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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딘 9시간전

남자는 부동산, 여자는 자동차

 PC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다가와 큰 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수학 학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얘는 문과머리라 그런지 어떻고 저떻고. 애 친구는 수학 1등급인데 어떻고 저떻고. 혼자 정해둔 마감 시간에 쫓겨 신경이 곤두섰던 터라, 저도 모르게 불쑥 한마디 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핵심이 뭔데?"


 제 작업을 잠시 들여다본 집사람은 '뭐, 그냥 그렇다고'라며 휙 나가버리더군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퇴근 무렵, 선배가 모처럼 번개를 제안했습니다. 예의 바른 후배 하나가 쭈뼛거리며 어렵다는 의사를 표시하더군요. 오늘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나 뭐라나. 애 하원도 시켜야 되고, 집 청소도 해야 하고, 설거지에다 밀린 빨래도 해야 한다고. 아이고 인간아. 제가 '빨래도 해야 돼?'라고 묻자, '아니 그럼 안 해요?'라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당당하게 전 안 한다고 말했습니다. 분리수거나 좀 도와주고 청소는 제 방만한다고 으스댔죠. 후배들이 일제히 '이 시대의 진정한 용자'라며, 그래도 형수님이 뭐라 안 하시냐고 묻더군요. 검지 손가락을 세워 좌우로 흔들어 줬습니다. 


 집사람은 전혀 뭐라 안 합니다. 교대근무라 마주치는 시간이 많은데도 부딪히는 일은 드물죠.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는데도 특별히 제게 뭐라 하지 않습니다. 무관심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관계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결혼 20년 차로 치자면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비법이 뭐냐고요? 집사람이 성격이 좋아 그런 면도 있겠지만, 함께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이 어려운 숙제를 풀어낸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가 어줍지 않은 전략가의 외투를 벗고 '육아 휴직'에 들어갔을 때군요. 여지없이 뻘짓을 하느라 애는 먹었지만, 결국은 의미 있는 한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 image created by MS image creator ]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애는 본격적으로 부모의 기준을 거부하기 시작하더군요. 퇴근하면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울부짖었고 집사람은 '두성'을 써가며 윽박질렀죠. 각자의 심정이 이해는 됐지만, 그 시간이 10분이 지나고 30분을 넘어서면 참다 참다 결국 저까지 폭발하게 되더군요. 분노로 만들어진 고요함, 그 어색함이 얼마나 싫은지 다들 아시잖아요.


 그런 전쟁 같은 날들이 잦아지자, 어린 둘째는 눈치를 보며 말을 삼키는 버릇이 생기더군요. 집사람은 생에 두 번째로 원형탈모가 생겼고요. 가장으로서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며 방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 허들을 넘어서야 하나 고민한 끝에, 결국 '육아 휴직'을 택했습니다. 고용보험에서 6개월 정도는 지원금이 나왔고, 어울리지 않는 전략가의 옷이 슬슬 버거워지기도 했던 터라 이래저래 잘됐다 싶었죠.


 제 판단은 이랬습니다. 집 사람에게 시간을 주자, 집사람이 스스로를 찾는 시간을 가지면 아이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 거다. 집착이 줄면 아이와의 충돌도 줄어들 거다. 이는 '자기 삶이 없어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 같다'던 집사람의 한탄이 반영된 거였죠. 와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책을 써보고 싶다는 제 바람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었고요.


 그래, 육아 휴직이 시작된 첫날부터 바로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이사 후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던 실내외 유리창 전체를 1주일에 걸쳐 닦았죠. 기름때가 불쾌하게 끈적이던 가스레인지 후드는 제 얼굴을 찾아줬고, 둘째의 장난감과 책, 만들기로 가득했던 거실은 '죄다 버리기' 스킬을 시전해 비워냈습니다. 베란다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던 책, 옷가지, 수납함들을 모조리 집 밖으로 쫓아냈고, 내장이 튀어나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소파에게는 과감히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여기저기 불구처럼 덜컥이고 깜빡거리던 기구들도 하나하나 제 능력을 되찾아줬죠. 물론 청소나 빨래, 설거지는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옵션이었고요.


