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나 망가지려는 거야, 당신!”
리의 호통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오발탄은 눈을 좌우로 굴려 가며 양쪽 대나무 숲을 쳐다봤다.
대답이라도 하듯 숲 사이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다.
신호를 확인한 오발탄은 다시 시선을 돌려 리를 노려봤다.
리도 멈춰서 오발탄을 응시했다.
멈춰 선 두 사람 사이에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휘이잉’
대나무 숲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광장 바닥의 잎사귀들을 뒤 헝클었다.
눈썹 끝을 잔뜩 치켜세운 리가 오발탄을 향해 걸음을 떼려는 그때, ‘바스락!’ 소리와 함께 숲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얼른 몸을 돌려 싸울 태세를 취하는 리.
‘월월!’
자세히 보니 노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킁킁거리며 잠시 광장 쪽을 살피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후다닥’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웬 강아지가...”
리의 시선이 강아지에게 쏠린 사이, 갑자기 오발탄이 ‘휙’ 뒤로 돌더니 문 속으로 뛰어들려 했다.
“어딜!”
리가 얼른 오발탄을 향해 오른손을 뻗자,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해(解)!”
동시에 문을 향해 주문을 외우는 리.
오발탄이 열었던 문짝이 모래처럼 작은 입자로 변하더니 후드득 부서져 내렸다.
잠시 주황색으로 변했었던 리의 눈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흥, 또 당할 줄 알고? 꿈도 꾸지 마!”
“봤지! 내 말 맞지! 저놈 이상한 기술 쓰는 거 봤지! 어서 잡아! 뭐 해, 어서 잡으라고!”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 오발탄이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악다구니를 쳤다.
그 순간, ‘촤악!’ 소리와 함께 양쪽 숲에서 네 개의 커다란 그물이 리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감찰사들이 포박용으로 사용하는 ‘마취 그물’이었다.
“함정?”
행여 도망칠 새라, 오발탄을 광장 중앙 쪽에 내리꽂은 리는, 하늘을 향해 손목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그러자 머리 위로 날아들던 그물이 소용돌이치며 한데 뭉쳐지더니, 이내 오발탄을 향해 날아갔다.
오발탄이 그걸 보고는 필사적으로 옆으로 굴러 피했다.
“어? 이게...”
순간, 뭔가 낯선 느낌에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는 리.
전에는 에테르가 마치 불길처럼 제멋대로 들끓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평온한 호수처럼 손끝에 고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 좀 전에 기술을 쓸 때도 더도 덜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의 에테르가 순간적으로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수운신 덕분인가...”
“리! 온다!”
비토가 소리치자 얼른 고개를 드는 리.
양쪽 숲에서 튀어나온 네 명의 감찰사들이, 리를 향해 갈지(之) 자 보법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리의 근처까지 접근한 네 감찰사들은, 동서남북 리의 사방에 자리 잡더니, 바닥에 주먹을 내리치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
“사방진(四方陳)!”
그러자 리를 중심으로 바닥에 ‘폐(閉)’라고 쓰인 둥근 문양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감찰사들이 무릎 꿇은 네 귀퉁이에서, 두터운 끈 같은 게 솟아 나와 리에게 곧장 날아갔다.
“걸렸다! 이 자식!”
바닥에 엉거주춤 앉은 채, 주먹을 움켜쥐는 오발탄.
“흑동(黑洞:black hole)!”
그때 리가 가슴 앞에 양손을 둥글게 모으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리를 둘러싼 공간이 둥그렇게 일그러지더니, 날아오던 끈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휘어져 나갔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끈들이 궤적을 바꿔 몇 번이고 다시 달려들었지만, 그때마다 엉뚱한 방향으로 휘어져 나갈 뿐이었다.
“다중 천압!”
동시에 감찰사들 머리 위로, 육각형의 공기 기둥이 떨어졌다.
지난번처럼 크진 않았지만, 공기 기둥에 머리를 맞은 감찰사들이 잠시 휘청거리다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바닥의 사방진도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꿈도 꾸지 말라고 했지!”
흑동을 없앤 리가 오발탄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네 명의 공격을 받고도 호흡조차 흔들리지 않는 리를 보며, 오발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그렇지. 쉽게 될 리가 있나, 쳇.”
