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궁궐을 걷는 시간 Aug 29. 2020

아버지의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

니콘F3로 찍은 창덕궁

<궁궐을 찍었습니다 x 니콘F3>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매거진입니다. 주로 궁궐과 주변을 담겠습니다. 가끔은 다른 곳도 향합니다.



니콘F3, NIKKOR 50m F1.2, 코니카미놀타 센츄리아슈퍼 ISO 200


냉장고에 오래전부터 보관하던 필름 몇 롤이 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언제 저 필름들로 사진을 찍나 싶었는데, 드디어 사용할 날이 이렇게 왔네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필름으로 찍었습니다. 흐릿하게 나온 창덕궁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초등학교(제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죠.^^) 때 아버지의 취미는 '사진'이었습니다. 여행을 갈 때나 가족 나들이 때면 늘 카메라를 챙기셨죠. 아버지가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 처음 구입한 카메라가 바로 '니콘F3'였습니다. 처음엔 카메라 바디와 렌즈 하나뿐이었는데, 어느새 이러저러한 액세서리와 다양한 크기의 렌즈를 더 장만하셨어요. 카메라 하나에 렌즈 여러 개를 꼈다, 뺐다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알게 되었습니다.


창덕궁 희정당


아버진 촬영(지금 말로 하자면 '출사'겠네요.ㅎ)을 하고 오시면 늘 카메라 장비를 거실 바닥에 죽 늘어놓고는 닦고, 조이는 과정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반복했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 옆에서 예쁘고, 신기하게 생긴 카메라 장비들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진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 크면, 이 카메라랑 렌즈, 모두 너 주마!'


창덕궁 희정당(왼쪽) / 흥복헌 뒤편(오른쪽)
창덕궁 경훈각 앞에서 찍은 대조전 뒤 소나무 밑둥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카메라는 내게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카메라는 아버지의 취미 '넘버 one'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드디어 카메라가 제게 왔습니다. 아버진 이제 당신이 젊었을 때만큼 사진을 찍으러 다니진 않습니다. 당신이 보관하고 있기보다는 아들에게 주는 게 더 낫겠다 생각하기도 한 것 같고요. 그래도 내가 카메라를 갖고 오는 날 아버진 못내 서운하셨나봅니다. 30여 년 이상을 함께 해온 카메라니 당연한 일이겠죠.


창덕궁 경훈각 주변(왼쪽, 오른쪽)
창덕궁 보경당 터(왼쪽) / 대조전(가운데, 오른쪽)
창덕궁 보경당 터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詩時한 나무 산책>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