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딘 Jul 10. 2024

몽상가의 외투를 걸치다.

"그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어?"


 큰 애 국어 시험지를 들고 어렵게 나왔다며 호들갑을 떠는 집사람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국어학원을 보내야 되네 마네, 또 신경을 긁길래 참다 참다 한소리 했죠. 아니, 아무리 길다 해도 한글로 쓰여있는 거 맥락만 파악하면 어려울 리가 있나. '이래 봐도 내가 한때는 기업 전략을 짜던 사람이야', 호기롭게 시험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B3 시험지 절반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옆 단으로 넘어온 지문, 잘 보이지도 않는 깨알 같은 글자들, 게다가 기승전결도 없이 뭉텅 잘린 내용까지. 그런 문제들이 몇 장에 걸쳐 이어지더군요. 이걸 도대체 어떻게 풀라는 건지... 집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은근슬쩍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들릴세라 조용히 문을 닫았죠.

 



 AI의 진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뭐는 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할지, 예측을 못하겠군요. 대학시절 PC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며 당시 중년의 직장인들이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는 뉴스를 본 적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싶습니다.


 일 때문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습니다. 지나가는 하사비스 무리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었죠. '에이, 어디 되겠어?' 그러면서요. 그때만 해도 AI와 대화하는 날이 이리도 쉽게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래를 예견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이야기다 싶습니다. 그때 이것은 바둑에 국한된 변화라고 확신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GPT-4o로 또 다른 미래를 예견하고 있으려나.


 인생에서 딱 한번, 저도 예언자처럼 군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상해, 우리의 대응 포지션을 도출했었죠. 사명감에 가득 차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겠다고 나섰더랬죠. 그때가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 나이', 불혹에 막 들어선 때였습니다.


[ image created by MS image creator ]


 회사는 제게 고마운 곳입니다. 덕분에 가난을 극복했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감도 회복했으니까요. 그런 회사가 급격히 쇠락하는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이곳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고요. 방관자처럼 굴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 싶더군요. 그래, 두 편의 '환경 분석' 글을 써서 사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관념을 다루는 일에는 익숙했거든요.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결정적인 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좋은 기회를 맞게 됩니다. 회사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파격적으로 사람을 모집했죠. 비록 엔지니어라 일의 결은 달랐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던 저는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이전에 올린 글들을 좋게 보셨던 부서장이 결국 기회를 주셨죠. 업무 형태가 달라지며 근무평가에서 손해를 많이 봐야 했지만,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직접 전략을 짜는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엔지니어 일만 해왔고, 정관이네, 시행세칙이네 낯선 법률용어들에 쩔쩔매는 초짜였으니까요. 옆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삶은 우연과 변수와 아이러니의 집적물'하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레 회사 집행부가 일거에 교체되며 실무자들도 덩달아 바뀌게 됩니다. 부서를 옮긴 지 얼마 안 된 저와 신입사원급 직원만 남게 되었죠. 교체기를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저한테 '전략 수립'이라는 롤이 떨어져 있더군요. 큰 기대 없이 적당히 규정만 준수하라는 의미였죠. 얼떨떨하긴 했지만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료를 파고들었습니다. 각종 보고서며 논문이며 칼럼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엮었습니다. 붓질이 덧대고 덧대지자,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더군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우리를 이곳으로 몰아붙였는지,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말입니다. 지적 능력만으로 치자면 그때가 제 '리즈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찾은 해법을 에세이로 풀어 부서장을 포함한 집행부에 공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들 흥미롭다 말만 할 뿐 시큰둥하더군요. 반응이 영 미지근한 게 아마 본인들의 계획과 달랐나 봅니다. 실망은 했지만, 제가 가진 엑기스를 모두 녹여냈다 생각한 저는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전체 보고서의 참고 자료로 끼워 넣고 잊어버렸죠. 실망에 머물러 있기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이후 집행부가 동일한 주제로 외부 용역을 맡겼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해당 업무를 맡고 있긴 하지만, 제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었죠. '현실 자각 타임'이 엄습하더군요. 뭐, 이해는 합니다. 외부 용역은 교수에 석박사들이고, 저는 엔지니어 출신의 '사이비'였으니까요. 말의 무게부터가 다르겠죠. 다시 한번 '말할 자격'에 대해 곱씹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image created by MS image creator ]


 재미있는 일은 수개월 뒤 전체 보고서가 최고위층에 올라간 뒤 벌어졌습니다. 외부 출신 고위층 한 분이 제 에세이를 보고 다른 분들께 토론을 제안하신 겁니다. 보고서 말단에 참고자료로 붙여놓은 걸, 굳이 끝까지 찾아 읽으셨던 거죠. 공개회의 중 집행부에 제가 쓴 에세이 관련 질문을 하시는데, 집행부가 얼버무리며 명확히 답변을 못하더군요. 제대로 읽지 않았던 거죠.


