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미스터리한 인간

by 무딘

*


“으아아아악!”

“사형!”

“광마님!”


몸을 활처럼 뒤로 꺾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광마.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는 그는 흙바닥에 드러누운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뒷목에 박힌 새까만 조각에서는 보랏빛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것은 ‘절대 공허검의 조각’이었다.

제1차 왕자에 난 때, 월운신에 의해 박살이 났던.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럴 운명이었던 건지, 하필 깨진 조각이 광마의 뒷목에 박혀버린 것이었다.


일자에 의해 암형계로 쫓겨난 광운은, 가끔씩 발작하는 공허검 조각 때문에 그때마다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광마도 애를 먹는 중이었다.


“광마시여. 전에 말씀드렸던 ‘흰털 원숭이의 심장’을 드디어 구했습니다. 봉인(封印)에는 이만한 묘약이 없다고 하더이다.”


그림자 마물이 다가와 광마 앞에 은빛 쟁반을 내밀었다.

쟁반 위에는 피가 흥건한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며, 광마가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그리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뻗어 심장을 움켜쥐더니, 입으로 가져와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화운신과 마제가 숨을 죽인 채 그를 바라봤다.


“어때 사형? 괜찮은 것 같아?”


심장을 다 먹자, 천천히 오른손을 자신의 뒷목 쪽으로 돌리는 광마. 잠시 그의 손이 환하게 빛났다.


빛이 사라지자, 광마의 목뒤에 작은 ‘태양 문신’이 남았다.

스마일 아이콘을 거꾸로 새긴 듯한 문신이었다.

손을 뒤로 돌려 봉인을 만드느라, 위아래가 바뀐 것이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던 공허검 조각은, 안으로 점점 파고 들어가더니 끝부분만 살짝 남았다.

그게 꼭 스마일의 코 모양처럼 보였다.


*


“광마님?”

“응?”

“뭐, 걸리시는 거라도.”

“잉, 아니여. 그냥 옛날 일이 쪼가 생각나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신의 뒷목을 멋쩍게 문지르는 일권.

잠시 빛나던 태양 문신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일권은 다시 처형 현장에 집중했다.

쥐 마물이 죄수의 머리 위에 덮개를 씌우자, 더는 죄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루틴인 듯, 쇠몽둥이를 든 마물들이 또 둥글게 모이더니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리곤 한 마물이 몽둥이를 치켜들며 환호했다.


“이번엔 쩌놈 차롄가 보구마.”


고개를 끄덕거리는 마제.

쇠몽둥이를 든 마물은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며 죄수의 곁에 섰다.

죄수의 머리 위에서 방망이를 몇 번 더 돌린 마물은, 골프 티샷이라도 치듯 신중하게 머리를 겨냥했다.


“우오오!”


자신이 더 멀리 치겠다는 듯, 다른 마물들을 보며 고함을 지른 마물은, 죄수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방망이를 돌렸다.


‘캉!’

“크아아악!”


순간, 마물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수의 머리가 날아가기는커녕, 마물의 두 팔이 부러져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쿠오오!”


동시에 깡마른 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양팔을 벌려 쇠사슬을 끊어냈다.

그리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무릎 꿇은 마물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더니, 단숨에 두 조각으로 찢어 버렸다.

마물의 용암이 죄수의 몸 위로 쫙 뿌려졌다.


“우워어!”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물들이 쇠몽둥이를 치켜들며 죄수에게 달려들었다.

죄수가 머리에 쓴 덮개를 벗어버리자, 그의 눈에서 초록 에테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오호라!”


재미있다는 듯 탄성을 지르는 일권.


마물들이 달려들어 죄수의 머리와 복부를 향해 동시에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죄수의 몸에 적중했지만, 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물들의 목덜미와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진흙은 뜯어내듯 마물들의 머리와 어깨를 잡아 뜯어 버렸다.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공터 끝에서 한가로이 노닐던 오랑우탄의 새끼들이, 위기를 감지한 듯 얼른 어미의 등 뒤로 숨었다.


“쿠워어! 쿠워어!”


죄수가 발을 쾅쾅 구르며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남은 마물들은 겁을 먹은 채 더는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다 죄수가 자신들에게 달려들자, 몽둥이를 냅다 던져버리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그들을 죽이려는지 죄수가 좀비처럼 그들을 뒤따라갔다.


‘쿵!’


그때, 갑자기 죄수의 머리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흙먼지가 죄수의 눈앞으로 훅 일었다.


어느새 공터로 날아온 마제가 맨발로 죄수의 머리를 밟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마제가 직접 뛰어든 것이었다.


