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3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다가오는 새벽 4시, 2019-20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다. 기존에는 16강부터 준결승까지 홈&어웨이로 2경기씩 진행했지만, 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포루투갈에서 모두 단판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첫경기의 스코어를 두번째 경기에서 뒤집는 흥미진진한 경기도 볼 수있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박진감이 매력적이었다면 이번 시즌의 단판 방식은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선수들의 투지가 느껴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남의 잔치에 나도 모르게 설레였던 걸까? 지난 밤 아스날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인 줄 모르는 꿈이었기에 잠에 깬지 수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소름끼치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게 너무 짜릿했다. 스포츠뉴스 기사의 댓글에선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결승 상대인 바이에른 뮌헨에 비해 언더독인 아스날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축구 전문가들은 대부분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을 점쳤지만 나는 당연히 아스날이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거라면서 선수라도 된 것처럼 의지를 불태웠다.
사실 아스날이 꿈에서만 결승전에 올랐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챔피언스리그 05-06 시즌에 결승에 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아스날 팬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아스날은 현재와는 다르게 매우 강력한 팀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6강에서는 당시 일명 유니버스 클라스, 우주최강의 선수들로 구성된 레알마드리드를 만났었다. 기세가 넘치는 아스날이긴 했지만 그 때의 레알은 대적할 상대가 없는 세계최고의 클럽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스날의 승리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 걸로 안다. 허나 아스날킹, 티에리 앙리의 미친듯한 속도와 드리블로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뚫고 결승골을 때려 박는다. 그 한골을 2차전까지 꿋꿋하게 지켜내며 레알마드리드를 밟고 8강으로 올라간다.
힘겹게 올라가도 쉽지 않은 세계최고를 노리는 팀들. 유벤투스를 만난다. 아마 그 때부터 였을까? 당시 18살이었던 파브레가스가 1차전에서 1득점 1도움이란 기록을 세우며 유벤투스마저 무너뜨린다. 물론 두번째 득점을 킹앙리.
그렇게 4강에 비아레알을 만나 콜로투레의 득점을 2차전까지 가지고 간 아스날은 대망의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다.
상대는 당시 레알마드리드와 견주는 세계최고의 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 세상에 강한 팀은 다 이기고 올라온 아스날이었기에 더 이상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 그런 예측들이 소용이 없었다. 살아남는 팀이 강한 팀이 될 그 순간이었으니까.
어찌보면 그들이나 그걸 지켜보는 팬들에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전반전 18분 만에 퇴장을 당하고 마는 골키퍼 옌스 레만을 보고야 말았기 때문에. 퇴장은 교통사고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는 불상사다. 아르센 벵거는 당시 아스날의 공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로베르 피레스를 빼고 골키퍼 마뉴엘 알무니아를 투입한다. 한 명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리드해 나갔던 아스날이었지만 10명이라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아쉽게 패배하고 만다.
당시 아스날은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프리미어리그 팀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랐던 팀이었기 때문에 그 기대와 동기가 남달랐다. 그만큼 밀려오는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아스날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이미 증명해놨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비록 벵거의 은퇴 이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기력과 성적으로 현재는 유로파리그도 간신히 입성하는 아스날이지만 아르테타가 지휘봉을 잡은 후로 서서히 상승세의 분위기를 타는 아스날이다. 그렇기에 지난 밤에 내가 꾸었던 꿈은 어느새 이루어 질지도 모르겠다. 3년안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아르테타의 인터뷰에서 묵직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뜬금없지만 '가짜사나이' 의 이근대위가 버릇처럼 했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