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와 목표 그리고 적절한 장치
모든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최우선가치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기획 의도다. 프로그램의 확실한 목표는 여기서 나온다. 거기에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절한 장치가 곁들여지면 완벽한 삼중주가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이하<페이크>)는 파일럿임에도 완벽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만 하다.
<페이크>의 기획 의도는 가짜뉴스와의 정면승부다. 승부에는 단계가 있다. 상대를 이기려면 주먹을 휘둘러야 하고 그 전에 펀칭을 배워야 하고 그러려면 상대를 제대로 봐야 한다. 이건 <페이크>의 확실한 목표와 같다. 하나씩 살펴보고 장치가 적절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이제 가짜뉴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심각함을 체감하진 못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절대 악으로 볼 명분이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페이크>는 가짜뉴스 피해자를 집중 조명한다. 평당 1억 원 부동산 피해자와 정의기억연대 대표, 배우 반민정의 인터뷰가 뼈대가 된다. 거기다가 전문가 방송을 가장한 광고, 빠르게 확산하는 가짜뉴스에 비해 정정 보도한 기사는 알려지지 않는 현실 등을 제시하며 언제든 시청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시청자는 이런 장치에 공분을 일으키며 한편으론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을 한다. 영화 <서치>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관객도 공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곤 뉴스 리터러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서치>의 강력한 장치는 모니터 속 마우스를 따라가는 관객의 체험과 여기서 오는 긴장감이다. <페이크>도 마찬가지다. 진행자 김지훈이 의뢰를 받아 방 안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 인물과 영상 통화를 하는 펙트체킹 과정을 시청자가 따라간다.
어떤 시사 프로그램도 취재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진 않았다. 취재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그러나 <페이크>는 시청자와 함께 팩트체킹 하면서 그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고 뉴스 리터러시의 기본자세인 '의심하기'를 각인시킨다.
응? 알긴 알겠는데... 막상 하려니까 안 된다. <페이크>를 기획한 장호기 PD는 "시청자가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뉴스 리터러시'를) ‘함께 해보자’는 캠페인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가벼운 분위기를 넣었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취재 피디 그리고 김지훈과 김정현 아나운서의 작위적인 연기와 브리핑, 뜬금없는 유머를 장착한 자막, 일본 제일당원을 취재한 영상은 마치 <생생 정보통>을 보는 것처럼 가볍다.
하지만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다고 팩트체킹까지 쉬워지는 건 아니다. 이 방송에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캠페인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펙트체킹의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할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몰입은 하지만 직접 행동하진 않는다. 내 딸은 집에서 안전히 귤 까먹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 장치는 독이 되었다. 가벼움으로 텐션이 떨어진 것이다. 톤 앤 매너가 흐트러졌다. 모니터를 들고 오면서 만든 처음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했다(2화에서 나아지긴 했다). 무리한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과한 장치를 넣었고 이 욕심은 결국 안 그래도 좁은 파일럿에 사족을 넣어버렸다.
백 점은 아니지만 장치 선택이 탁월했다. 설정한 목표를 하나 줄이고 작위적인 상황 설정만 다듬는다면 강한 몰입을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 될 거라 생각한다. 팩트체킹은 언론의 역할이며 방송을 통해 시청자가 뉴스 리터러시의 기본자세를 함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이 방송이 레귤러로 편성되어야 할 이유는 몰입형 팩트체킹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잘 되면 기획 의도도 전달하고 제대로 일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이런 방송을 만든 MBC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