오발탄은 조끼의 앞주머니에서 작은 알갱이 같은 걸 꺼내더니, 입에 넣고 ‘우드득’ 씹었다.
“천계환, 그거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마. 선배에 대한 예후는 여기까지야.”
무섭게 눈썹을 치켜든 채 리가 천천히 오발탄에게 다가갔다.
리와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오발탄이 음흉하게 웃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시든가.”
그 순간, 오발탄이 열어놓았던 문에서 갑자기 투명한 액체 같은 게 ‘쑤욱’ 튀어나왔다.
커다란 손처럼 생긴 액체는 오발탄의 허리를 휘어 감더니, 다시 문 속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다.
액체에 끌려가며 오발탄이 ‘베’ 혓바닥을 내밀었다.
“오발탄!”
빨려 들어가는 오발탄을 보고, 행여 놓칠세라 리도 한걸음에 문으로 뛰어들었다.
‘쏴아아아.”
네 명의 감찰사만 말없이 쓰러져 있는 광장. 다시 찾아온 정적에 폭포가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모두가 떠난 걸 확인하기라도 하듯, 강아지가 숲 사이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월!’하고 짖었다.
*
‘끼룩끼룩, 끼룩’
아치 모양의 작은 창밖으로, 갈매기들이 기차놀이라도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날아가고 있었다.
옛 그리스인처럼 한쪽 어깨가 훤히 드러난 실크옷차림의 흑인이, 하얗게 채색된 창가에 팔을 걸친 채 해안으로 이동하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U자 모양으로 펼쳐진 탁 트인 지형 사이로, 새하얀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U자의 오른쪽 끝에는 높다란 절벽이 성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듯, 백사장을 향해 한참을 날아간 갈매기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백사장 구석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먹이를 쪼아대느라 바쁜 갈매기들의 다리 사이로, 옥색 바다가 부드럽게 밀려들었다가 쓸려나가길 반복했다.
“장군님, 스파이의 ‘구조신호’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무표정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흑인의 뒤로, 보라색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그는 제사 때나 쓸 법한 길쭉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데려와.”
흑인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약속이나 한 듯 다른 사제가 다가와 기다란 파피루스를 보라색 사제의 정면에 늘어뜨렸다.
파피루스 안에는 이상한 기호가 새겨진 직사각형 문이 그려져 있었다.
보라색 모자의 사제는 오른팔 옷깃을 어깨까지 걷어 올리며 호흡을 골랐다.
“엑스토랙.”
사제가 눈을 감으며 주문을 외우자, 순간 그의 팔이 액체 상태로 변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거대한 문어의 다리처럼.
눈을 번쩍 뜬 그는 이내 파피루스 안으로 팔을 ‘쑤욱’ 찔러 넣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검은 형체는, 기둥에 부딪히며 간신히 멈췄다.
갈색 조끼 차림의 남자, 오발탄이었다.
“으으으.”
허리를 붙잡으며 신음하는 오발탄.
엉거주춤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다가, 창가에 선 흑인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가 그의 뒤에 무릎을 꿇었다.
“몽마님!”
“어딜 감히, 스파이 주제에 장군님의 존함을!”
보라색 사제가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눈을 부라리며 오발탄을 나무랐다.
그러자 여전히 창밖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흑인이 손짓으로 사제를 제지했다.
“됐다. 녀석은 어떻게 됐나?”
“네, 몽마님. 곧 올 겁니다. 지시하신 대로 제가 제대로 똥줄이 타게 만들어놨죠. 녀석이 저한테 달려드는 걸 보며 제가 2초 정도 먼저 들어왔으니, 이곳의 상태면 3, 4십 분 후엔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라색 사제를 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오발탄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흑인, 아니 제1마장군 몽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 보라색 사제가 움찔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주먹이 물처럼 투명해졌다.
“사실 몽마님 손 더럽힐 것 없게, 제가 직접 녀석의 목을 가져오려 했거든요. 중간계 떨거지들이 방해만 안 했어도, 거참. 제 손으로 꼭 ‘마경’님의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 채, 고개를 끄덕거리는 몽마.
