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를 보고 02
<올빼미>는 인조(16대) 때 있었던 일을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전쟁의 패배, 왕과 세자의 갈등, 그리고 세자의 죽음 등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던 사건입니다. 영화 <올빼미>의 등장인물이 실제 역사에서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배경이 되는 장소는 어디였는지 등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6회에 걸쳐 글을 나눠 올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세자 죽음의 행동대장 후궁 조소용과 행동대원 이형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 감상에 도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로 후궁 조소용의 행동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은 조소용이 정말로 소현세자와 세자빈(조윤서)을 싫어했는지, 그래서 이형익을 앞세워 죽음을 사주했는지가 궁금해지는데요. 다음 기록을 보겠습니다.
상(인조)의 행희(幸姬, 남달리 사랑을 받는 여자.) 조 소용(趙昭容)은 전일부터 세자 및 세자빈과 본디 서로 좋지 않았던 터라, 밤낮으로 상의 앞에서 참소하여 세자 내외에게 죄악을 얽어 만들어서, 저주를 했다느니 대역부도의 행위를 했다느니 하는 말로 빈궁을 무함하였다.
- 《인조실록》 46권, 인조23년(1645년) 6월 27일
조소용이 인조에게 세자와 세자빈을 두고 험담을 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입니다.
세 번째로 이형익이 어떤 인물인지도 알아보죠. 영화에서 이형익은 어의(御醫)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침을 잘 놓는 의관(醫官)이었습니다. 기록을 보면 이형익이 궁궐로 들어오기 전부터 조소용과 알고 있었을 거라 추측할 만한 내용이 나옵니다.
특명으로 전 현령 이형익(李馨益)을 서용하였다. 형익은 침술(鍼術)로 상(인조)께 총애를 얻어, 일찍이 병을 치료할 일로 조 소용(趙昭容)의 어미 집에 왕래하였는데, 인하여 추잡한 소문이 있었다.
- 《인조실록》 46권, 인조23년(1645년) 1월 4일
위 기록에 있는 ‘서용(敍用)했다’는 죄를 지어 직책에서 물러난 신하에게 다시 자리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인조실록》을 보면 이형익이 서용되기 전, 침을 놓다 그만 인조의 몸에 피를 흐르게 한 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의 일로 의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인데요. 또한 이형익은 인조와 신하들이 국정을 의논하는 대화에 함부로 끼려했다가 영의정 최명길에게 면박을 받기도 합니다.
이형익(李馨益)도 말하려 하자, 명길이 돌아보며 이르기를,
“이는 조정의 논의에 관계되는데, 네가 어찌 감히 나선단 말인가.”
하니, 형익이 아무 말 못하고 물러갔다.
- 《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1639년) 8월 28일
여러 의심스런 상황이 있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세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치료한 의관이 바로 이형익이었습니다. 이때 세자의 병을 학질로 진단한 실제 어의는 ‘박군’이란 사람이었고요.
영화에서는 어의로 설정한 이형익과 침을 잘 놓아 발탁된 경수(류준열)가 세자가 죽기 직전에 들어가 치료를 합니다. 이때의 장면으로만 봤을 땐, 이형익은 주인공 경수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하게 참고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어요.
(소현)세자가 병이 났는데, 어의(御醫) 박군(朴頵)이 들어가 진맥(診脈)을 해보고는 학질로 진찰하였다. 약방(藥房)이 다음날 새벽에 이형익(李馨益)에게 명하여 침을 놓아서 학질의 열(熱)을 내리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인조)이 따랐다.
-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1645년) 4월 23일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뛰어난 외교 활동을 하는 세자를 불편해 한 인조, 세자와 세자빈을 모함한 후궁 조소용, 후궁의 집안에 드나들다 내의원 의관으로 뽑혀 세자가 죽기 직전 침술로 치료한 이형익 등…. 역사는 이들을 독살범으로 부르진 않았지만, 차고 넘치는 정황과 증거로 이 세 인물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혐의를 씌워놓았습니다.
※ 다음 글에선 ‘또 다른 피해자, 강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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