기로 내가 동의하고 결정했다면 나는 그 세계 속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거든. 그래서 연인관계는 서로가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것을 동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것이 결혼이라면 두 개의 다른 세상이 합쳐지는 일이니 얼마나 더 거대한 일이겠어. 서로 맞춰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게 사람이 아닌 물질이 돼버릴 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세계 안에서는 내가 원하는 데로 조율을 할 수 없게 되겠더라고.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거지. 더 취하기 위해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발을 떼느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세계에 삼켜지게 될 거야. 밖으로 나오는 거리는 더욱더 멀어지게 될 거고. 어느샌가 내 존재를 잊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되더라고. 그러다 보니 비가시적인 것들을 사랑한다는 게 더 멀리 두고 봤을 때 어떤 가치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거 같더라고. 인간 자체에 무언가를 취하겠다는 탐심이 있어서 어느 정도에 맞춰 서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나 불안정한 존재이거든.
그러기에 내가 가치와 본질,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그 가치와 목적, 그것을 내 정체성으로 둘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야 그것을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거든. 그때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버텨내지 않을까, 그래서 문제, 혹은 시련이 있을지라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 적어도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실행하게 될 때면 그때는 물질의 세계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어떠한 장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거거든.
이런 생각에 무엇하나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겁쟁이가 여기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물론 너는 나보다 더 잘할 테지만 말이야. 또 너무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을 나열한 거 같다. 너와 대화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말할 때에는 내 이야기에 너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물론 너는 나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는 거고, 내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그게 아무리 비현실적일지라도 말이지. 혹은 이런 추구하는 기초가 탄탄할 때에는 그 안에서 더욱더 다양한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재생력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만 말해야겠다 했는데 또 말이 길어진다. 진짜 그만 해야겠다. 다음번 통화를 하게 될 때에는 너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볼게.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는 내가 너무 내 이야기가 길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할게. 오늘도 좋은 하루 되고, 감사한 일들이 너한테 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 줄일게
2021. 11. 26
마음을 담아 규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