 엄숙한 회의장에서 갑자기 제 이름이 튀어나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제 판단이, 제 관점이 토론할 만큼 가치가 있구나' 인정받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말의 내용'보다 '누가 말했는가'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본떼를 보여준 것 같아서요. 완전 초딩같죠?


 아쉽게도, 그 사건은 결국 저만 기억하는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의견은 집행부의 의사결정에 조금도 반영되지 못했죠. 최고위층의 의사를 존중해 사내에 공유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결실도 없었죠. 다만 한동안 이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부담스럽게 '전략가' 취급을 받게 됩니다. 뉘앙스 상 반은 놀림이었고 전략가보다는 '몽상가'에 가까운 평이었지만, 그래도 실력을 인정받았구나 싶어 기분은 좋았습니다. 


 한편 일을 해보니 알겠더군요. 전략이 갖는 한계를요. 내부의 문제 보다, 외부에 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하는데, 가위를 낼 수 없도록 강제하는 힘이 외부에 떡하니 버티고 있더군요.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결국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 판단한 저는 부서를 빠져나왔습니다.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 마르크스


 이 '외도(外道)'의 기간 동안 근무 평점을 대폭 깎아먹어, 이후 승진하는데 꽤나 애를 먹게 됩니다. 결실은 딱히 없고 손해만 남았으니 이 또한 뻘짓이 아닐 수 없죠. 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전략가라는 '사회적 존재'로 살아본 본 경험은, 제 인생에 분명 의미 있는 한 조각이 되었거든요.

 

 큰 변화를 전망하는 데 있어 저는 제 판단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오래 곱씹은 끝에 얻어진 결론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원래도 귀가 얇은 편은 아니지만, 저보다 잘 난 사람들 앞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경험'이 확신을 갖게 만들었죠.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 말입니다. 그래, 창고에 묵혀둔 인문학 습작도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 믿습니다. 또 모르지 않습니까. 어떤 오지랖 넓은 분이 나타나 뜬금없는 길을 터줄지. 그래 좌절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가 볼 생각입니다.

 

[ Image by Leandro De Carvalho from Pixabay ]


 엊그제 집사람이 큰 애 국어 시험지를 들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국어 시험이 어렵게 나왔다며, 학원의 보내야 되네 마네, 또 신경을 긁었습니다. 


  "그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어?"


 참다 참다 한소리 했죠. 아니, 아무리 길다 해도 한글로 쓰여있는 거 맥락만 파악하면 어려울 리가 있나. '이래 봐도 한때는 기업 전략을 짜던 사람이야', 호기롭게 시험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B3 시험지 절반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옆 단으로 넘어온 지문, 잘 보이지도 않는 깨알 같은 글자들, 게다가 기승전결도 없이 뭉텅 잘린 내용까지. 그런 문제들이 몇 장에 걸쳐 이어지더군요. 이걸 도대체 어떻게 풀라는 건지... 집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은근슬쩍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들릴세라 조용히 문을 닫았죠.


 의자에 앉아 혼자 투덜거렸습니다. '세상 참 빨리도 변하는구나.' 




 시나리오를 다시 써볼까 싶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 쓴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떨어지고, 씹히고, 무시받고, 좌절하는 실패담으로 가득한 책이었죠. 최근 쓴 소설이 몇 편 성공해 밥벌이는 한다길래, '다행이네, 잘 됐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마음까지 가졌죠. 그러다 우연히 무슨 소설을 썼나 싶어 찾아봤는데, 오 마이갓, 베스트셀러인 '불편한 편의점'의 저자더군요. 이전에 낸 책도 제가 알던 소설이었고요. 그때부터 그의 책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패배자의 넋두리가 아닌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보였죠.


 순간, 한때 비판하던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글의 내용보다 '누가 말했는지'를 더 중시하는 게, 남 욕할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거 한국인의 고질병이 아닐까? 아무래도 기득권의 낡은 교육방식 탓인 거 같은데, 그 기원을 찾아 분석해 볼까? 분석결과가 잘 나오면 외부에 투고를 해볼까? 또 또 몽상가 기질이 날뛰는군요. 에비, 정신 차리게 이 사람아.


 어디서 '내용 증명' 날아오기 전에.

이전 13화 '총수'란 종교를 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