‘끼룩, 끼룩’ 또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에, 저,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마경님께서 제게 해주신 약속이 있었거든요. 지난번 일을 끝으로 이제 마경님의 부대로 되돌아가기로 말이죠. 인간 거적데기를 입고 중간계 스파이 노릇하는 거,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분부하신 데로 녀석도 이곳까지 끌고 왔으니, 이참에 제가 몽마님 밑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싶은데...”
그때, 처음으로 몽마가 고개를 돌려 오발탄을 쳐다봤다.
밝은 적색으로 빛나는 그의 안광이, 오발탄을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몽마의 이마 한가운데 박혀있는 만(卍) 자 모양의 보석을 보고, 오발탄을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밑으로?”
“아, 아, 네! 그렇습니다. 거둬만 주신다면 이 몸이 부서지는 날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순간, 오발탄의 이마 앞쪽과 뒤통수에서 동시에 노란 소뿔 같은 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색도 점점 까맣게 변했고 양쪽 어깨 끝에서는 나무줄기 같은 뼛조각들이 조금씩 삐져나왔다.
“이런 거죽 같은 거 이제 벗어버리고, 제 모습으로 제대로 한번...”
그때, 몽마가 천천히 뒤를 돌아 오발탄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마장군이 직접 스킨십을 하자, 허락받았다고 생각한 오발탄은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 몽마님,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시다니...”
“잠깐, 잠깐. 아직은 ‘마물화’ 하지 말아라. 나한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거든.”
“네? 아이, 디어요?”
몽마가 어리둥절해하는 오발탄의 뒤통수를 두어 차례 쓰다듬었다.
그리곤 보라색 사제를 보며 ‘씨익’ 웃었다.
둘 사이 사전에 약속된 무언가가 있었던 듯,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팔 옷깃을 걷어붙였다.
“으아악!”
순간, 방안이 떠나가라 오발탄이 비명을 질렀다.
커다랗게 액체화된 손이 어느새 오발탄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
“오발탄!”
빨려 들어가는 오발탄을 쫓아, 리도 문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투명한 젤리 속에 빠진 듯, 일렁거리는 공간을 통과한다 싶더니, 갑자기 온통 새하얀 공간이 눈앞에 ‘쫙’ 펼쳐졌다.
땅도, 하늘도, 벽도, 아무것도 배치하지 않은 무대처럼 끝없이 하얗기만 했다.
“응?”
자리에 우뚝 멈춰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리.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두레박이 달린 ‘옛날식 우물’ 하나가 보였다.
우물 곁에는 네, 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뭐야, 오발탄은 어디 가고 갑자기...”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우물 뒤로 어울리지 않게 현대식 벤치가 하나가 보였다.
벤치에는 어떤 남자가 등받이에 양팔을 걸친 채 쉬고 있었다.
“물어볼까? 여기가 어딘지.”
훌쩍 뛰어올라 우물 근처에 내려선 리.
내리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몸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높이 뛰지도 못했을뿐더러, 예상했던 지점에 훨씬 못 미쳤다.
“뭐야, 왜 이러지?”
터벅터벅 걸어서 벤치 근처로 다가가는 리.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꼬마는, 나비라도 잡는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으며 연신 뛰어올랐다.
벤치에는 웬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볼이 쑥 들어갈 정도로 깡마른 아저씨의 양쪽 이마 끝으로, 희한하게 나뭇가지 같은 뿔이 솟아나 있었다.
그래, 얼핏 멀리서 보면 사슴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기요, 혹시 여기가 어딘지...”
리가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가 눈동자만 ‘스윽’ 돌려 리를 쳐다봤다.
뱀처럼 위아래로 길쭉한 동공이 리를 째려봤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꺄악!”
그때, 갑자기 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리가 얼른 고개를 돌려 보자, 아이의 몸이 우물로 안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비를 잡으려 우물 벽에 몸을 기댔는데, 벽이 무너진 모양이었다.
얼른 손바닥을 펼쳐 아이를 멈춰 세우는 리.
하지만 이 능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 아이의 몸은 계속해서 우물을 향해 기울었다.
“젠장!”
바로 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리.
그때, 우물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덩달아 아이도 우물 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안돼!”
리가 고함을 지르며 아이를 향해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