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아아악!”
절벽 위의 거한이 잠시 고통에 비틀거리다, 갑자기 있는 힘껏 망치를 내리쳤다.
그러자 외길을 따라 ‘쩌저적’ 균열이 뻗어나가며 길이 부서졌다.
‘투둑’ 소리와 함께 오발탄의 몸이 아래로 30cm쯤 떨어졌다.
“참, 이걸 말 안 했네! 네가 저들에게 가한 충격은 고스란히 망치 돼지의 ‘철모’로 모여. 고통을 모으는 일종의 ‘안테나’인 셈이지. 돼지는 망치로 정을 내려쳐야만 그 고통을 뽑아낼 수 있고. 한마디로 네가 신들을 공격할 때마다,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정으로 전달될 거라고! 하하하하, 어때? 그래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을까?”
또다시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하는 몽마.
굽혔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리.
리가 자세를 풀자, 흙기둥이 모래처럼 부서지며 흙기둥에 꽂혔던 신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신들의 몸도 젖은 모래로 변하더니, 이내 바스러져 모래 속으로 흡수되었다.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다 해치웠는데.”
시계를 바라보는 리.
92초.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흥’ 콧바람을 내뿜은 리는 망치 거한을 향해 다시 날아올랐다.
거한이 리를 보며 천천히 망치를 어깨 위에 걸쳤다.
리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갑자기 리의 앞으로 타원형의 물체가 훅 날아들었다.
얼른 고개를 꺾어 이를 피했는데, 그 뒤로 똑같은 물체가 하나 더 날아와, 이번엔 리의 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크!”
얼른 몸을 숙여 바닥으로 내려서는 리.
시선을 돌려 타원형 물체를 쫓는데, ‘컹!’ 소리와 함께 이번엔 삼두견이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응?”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뻗어 삼두견을 공중에 멈춰 세우는 리.
공기를 압축해 밀어버리려는 순간, 또 한 마리의 삼두견이 리의 팔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얼른 팔을 빼 삼두견의 공격을 피하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선 리는, 가슴 앞에 두 주먹을 모았다.
“중옥!”
삼두견의 발을 묶으려 중옥을 소환하려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쩌적, 쿵!’ 천둥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중옥의 인을 푼 리는,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섬뢰!”
리의 손가락 끝에서 뻗어나간 번개들이 공중에서 파란 번개와 부딪히며 폭발했다.
‘쩌적, 쿵!’
그때 또 한 발의 천둥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반격하기엔 늦었다 싶었던 리는 얼른 양팔을 치켜들어 중력구로 몸을 감쌌다.
‘퍼벙!’ 소리와 함께 파란색 번개가 리의 중력구에 맞고 튕겨 나갔다.
그 충격의 리의 몸에 전해졌다.
“크으윽!”
이를 깨문 채,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 리.
역시나 제압했다 생각했던 그리스 신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으로.
게다가 하나가 아니었다.
제우스도 둘, 아테나도 둘, 삼두견도 둘, 모두가 둘씩이었다.
마치 어디서 분신이라도 데려온 것처럼. 그들을 보자 리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분신들인가...”
“눈치챘겠지만 저들은 세계의 저항이야. 저들은 결코 죽지 않지. 하나가 죽으면 둘로 부활하고, 둘이 죽으면 넷으로 살아난다고! 하하하, 이제부터가 진짜야!”
몽마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또다시 쩌렁쩌렁 해변에 울려 퍼졌다.
이곳에선 ‘5대 1’도 만만치 않은데, 이젠 ‘10대 1’로 싸워야 한다고? 게다가 행여 외길에 충격이라도 가해질까, 공격도 하지 못하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73초. 72초. 젠장.
‘쏴아아아!”
채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본인은 아직 실력을 못 보여줬다는 듯, 갑자기 포세이돈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가 창을 파도에 꽂은 뒤 삽질하듯 앞으로 퍼 올리자, 파도가 일렬로 쭈르륵 일어서며 리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해(解)!”
리가 파도를 보고 손을 뻗어 주문을 외우자, 달려들던 파도가 앞에서부터 하얀 입자로 변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챙!’
