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으로 보는 역사_추석 추천영화 <사도>(04, 끝)
영화 후반부로 갑니다.
어린 세손이 성장해 드디어 왕에 즉위합니다.
조선시대 후기 왕권강화와 정치개혁을 이끌던…
‘정조’입니다.
영화에서는 정조의 즉위식이 열리는 장소가
창덕궁 인정전으로 나오지만,
실제 정조 즉위 장소는 경희궁 ‘숭정문’ 앞이었습니다.
왕이 경희궁(慶熙宮)의 숭정문(崇政門)에 즉위하였다.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년) 3월 10일
오늘날엔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축하와 기쁨의 자리지만,
조선시대는 조금 달랐습니다.
새 왕이 즉위한다는 건 곧
이전 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때문에 조선시대 왕들은 궁궐의 중요한 건물 앞이 아니라
그 건물의 문 앞에서 즉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축하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이때는 국상 기간이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했다고 할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정조도 숭정전이 아니라,
숭정문 앞에서 즉위한 겁니다.
정조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영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성장하면서는 사도세자를 제거한 세력의 위협을 견디며 살아야 했고요.
아무리 정조라고 해도,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시련이었을 겁니다.
이런 고통스런 시간을 뚫고 드디어 왕이 되는 날,
정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빈전(殯殿) 문밖에서 대신들을 소견하였다. 윤음을 내리기를,
“아! 과인은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아들이다.”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년) 3월 10일
취임식 당일 나오는 국가 리더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을 무척 공들여 준비합니다.
당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취임식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하고,
연설 연습도 여러 차례 합니다.
그런데, 즉위하는 날 정조가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겁니다.
비록 세상을 뜬 이후 세자로 신분을 되찾지만,
한때 왕을 죽이려했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서인(庶人)으로까지 신분이 떨어졌던 사도세자입니다.
정조는 지금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복권하면서
동시에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들도
정조의 이 말을 들었을 겁니다.
얼마나 섬뜩했을까요.
사도의 아들이 왕이 된 것도 꺼림직한데,
지금 저 말은 자신들을 향해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니까요.
정조가 아버지 사도를 죽인 세력에게 정치적 복수를 한 왕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보다는 왕좌에 오른 후 정치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해 나갑니다.
이렇게 4번에 걸쳐 영화 <사도>에 나오는
궁궐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추석 연휴가 며칠 남았습니다.
편히 쉬시고, 건강한 명절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