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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건하 Dec 05. 2021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이 그저 그런 이유.






-12월 1일부터, 붕 떠있는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10월 초 바디 프로필 촬영을 마친 뒤로 줄곧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매일 두 시간 가까이하던 운동은 물론, 잠들기 전에 습관처럼 펼쳤던 책 한 페이지도 제법 무거웠으니까. 준비하는 동안 많이 힘들었으니 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보상심리에 어언 한 달을 취해 있었다. 사실 이래도 되나 싶은 적이 많았는데, 단 몇 초였고 그 생각을 씻어내는 건 불행하게도 너무 쉬웠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박해질 땐 해로운 감정들이 줄을 짓는다. 내가 봐도 한심한 내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자괴감을 필두로 내가 게으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열심히 살았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은 열등감, 내 기준에서 마음의 기브 앤 테이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느끼면서 찾아오는 허무함까지. 찬 바람에 마음이 갈대처럼 휘청거리다 못해 한가닥씩 부러지는 이 시기엔,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것들을 줄곧 느끼며 힘들어한다. 의외로 이러한 감정들은 보통 인스타그램에서 불이 붙는다.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듯 보일 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는 듯한 모습이 보일 때. 그게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 이제까진 혼자만의 과하고 쓸데없는 상상력이라 생각했지만, 꽤나 자주 이런 자학에 빠뜨리는 건 분명 비슷한 목적을 가졌을 때도 있었을 터. 이런 감정의 악순환 속엔 항상 소중한 사람들이 걸려 있다. 아마 소중해서.


 간혹 그런 그들이 미워지기도 하고 다신 보지 말아야겠다며 애써 체념도 해보는 내 모습에 견디지 못한 나머지 '단기 인스타그램 삭제 기간'을 자처했다. 어차피 며칠 뒤면 또다시 스크롤을 내리고 있을 내 모습조차도 싫었지만 결론은 그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순수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다. 단 며칠이라도 '나'를 좀 더 챙겨야 했다. 또, 일방적인 상상으로 그들을 정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나'로 살아간다. 그 이미지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나는 회사와 같은 특정한 목적이나 이윤을 취해야 하는 집단에서는 자의적으로 만든 '나'로 살아간다. 그 속의 어느 누구에게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힘들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적 없이 그저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들이 원하는 '나'로 만들어졌다. 정작 그들이 원하지 않는 '나'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살아지는 중이다. 처음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그렇다. 내가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사람들이 늘 내게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보통의 존재, 이석원-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그저 그런 모습으로 일관됐었으니까. 단지 스스로가 문제임을 인정하는 데까지 다다르는 게 싫거나 쉽지 않았을 뿐이다. 흔히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을 심리학에선 '기질'과 '인격'으로 칭한다. 타고난 성격의 기질과 유년기에 형성된 인격은 후천적으로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 형성된 '습관적 성격'과 본인의 직책이나 역할에 따라 형성된 '역할적 성격'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알면서도 변하지 않으려 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역할적 성격'을 고쳐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항상 타인을 위한 '나'에서 나를 위한 '나'로.



 음악을 듣는 걸 참 좋아하던 나였는데, 한동안은 어떤 노래도 소음처럼 느껴져서 자체적 음소거를 하고 지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빈자리의 허전함처럼 다가온 청각의 부재가 다시 플레이리스트를 열게 했다. 직전의 나는 꽤나 텐션이 높았었나 보다. 온통 욕설로 가득한 미국 힙합이거나 내적 댄스를 일으키는 EDM 천지였다. 당장은 잔잔한 음악이 듣고 싶어 검색을 하다가 Alan Walker의 새 앨범이 출시된 지 하루밖에 안된 것을 보게 됐다. 의도치 않게 아티스트의 이름에 이끌려 전곡 재생을 하다가 'Not You'라는 곡에 꽂히게 됐다. 사실 가사의 내용도 모른 채로 멜로디와 보컬만 들었다. 간혹 그 멜로디 자체만으로 가사가 유추되곤 하는데, 나의 감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해석된 가사를 찾아봤다. 온몸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요즘의 내 심정을 바라보면서 쓴 것 같았다. 우연히 찾아 듣게 된 노래가 내 마음과 같았던 적이 있었나. 사실 필연이었을까?


Alan Walker & Emma Steinbakken - Not You [PLAY]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들을 자꾸만 밖으로 내보내려 했던 걸지도. 항상 마음과 머릿속에서 잡을 수 없는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던 것들이, 이렇게 글로 남겨 놓으면 어느새 한 움큼 손에 쥐어져 있다. 버려도 좋고 주머니에 넣어도 좋다. 앞으로 나로부터 의미를 갖는 그 모든 것들은 어떤 '나'로 존재했는지로 결정된다.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내가 사는 사람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에 너무 늦거나 빠른 경우는 없다.

네가 하고 싶을 일을 하라. 꿈을 이루는 데에 제한 시간은 없으니까.

너는 변할 수도, 머물 수도 있다. 이곳에 규칙 따윈 없다.

우린 최선을 다할 수도 있고 최악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난 네가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네가 놀라워할 만한 것들을 보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느끼길 바란다.

너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길 바란다.

만약 조금이라도 후회가 남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길 바란다.


- F.SCOTT FITZ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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