그때 리의 바로 뒤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렸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또 다른 포세이돈이 자신을 향해 삼지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리의 몸을 공전하는 방어석(防禦石)이 이를 막은 것이었다.
“이 자식이, 섬...”
포세이돈을 공중으로 띄운 리가 섬뢰를 쏘려는데, 순간 외길 위의 ‘망치 거한’이 뇌리를 스쳤다.
“젠장!”
인상을 쓰며 동작을 멈추는 리.
“엘 샤페론(el chaparron)”
리가 멈칫하는 사이, 어느새 리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두 명의 아테나가 리에게 엄청난 속도로 창을 찔렀다.
마치 폭우가 쏟아붓는 것처럼.
“채채채챙!”
방어석이 빠르게 움직이며 창을 막았지만, 공격이 워낙 많이 들어오자 방어망을 뚫고 들어온 공격이 한 번씩 리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쩌적 쿵! 쩌적 쿵!’
아테나의 공격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의 머리 위에서 또다시 파란 번개가 떨어졌다.
그것도 두 발씩이나.
“젠장, 이 많은 걸 어떻게. 중력... 아!”
리가 중력구를 만들려다 말고, 뭔가 떠올랐는지 얼른 양손을 가슴 앞에 동그랗게 모았다.
“흑동(黑洞)!”
그러자 손바닥 사이에 반짝이는 검은 구슬 같은 게 생기더니, 리를 둘러싼 공간이 오목렌즈로 본 것처럼 확 일그러졌다.
동시에 리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던 파란 번개가 리의 몸을 휘돌아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아테나의 창 공격도, 포세이돈의 삼치창 공격도 열심히 리를 찌르고 배었지만,
리가 일그러뜨린 공간 속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갈 뿐이었다.
“오호라. 훌륭한 걸!”
리의 기술에 감탄한 몽마가 박수를 쳤다.
“벌써 52초.”
흑동을 유지한 채 시계를 바라보는 리.
이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단 이대로 수비만 하면서 절벽 근처까지 다가간 후, 망치 거한까지 단숨에 해치우는 게 최선이었다.
어떤 기술을 써야 하나. 섬뢰? 다중천압? 토류장천?
생각에 잠긴 채 절벽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리.
그리스 신들도 공격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듯, 거리를 둔 채 리를 따라왔다.
‘우우우우우웅.’
그때, 또다시 대형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굵고 낮은 진동이 해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중력이 리의 온몸을 뒤덮었다.
“크으. 이게... 왜...”
순간, 리의 에테르가 헝클어지며 손 안의 검은 구슬이 사라졌다.
동시에 흑동으로 일그러뜨린 주변 공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놀란 리가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흑동을 만들려 했지만, 엄청난 중력에 대항하느라 좀처럼 에테르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흑동! 흑동!”
리가 흑동을 만드느라 정신이 팔린 순간, 리의 발밑 모래 속에서 검은 형체가 스윽 나오더니, 리의 양쪽 장딴지를 깨물었다.
두 마리의 삼두견이었다.
“크윽, 뭐야!”
리가 뒤늦게 발을 빼려 했지만, 이미 삼두견들에게 다리를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그때, 삼두견의 머리 중 하나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붉은 쇠사슬이 주르륵 튀어나오더니 리의 몸을 빠르게 휘어 감았다.
이때를 놓칠 새라, 8명의 신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은 사방에서 창을 찔렀고,
하데스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11자 모양의 검을 내리그었으며,
제우스는 양손에 파란 번개를 모은 채, 마치 다이빙하듯 리를 향해 돌진했다.
쇠사슬에 묶인 것은 둘째 치고, 사방 어디를 돌아봐도 도무지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뇌룡승천(雷龍承天)!”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뇌룡을 호출하는 리.
그러자 엄청난 크기의 주황색 용이 생겨나 리의 몸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으아아아악!’
뇌룡에 몸이 닿은 삼두견과 아테네 그리고 포세이돈은, 몸통이 그대로 녹아내리며 주변으로 튕겨 나갔다.
공중으로 공격하던 제우스와 하데스는, 날아오르는 뇌룡에 삼켜져 형체도 없이 그대로 공중분해 되었다.
