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를 보고 03
영화 <올빼미>는 인조(16대) 때 있었던 일을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전쟁의 패배, 왕과 세자의 갈등, 그리고 세자의 죽음 등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던 사건입니다. 영화 <올빼미>의 등장인물이 실제 역사에서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배경이 되는 장소는 어디였는지 등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6회에 걸쳐 글을 나눠 올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또 다른 피해자, 강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 감상에 도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은 소현세자 한 명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세자빈 강 씨(강빈姜嬪)가 인조의 음식에 독약을 탔다는 누명을 받은 거죠. 영화는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이 누명을 써 갇히는 과정까지를 하룻밤의 이야기로 담았는데요.
실제 강빈이 죄인으로 몰린 사건은 소현세자가 죽고(1645년) 다음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기록한 사관은 《인조실록》에 강빈의 억울함을 분명히 밝혀두었죠.
처음에 상(인조)이 세자빈 강씨(姜氏)를 미워해 오다가 드디어 여러 강씨를 귀양보내니 (…) 상(인조)이 전복구이를 드시다가 독이 있자, 강빈(姜嬪)을 의심하여 (…) 후원(後苑)의 별당(別堂)에 빈궁을 유치(幽置)하여 놓고 (…) 상이 궁중의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하였기 때문에 양궁(兩宮)의 왕래가 끊겼으므로 어선(御膳,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이다.
- 《인조실록》 47권, 인조 24년(1646년) 1월 3일
이 사건 이후 여러 신하들이 인조에게 강빈을 죽이지 말 것을 간곡하게 청하지만, 역시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강빈은 사사(賜死)되고 맙니다. 《인조실록》의 내용만 봐도 그의 죽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 기록에 나오는 ‘조숙의’가 (영화에도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던) 인조의 후궁 조소용(안은진)입니다.(후궁 조소용에 대한 설명은 앞의 글 '세자 죽음의 행동대장 후궁 조소용과 행동대원 이형익'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소현 세자빈 강씨를 폐출하여 옛날의 집에서 사사하고 (…) 의금부 도사 오이규(吳以奎)가 덮개가 있는 검은 가마로 강씨를 싣고 선인문(宣仁門)을 통해 나가니, 길 곁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담장처럼 둘러섰고 남녀노소가 분주히 오가며 한탄하였다. (…) 그 죄악이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단지 추측만을 가지고서 법을 집행하였기 때문에 안팎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고 모두 조 숙의(趙淑儀)에게 죄를 돌렸다.
- 《인조실록》 47권, 인조 24년(1646년) 3월 15일
강빈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궁궐 주변 백성들도 알고 있었나봅니다. 강빈의 시신이 창경궁 선인문으로 나갈 때 많은 이들이 모여 안타까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말이죠.
당시 사관이 누명을 쓰고 죽은 강빈의 분한 상황이라든가 이를 바라보는 민심 등을 《실록》에 정확히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상황만 나열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시대를 증언한 셈인데요. 위 기록보다 5개월 앞선 《실록》의 내용을 보면 마치 강빈의 앞날을 내다보기라도 하듯 예언한 내용도 보입니다.
(…) 성품이 엉큼하고 교사스러워서 뜻에 거슬리는 자를 모함하기가 일쑤이므로, 궁중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소현 세자빈 강씨(姜氏)가 가장 미움을 받아 참소와 이간질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하였는데, 강문성(姜文星)이 귀양가게 되자 사람들이 모두 강씨에게 화가 미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1645년) 10월 2일
강빈의 시신이 나가는 장면을 담은 《실록》에 나오는 창경궁 선인문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고 싶습니다.
궁궐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출생과 죽음은 언제든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왕족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그 시신은 해당 궁궐의 정문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죄인의 신분으로 죽는 경우 시신이 정문으로 나갈 자격이 없어지고, 궁궐의 작은 문을 통해 나가게 되죠. 창경궁의 경우 선인문이 이런 곳에 해당합니다. 강빈도 어쨌든 죄인의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이 그 시신이 선인문으로 나갔습니다.
시신이 선인문을 통해 나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장희빈입니다. 인현왕후를 모함한 죄가 발각되어 사사되고 시신이 선인문으로 나갔죠. 영조의 명령으로 사도세자를 가둔 뒤주도 여기 선인문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무더위가 극심하던 한여름이었는데요. 세자는 뒤주에 갇힌 채 선인문 앞에 방치된 상태로 있다 8일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 왼쪽 사진에서 나무 뒤로 살짝 보이는 빨간 색 문이 선인문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선인문 바로 앞에 있는 회화나무인데요. 사도세자를 가둔 뒤주를 선인문 주변에 갖다 놓았을 당시에도 있었다고 하는 나무입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 나무가 사도세자의 고통스런 소리를 듣고 너무 괴로운 나머지 뒤틀린 모양으로 자란다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 다음 글에선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 그리고 옷 한 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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