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5월 28일까지
“눈은 흰색이라기보다 흰빛이다.”
_한정원, ⟪시와 산책⟫
전시 소식을 듣고는 몇 년 전 읽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흰색과 흰빛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이렇게 쉬운 단어로 설명하다니요. 참 멋진 문장이었어요.
⟪시와 산책⟫을 읽고 있던 때,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요. 밤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한참을 웃고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바다가 눈에 들어왔어요.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바다 색깔은 뭐라 해야 하나 생각해봤습니다. 검다고 해야 할까, 까맣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갑자기 이 문장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서는 친구들에게 읽어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세상 모든 빛깔을 쭉 나열해 놓는다면 흰빛과 검은빛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자리할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 통하지 않을까 싶어요. 두 빛 모두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밀도로 이뤄진 듯하거든요.
위에서 소개한 문장이 떠오른 건 전시에 달항아리가 나온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입니다. 달항아리의 겉모습은 매우 단순합니다. 둥근 모양에 흰빛을 띤 게 전부죠. 문양도 그림도 없고요. 그래서 달항아리가 눈앞에 있다면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고 할까요.
전시장에서 달항아리를 실제로 본 느낌은 ‘희다’와 ‘둥글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정에까지 오른 결벽(潔癖)의 단순함이 달항아리의 최고 매력이었어요. 그렇다면 조선의 백자를 군자에 비유한 전시 제목과 가장 어울리는 도자기는 달항아리일지도 모르겠어요.
전시에는 달항아리를 비롯, 185점의 도자기 작품이 나와 있습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전시의 하이라이트격인 1부 절정, 조선백자와 마주합니다. 국보와 보물 도자기 42점을 한 곳에 모아 유리 진열장 안에 독립된 모습으로 전시하고 있는데요. 어두운 실내와 빛나는 도자기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군자의 겸양을 보여주려는듯, 달항아리는 1부 전시장 가장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앞쪽에 놓인 다른 도자기를 지긋하게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조선 백자만을 주제로한 명품 축제 같은 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