 그렇게 '해야 되는데...' 말만 하며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게임 퀘스트 하듯 하나하나씩 지워나갔습니다. 제가 집안의 해묵은 숙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집사람은 '자기 삶을 되찾는 시간'을 가지면 되리라 생각했죠.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요. 집은 점점 깨끗해지는데, 집사람의 반응은 갈수록 미지근해졌습니다. 처음엔 집안이 깨끗해져서 좋네, 입에 발린 이야기라도 했는데, 나중에는 시큰둥 아무 반응도 없더군요. 그렇다고 새롭게 생긴 여유시간에 뭔가를 계획해서 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해야지...'라는 반응만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올 뿐, 휴직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었죠. 그나마 큰 아이와의 충돌은 줄어들었지만, 서로를 이해해서 그런다기보다, 아빠라는 DMZ가 더 넓어진 때문에 불과했죠.


 시나브로 쌓여가던 불만은 결국 불꽃을 튀고 말았습니다. 제가 '요리라도 배워볼까' 운을 뗀 대화는, '이 사람이랑은 못살겠다'라는 답변이 되어 돌아오더군요. 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데 같이 못 살겠다니,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제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자기 삶'만 뻐꾸기처럼 반복하는 그녀가 서운했습니다. 적당히 얼버무린 채 싸움을 마무리했지만 둘 다 앙금은 남았죠.


[ Image by Mariana Anatoneag from Pixabay ]


 뭐가 잘못된 걸까.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내 진단이 틀린 건지, 그녀가 우유부단한 건지 갈피를 잡고 싶었습니다. 그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떠오르더군요. 신혼 때 책을 읽으며 '남자, 여자가 그런 차이가 있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졌습니다. 


 확실히 필요할 때 하는 공부는 흡수력이 다르더군요.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특별히 남자는 대화를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여자는 '공감의 도구'로 사용한다는데서 눈이 오래 머물더군요. 때문에 대체로 남자의 말은 간결하되 무미건조한 반면, 여자의 말은 두리뭉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거죠.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목적이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문제 해결'에서 쾌감을 얻는 남자는 어떤 문제든 해결책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는 반면, 공감에서 쾌감을 얻는 여자는 공감을 얻을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순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만 엉뚱한 이야기로 벗어나는 집사람을 보며 늘 답답했었는데, 그제야 납득이 가더군요.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요. 역시나 헐겁게 가려놓았던 상처는 다시 싸움을 일으키더군요. 그래도 이번엔 공부도 해가며 나름 '각오'를 다진 터라,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뾰족한 말이 저를 찌를 땐, '나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공감받고 싶어 밑밥을 까는 거다' 속으로 되뇌었죠. 그래, 그날은 섣불리 해결책을 찾거나 내뱉지 않고 꾹 참으며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와도, 말을 끊지 않고 참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한마디 말이 훅하고 마음에 꽂히더군요. '우리 마음이 멀어졌어'. 마음 나눌 누군가가 필요한데, 어느 시점부터는 저한테 그런 기대를 접었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친구가 아닌 '직장 동료'처럼 자기를 대하는 제가 원망스러웠다 말하더군요.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만나 오랫동안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왔는데, 더 이상 기댈 등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습관처럼 변명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입을 막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느끼고 있구나, 고개만 끄덕거렸죠.


 신기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했고, 그저 마음이 멀어졌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인데, 집사람은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며 '연애하던 시절의 얼굴'을 지어 보였죠. 사실 대화라기보다, 그녀의 하소연을 일방적으로 듣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때 어렴풋이 감이 오더군요. 제가 주려했던 것과 집사람이 원했던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청소를 해주고 거추장스러운 일을 정리하고 마음껏 움직일 시간을 주는 게 결코 답이 아니었던 거죠. 제 방식의 해결책을 건네고 따라오라 했으니, 그녀가 좋아할 리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뚱하고 그러니 시큰둥했던 거죠. 혼자서 주구장천 뻘짓만 했던 셈입니다.


[ from https://www.yes24.com/Product/Goods/2119979 ]


 이후 제 방식의 해결책을 줄이고, 귀 기울이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듣는 것도 습관인지라 길이 드니 집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한결 수월해지더군요. 갈팡질팡 오락가락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어렵지 않게 포착되더군요. 어차피 집안 정리도 대략 끝났고 집사람이 원했던 것도 아닌 터라, 더는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억울함도 가라앉았죠.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나고 육아 휴직의 종착점이 보이던 어느 날, 다시 한번 말다툼이 시작됐습니다. 제 태도가 달라지며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 삶'에 대한 집사람의 갈망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죠.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본인도 콕찝어 말을 못 하니, 저 또한 뭘 해줘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빽빽한 안갯속을 헤매듯,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라 글을 써가듯, 이곳저곳, 여기저기를 꼬집고 비트는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불현듯 '코어'에 닿았습니다. 그녀를 괴롭히는 원흉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거였죠.


