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를 보고 06
영화 <올빼미>는 인조(16대) 때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전쟁의 패배, 왕과 세자의 갈등, 그리고 세자의 의문스런 죽음 등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 사건이었지요. 영화 <올빼미>는 픽션이지만, 실제 역사와 연결되는 흥미로운 지점이 많습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실제 역사에서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배경이 되는 장소는 어디였는지 등 총 6편의 글로 소개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읽으시면, 더욱 더 재밌을 거예요.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경수(류준열)가 누군가를 업고 급히 뛰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영화 후반부에도 같은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곳은 창덕궁 인정전 마당으로 보여요.
궁궐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이 있는데, 이곳을 정전(正殿) 또는 법전(法殿)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임금과 신하들이 모이는 조회의식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이 왔을 때는 환영식 행사장으로 쓰기도 했죠. 국가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창덕궁의 정전은 ‘인정전’이고,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입니다.
인정전은 영화 후반부 주요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입니다. 스치듯 잠깐 지나갔지만 저는 영화 초반 장면에서 인정전 앞마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조 집권기인 17세기 인정전 앞마당 모습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서 말이죠. 궁궐 건물의 마당일 뿐이지만, 이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하는 건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역사를 따라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추적을 <동궐도>란 그림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동궐도>는 19세기 초 창덕궁과 창경궁 전체 모습을 그린 대형 그림(576cm✕273cm)입니다. 그림의 정밀함과 크기, 아름다움 등 모든 면에서 대단한 작품이죠. 1820~30년 사이 그려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창덕궁은 조선 초기에 지은 궁궐입니다. 이후 여러차례 화재와 전쟁 등으로 건물이 훼손당하고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때문에 초기 창덕궁의 모습을 지금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여러 자료로 추정할 뿐인데요. 이 부분에서 19세기 초반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동궐도>의 가치가 평가 받는 겁니다.
이 그림에는 각 건물의 위치와 크기, 방향은 물론 마당의 모양과 이곳에 놓였던 각종 물건, 시설물 등이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얘기하는 인정전 마당을 <동궐도>에서 찾아보면 불규칙한 모양의 박석이 깔려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고요. 19세기 초반까지 마당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거죠. 비록 잠깐이지만 영화 초반에 인정전 마당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한 장면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마당의 모습일 뿐인데 뭐가 대단하다고 이렇게 설명까지 할까,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인정전 마당의 모습은 영화 속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규칙한 모양의 박석이 깔려 있던 창덕궁 인정전 마당이 바뀐 시기는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본격적으로 망가트리기 시작했습니다. 궁궐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물인 정전이 첫 타겟이 되었죠.
1909년 창덕궁 인정전 앞을 촬영한 자료 사진을 보면 인정전 마당 박석을 들어내고 이곳에 잔디와 나무를 심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통 한옥 배치를 보면 건물과 문 사이, 즉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특히 궁궐 마당에 나무를 심는 경우는 없는데요. 나무와 꽃은 건물 뒤에 화계(花階)를 만들고 이곳에 심죠. 그래서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궁궐의 여성들은 자연을 보고 싶을 때 자신이 사는 건물 뒤를 감상했고요.
정조가 마당에 설치한 품계석도 이때 사라졌습니다. 인정전 내부에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어좌(御座) 뒤에 세워두었던 <일월오봉도>도 치우고 일본을 상징하는 대형 봉황 그림을 설치했고요.
인정전 앞마당과 품계석은 시간이 한참 흘러 1990년대 와서야 복원했습니다. 이때 원래 마당에 깔려 있던 박석을 구하지 못해 지금과 같은 네모반듯한 모양의 화강석으로 덮은 거죠.
궁궐 정전 앞에는 대개 추상적 모양을 한 얇은 판석 형태의 박석을 절묘하게 이어서 깔았습니다. 박석이 깔린 궁궐 마당을 보고 싶다면 경복궁 근정전에 가면 되는데요. 현재 창덕궁 인정전 마당과 비교해서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