“적당히 해라, 이 짐승아. 광마님도 보고 계신데.”


인상을 쓰며 죄수를 바라보는 마제.

한쪽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쥐 마물들이, 얼른 다가와 마제 앞에 엎드렸다.


“마제시여...”

“이 자식은 뭐지?”

“아, 네, 오전에 강 위에서 건졌습니다. 기절한 채 둥둥 떠다니길래, 어디서 탈주한 죄인이다 싶어 잡아왔습니다.”


“크르르르르.”


죄수가 머리를 밟힌 채로 으르렁 대자, 마제가 ‘쾅, 쾅, 쾅’ 연달아 머리를 짓밟았다.


“적당히 하라고 했지!”


그래도 그르렁대자, ‘쾅, 쾅’ 머리를 더 밟았다.

서너 차례 더 밟자 그제야 기절한 듯 죄수의 몸이 축 처졌다.


“크헉!”


그때,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엄청난 에테르가 마제를 훅 덮쳐왔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 언덕 위에 있던 일권이 바닥에 엎드린 채,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목뒤에서 새하얀 빛이 어둠 속 램프처럼 뿜어져 나왔다.


“광마님!”

“크아아악!”


일권의 날카로운 비명과 동시에, 일권의 목뒤에서 붉은 피 안개를 흩뿌리며 뭔가가 ‘팍’ 튀어나왔다.

빛조차 빨아들일 듯 새까만 조각, ‘절대 공허검’ 조각이었다.


“공허검!”


엎드린 일권의 위를 한 바퀴 ‘빙글’ 돈 조각은, 허공에 잠시 멈추더니 이내 마제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아니, 실은 마제의 발밑, 죄수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어딜!”


마제가 얼른 양팔을 앞으로 내밀며 화염창을 뽑아 들었다.


“브레스 파...”


바로 앞까지 날아온 조각을 창으로 튕겨내려는 순간, ‘촥!’ 어디선가 흰 채찍 같은 게 날아와 공허검 조각을 붙잡았다.

얼른 채찍을 따라가 보자,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일권이 조각을 향해 ‘빛 채찍’을 뻗고 있었다.


“하아, 하아. 워매, 놀라워 분거. 그라고 안 빠지던 거시, 요로코롬...”


자리에서 휙 뛰어오른 일권이 조각 옆에 내려섰다.

그리곤 빛 채찍을 휙 돌려 조각을 빙글빙글 감쌌다.

마치 막대를 흰 테이프로 둘둘 감는 것처럼. 그리곤 손목을 탁 털자, 채찍이 찢어지며 조각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워어메, 아픈 거.”


얼른 손을 뒤로 돌려 상처를 치료하는 일권. 벌어진 상처가 봉합되며 말끔한 태양 문신이 남았다.


콧잔등을 찡그린 일권은 죄수 곁으로 다가가, 발로 죄수의 머리카락을 들췄다.

빼빼 말라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온, 앳된 청년의 모습이었다.


“이 인간, 이거 뭣이 당가. 뭔디 공허검 조각이 저절로 튀어와불쟤?”

“글쎄요, 강 위를 떠다녔다는 사실 밖에는...”


쓰러진 죄수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일권.

그러다 그의 왼쪽 팔뚝에 이상한 게 감겨 있는 것이 살짝 보였다.

옆으로 다가가 발끝으로 죄수의 옷을 쓱 걷어 올리는 일권.

5개의 ‘회전식 자물쇠’가 가지런히 감겨 있었다.


“헛! 광마님! 이건 월운신의...”

“왐마, 놀랍구만, 놀라워. 맞당게, ‘월영의 5단’ 봉인이여. 이것을 뭐 땀시 이놈이 하고 있으까. 이 자슥 당최 정체가 뭣이 단가. 참말로 미스터리 하구마, 미스터리 햐.”


일권이 코를 찡긋거리며 회전식 자물쇠를 발로 툭 찼다.

그러자 자물쇠가 덜커덕거리더니, 동시에 옆에 떨어져 있던 공허검 조각이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기저기가 불룩불룩 솟아오르며 당장이라도 봉인을 찢고 나올 것처럼 꿈틀거렸다.


“음마?”


인상을 쓰며 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권.

그러다 다시 죄수의 자물쇠로 시선을 옮겼다.


“설마...”


순간 절대 공허검을 힘겹게 든 채, 봉인의 주문을 외우던 ‘월운신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눈빛을 번쩍인 일권은, 천천히 조각을 집어 들어 죄수의 팔에 가까이 가져갔다.