"남자는 부동산이지만 여자는 자동차야."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나름의 성취도 있었고, 그런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졌던 아내였습니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십여 년 동안, 그런 모습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걸 느꼈겠죠. 그나마 '양육의 보람'으로 그걸 상쇄하고 있었는데, 큰 애가 엇나가기 시작하자 갑작스레 그 빈 공간이 크게 다가왔던 겁니다.


 해도 티도 안 나고 적성에도 안 맞고 인정해 주는 이도 없는 살림이나 하는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발전해 가는 남편의 모습이 대비되며, 자신이 도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답니다. 질투마저 느낀다고, 그게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고 담담히 말하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부동산은 저로, 처음만 반짝거리다 점점 빛을 잃어가는 자동차는 본인으로 느껴졌던 겁니다. 곧, 그녀는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 그 위치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본인이 더 잘 알기에, 당장은 아픔을 함께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스물둘, 한 송이 꽃처럼 빤짝이던 그녀를 기억하는 저였기에, 그 아픔이 진심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그것도 모르고 '시간을 주네, 마네' 남의 다리만 긁고 있었으니, 뻘짓도 그런 뻘짓이 없었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Image by Susan Cipriano from Pixabay ]


 그날 이후 집사람은 화가 많이 줄었습니다. 복직 때문에 마주치는 시간이 줄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육아휴직을 시작했을 때보다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보였죠. 더불어 큰 아이에게 '사자후'를 내뿜는 일도 드물어졌고요. '개발 쪽을 공부해 봐야겠다' 흥미를 보이긴 했지만 역시나 실행하지 않았고, 저 또한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말이죠.


 지금은 압니다. 그녀가 필요했던 건 그저 '상실의 아픔을 함께해 줄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평생의 반려자인 제게 기대했던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자 담담히 자기 자리로 돌아온 거였죠. 육아휴직을 하고 나름 해법을 찾겠노라 뻘짓을 했던 시간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마음 끝자락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다 싶습니다.


 얼마 전 PC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다가와 큰 애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수학 학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얘는 문과머리라 그런지 어떻고 저떻고. 애 친구는 수학 1등급인데 어떻고 저떻고. 혼자 정해둔 시간에 쫓겨 신경이 곤두섰던 터라, 저도 모르게 불쑥 한마디 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핵심이 뭔데?"


 제 작업을 잠시 들여다본 집사람은 '뭐, 그냥 그렇다고'라며 휙 나가버리더군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빨간색 경광등이 머릿속에서 '삐용 삐용' 돌았죠. 그래 적당히 마무리 짓고 은근슬쩍 집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삐졌는지 웹소설에서 눈도 떼지 않더군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는 척, 괜스레 주위를 얼쩡거렸습니다. '아까는 내가 뭐 하느라 못 들었는데, 큰 애가 어떻다고?'라고 묻자, 마지못해 꺼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하더군요. 한 번 발동이 걸리자, 이야기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마음은 콩밭에 있었지만 꾹 참고 들었습니다. 어쨌는 이게 또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켜줄 테니까요. 그게 '평생의 친구'로서 제 몫이기도 하니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바르게 컸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팔불출이라 그런지 그런 이야기는 쏙쏙 잘도 들리더군요. 앵그리버드 눈썹을 하고 가끔 키메라 화장으로 저를 '뜨억'하게 만드는 큰 애도, 교우관계도 좋고 학교에선 성실한 아이로 평가받죠.


 전 전적으로 집사람 덕이라 믿습니다. 커다란 나무 그늘을 드리워 저와 아이들과 품고 있기에, 그 안에서 우리들이 안전하게 볕을 피할 수 있는 거라 믿습니다. 그녀가 상실했다 생각한 '삶의 생기'는, 거름이 되어 아이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냈다 확신합니다. 만일 제 까칠한 성격을 닮았다면, 틀림없이 집은 전쟁터고 아이들을 냉혈한이 되었을 테니까요.


 삶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상실'에 감사해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꺼이 귀 기울입니다.

 뜬구름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이전 14화 몽상가의 외투를 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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