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 시간을 타고 건너온 돈화문 안 회화나무

궁궐을 걷는 시간X창덕궁 나무 산책

by 궁궐을 걷는 시간

창덕궁을 소개할 때 함께 얘기하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동궐도>입니다. 가로 크기가 약 5.8m, 세로가 약 2.7m 정도되는 대형 그림이죠.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그림 전체를 보려면 몇 걸음 물러나야 하죠. 1830년쯤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데 지금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두 궁궐의 옛 모습을 추정하기 좋은 자료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예술 작품이기도 합니다. 건물과 문, 마당에 놓인 다양한 물건, 나무, 심지어 새둥지까지 세밀하게 그려넣어 볼수록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 소개가 길었습니다. 나무 이야기로 되돌아오겠습니다. <동궐도>에는 수많은 건물뿐 아니라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도 그려져 있는데요. 그중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도 있답니다. 천 번째가 바로 돈화문으로 들어가 바로 보이는 회화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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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나옵니다. <동궐도>를 보면 이곳에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서 있는데요. 지금도 그 회화나무들을 볼 수가 있죠. 우선 금천교로 향하기 전 왼쪽에 보면 커다란 나무가 다섯 그루 서 있는데, 그중 세 그루가 회화나무입니다. 언뜻 보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섞여 있어 헷갈리기 때문에 잘 찾아봐야 하는데요. 가장 왼쪽(돈화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 나무부터 하나하나 따져보면, ‘회화나무(1) ↔︎ 회화나무(2)↔︎ 느티나무 ↔︎회화나무(2) ↔︎ 느티나무’ 순서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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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그루는 금호문 옆에 있는데 지지대가 나무를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14년 큰 장마 때 나무가 뿌리째 들려 지금처럼 지지대를 대고 나무를 보호하고 있는 거죠. 여기까지 회화나무 네 그루를 확인했는데요. 나머지 네 그루의 위치는 금천교 주변입니다. 한 그루는 금천이 흐르는 석축 옆(서쪽)에 붙어 있고, 다른 세 그루는 금천 건너(동쪽)에 모여 있죠.


옛날 부모들은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집안 마당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회화나무가 학자를 상징하는 ‘학자수(學者樹)’였기 때문이죠. 예전 사람들에게 자녀가 가장 크게 성공하는 길은 학문에 힘써 세상의 신망을 받는 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높은 벼슬을 얻는 거였습니다. 이런 바람을 담아 마당에 회화나무를 심었던 겁니다. 회화나무를 영어로 ‘스콜라 트리(Scholar-Tree)’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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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정문 주변에 회화나무를 심는 이유는 이 나무가 삼정승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거침없이 뻗어 올라간 회화나무의 단단한 기둥과 가지가 선비의 기상을 닮은 듯해요. 돈화문 안쪽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바로 그런 모습 같습니다.


지금은 하늘 높이 자랐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커다란 나무였던 건 아닙니다. 우리에게 모두 어린 시절이 있듯, 회화나무에게도 어린 나무의 추억이 있었던 거죠. 다시 <동궐도>를 보겠습니다. 돈화문 안쪽으로 회화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일 텐데요. 올망졸망한 모양으로 담장 아래 모여 있네요. 담장의 높이를 3~4m라고 추정한다면 이 그림을 그렸을 1830년즈음에는 회화나무의 키는 3m 아래였을 거예요. 가장 아래쪽 가지는 19세기 초 궁궐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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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담장 너머엔 큰형님쯤되는 은행나무가 있었을 테고요. <동궐도>를 그릴 당시엔 회화나무와 은행나무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겁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19세기 중반쯤? 또는 세월이 더 지나서? 회화나무의 키가 창덕궁 서쪽 담장보다 높아지면서 두 나무는 처음 만나 인사를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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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크고, 우람한 나무라고 해도 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는 잔바람만 불어도 아슬아슬하게 흔들립니다. 회화나무가 자라 은행나무의 키를 한창 따라가던 시절, 조선의 국운은 하루가 다르게 위태로워지던 때입니다. 나무는 어지럽던 시절도 잘도 견디고 견뎌 지금 저렇게 멋지게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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