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N. 소. 우. 주. 지기의 세상 삐딱하게 보기
사전을 보니 '돌봄'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네요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주변을 돌아보면 '돌봄'과 관련된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공공 기관이나 사설 업체까지 지금은 시스템적으로도 다양한 지원이 마련되어 있죠. 돌봄의 대상 역시도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모두 다 해당된다고 봐도 무방할 거예요. 그만큼 돌봄은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거죠
정의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이해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가족의 병을 감당하며 살기 전까지는요. 그때는 하루하루가 위기처럼 느껴졌죠.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내놓고 얘기하지만 외부 사람들에게 상황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고요. 도움을 받는다는 선택지는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었죠. 가족의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가족의 문제는 밖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 아닌 믿음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거든요. 다른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게 정말 싫었으니까요. 물론 도움이 안 된다는 믿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믿음은 점점 저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결국에는 가족 내부적으로도 곯아가게 만들었어요. 당연히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날이 악화되어 갔죠.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오로지 가족들만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느꼈을 때의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국가의 지원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망설이다가 신청을 했어요. 그때부터 상황이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히 달라지기 시작했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돌봄'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최소한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버틸 수 있다는 마음을 되찾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가족들이 모여 그 당시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 경험이 내 삶의 시야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이전까지는 내 발 밑만 보며 종종 거리며 살아왔다면, 이후에는 먼 산도 봤다가 하늘도 봤다가 옆도 뒤도 살피며 살게 된 거죠. 그러고 나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고요. 완전히 편해졌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로 지내게 됐죠. 그래서 지금 미움이나 원망 대신 미안함과 이해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 것도 그 변화 덕분이고요
그래서 '돌봄'이 제게는 어쩌면 하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받은 게 정말 많으니까요
그런데요. 살아 보니까 "이건 무조건 옳아"하고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분명 소중하고 필요한 거라 믿었던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해를 주는 경우도 있더군요. 비록 자주는 아니지만요. '돌봄' 역시도 마찬가지였어요
'돌봄'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걸 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리 선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라도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여기에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더군요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세계를 만들고 지켜야 하죠.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돌봄'만큼이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고, 구분도 쉽지 않죠. 하지만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선의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하나 종종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요. '돌봄'을 말할 때 우리는 대개 '나' 아닌 '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할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 필요를 부정하거나 외면해서 문제를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물론 누군가를 돌보며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도 있지만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나서는 '돌봄'은 때로 모두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기도 하죠
그래서 요즘은 습관처럼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모든 게 좋다고 느껴질수록 혹시 넘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과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점검하고 있어요. 여러 번 실수를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입니다. 완벽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실수를 줄이고 싶거든요
선의가 선의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고 있어요. 어쩌면 그래서 세상을 비틀어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