아니나 다를까, 조각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동시에 죄수 팔의 자물쇠가 미친 듯이 덜컥거렸다.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들러붙길 원한다는 듯이.


“오호라!”

“광마님, 둘 다 따로 격리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군요.”


꿈틀거리는 조각을 든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일권.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얼른 공터 반대편을 바라봤다.


“흰털 원숭이!”


공터 끝으로 잔뜩 긴장한 채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오랑우탄 무리가 보였다.

흰털이 무성한 어미 오랑우탄은 새끼 오랑우탄을 가슴에 부여안은 채, 애써 일권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흡(吸)!”


일권이 오랑우탄을 향해 손을 뻗자, 어미 오랑우탄의 가슴이 ‘팍’ 찢어지더니 심장이 통째로 날아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손 위에 둥둥 띄운 채, 일권이 ‘씨익’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 말이 딱 맞재? 쩌것들을 암형계 여기저기 흩어놓으믄, 은젠가 틀림없이 쓸 날이 있을 거라, 내 안하디요. 하하하.”

“끼야악, 꺅꺅!”


그때, 새끼 오랑우탄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일권에게 달려들었다.

어미의 심장을 되찾으러 쏜살같이 뛰어온 것이었다.


“흥!”


얼른 눈빛으로 그를 멈춰 세우는 일권.

심장과 새끼 오랑우탄을 나란히 허공에 띄운 채, 죄수의 머리 위로 천천히 가져왔다.

허공에 붙잡힌 채 버둥대던 새끼 오랑우탄은, 이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권.

덜컥거리는 죄수의 ‘회전식 자물쇠’가 보였다.


그 위로 손에 든 ‘공허검 조각’을 겹쳐 대보는 일권.

그러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춘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 광마님?”


손에 든 조각이 더 거칠게 꿈틀거리자, 걱정스러운 듯 마제가 광마를 채근했다.


“광마님! 어서 조치를 취하시는 게...”

“쉿!”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 시키는 일권.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머릿속에서 뭔가를 쥐어 짜내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뭔가 떠올랐는지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하얀색 화염이 ‘화르륵’ 일었다.


“와하하하하, 그랴, 고거 구마! 그라믄 되겠구마! 와하하하하!”


암형계가 떠나가라 배를 잡고 웃는 일권.

광마의 커다란 웃음이 강 수면에 수천 개의 파도를 일으켰다.

옆에서 마제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워째, 나가 자꾸 일로 오고 싶어진다 안하디요. 역시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니께. ‘우연과 변수와 아이러니의 집합’이여. 와하하하하. 일자 양반, 쫌만 기다리쑈. 나가 곧 갈라니께. 와하하하하.”


일권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손에 들고 있던 공허검 조각이 휙 날아가 오랑우탄의 심장 안으로 쏙 들어갔다.


“폐(閉)!”


일권이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 하얀색 글자가 나타나더니 막대 초콜릿처럼 둘로 쪼개졌다.

왼쪽은 파란색으로, 오른쪽은 붉은색으로 변한 글자는,

하나는 심장을 감쌌고, 다른 하나는 오랑우탄 새끼의 왼손 손등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허검 조각이 어디 어디 흩어졌는지, 언능 물색해 보소.”

“네? 아, 공, 공허검 조각이요?”


마제가 뜻밖이라는 듯 묻자, 초록 가방 속에 원숭이 심장을 집어넣은 일권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라고 눈치가 없는가. 판을 뒤집을 순간이 왔다니께, 판을! 와하하하하!”


일권이 암형계가 떠나가라 웃으며, 늘어진 오랑우탄 새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곤 통곡의 강을 등진 채,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일권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제.

그러다 발밑의 죄수가 문득 떠올랐다.


“광마님! 이 자식은 어떻게 할까요? 없애 버릴까요?”


마제가 일권을 향해 소리치자, 일권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씩 웃으며 말했다.


“잘 붙잡아 두드라고. 뭣 좀 멕여 살도 좀 찌우고. 내 때가 되믄 데리러 올라니께. 고 미스터리 한 인간, 아니제, 아니제. 음, 뭐라고 부르까나.”


죄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권.

그러다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랴! ‘미스터 리’! ‘미스터 리’를 말여.”


이빨을 보이며 함박웃음을 짓는 일권.


‘끼야악’


때마침 익룡 마물 무리가 통곡의 강 위로 날아들었다.

공터에 쓰러진 마물들의 시체를 노리고는, 붉은 눈을 번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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