‘크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외길 언덕 위의 ‘망치 거한’이 또다시 머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망치를 치켜들더니 신경질적으로 내리쳤다.
‘쩡!’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쿠구구구’ 옅은 지진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본토와 맞닿은 외길 끝부분이 우지끈 꺾였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위협적으로 기울던 외길은, 20도 정도 꺾어지다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외길 끝에 매달린 오발탄이 위태롭게 덜렁거렸다.
“어이구구, 어떻게. 공격하지 말라니까. 이제 곧 떨어지겠는 걸. 하하하하.”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몽마의 얄밉게 웃어댔다.
“젠장, 젠장!”
고함을 지르며 시계를 바라보는 리.
어느새 27초 밖에 남지 않았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저 망치 거한부터 제압해야 했다.
바로 몸을 돌려 하늘로 뛰어오르는 리.
‘쩌저저적, 쿵쿵쿵!’
그때 또다시 리의 앞으로 파란 번개가 내리쳤다.
리가 얼른 경로를 꺾어 모래사장으로 내려섰다.
하늘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제우스가 하늘에 떠 있었다.
이번엔 무려 4명이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 백사장을 바라보는 리.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4명의 아테나, 4명의 포세이돈, 그리고 4쌍의 하데스와 삼두견이 각기 무기를 치켜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 이제 20초!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오발탄이 죽는다고!”
시계를 쳐다보는 리.
야속하게 시간은 자꾸만 줄어들었다.
공격할 수도 없고, 무시하고 지나가자니 자꾸만 공격해 오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해법을 고심하며 목덜미의 땀을 닦아내는데, 순간 리의 손이 멈칫했다.
손끝에 낯선 물체가 닿았다.
“응?”
살짝 더듬어 보니 목걸이 줄이었다.
대사제에게 받았던 그 목걸이였다.
순간, 목걸이를 내밀던 대사제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위기가 닥쳤을 때 깨뜨려 사용하시면, 틀림없이 능력을 배가...’
얼른 목걸이를 꺼내 수정을 움켜쥐는 리.
시계를 보니 어느새 16초를 지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도와줘요, 대사제.”
리가 손에 힘을 주자, ‘팅’ 맑은 소리와 함께 수정이 깨졌다.
동시에 수정 속을 떠다니던 무지개 빛 입자들의 리의 콧구멍과 입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아아!”
뇌가 확 열리는 느낌과 함께, 수천 장의 사진과, 영상과, 소리와, 글자들이 리의 머릿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중력, 전기력, 강력, 약력을 운용하는 방법부터,
그들을 조합해 응용하는 방법까지, 엄청난 양의 정보가 순식간에 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리의 눈빛이 빨주노초파남보로 빠르게 변하며 경련하듯 껌뻑거렸다.
“뭐야, 포기한 건가. 싱겁구만. 자, 카운트 10!”
몽마의 카운트를 신호 삼은 듯, ‘컹컹! 컹컹!’ 짖어대며 4마리의 삼두견이 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두 아테나는 리를 향해 방패를, 다른 두 아테나는 창을 던졌다.
뒤질세라, 4명의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앞세운 채, 파도를 보드 삼아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하데스들은 암살을 노리는 듯 모래 속으로 스르륵 몸을 숨겼다.
“자 카운트 9!”
한방으로 끝을 보겠다는 듯, 네 제우스도 동시에 리를 향해 번개를 내리쳤다.
그러자 파란 번개가 커다랗게 하나로 합쳐지며 리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 꽂혔다.
“7!”
리의 곁으로 다가온 포세이돈들이 동시에 한 바퀴 ‘빙글’ 돌며 삼지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반달 모양의 파도가 마치 검기처럼 변해 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6!”
창과 방패와 번개와 파도가 사방에서 모여드는 순간, 리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양손 손가락을 교차해 가슴 앞에 모았다.
“빙결(氷潔)!”
그러자 리 주위를 돌던 방어석이 갑자기 머리 위에서 멈춰 서더니, ‘파박!’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곳에서 전에 없이 새하얀 안개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