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6강 때에 맞는 삶의 아름다움

김기석목사님 성서학당 강의(전도서 3:1-8)

by 하정

인간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집착이다.

인간관계의 파탄은 나의 기대와 상대의 불일치로 인해 일어난다.

잘 사는 것은 마음을 다해 이웃을 섬기되 지나치게 많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가 소개한 <인간의 버려야 할 것>

뜻 의意, 반드시 필必, 굳을 고固(고집), 나 아我


[나 아我: 손 수手 + 창 과戈 =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손에 창을 들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찌르는 것이다.

그래서 자아가 강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많이 힘들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서 편한 것은 그의 모난 부분들이 나를 찌르지 않는 경우이다.

자아가 강하면 지적질을 하고, 늘 누군가를 고쳐 주려고 한다. 그래서 자아가 강한 사람을 만나면 피하고 싶어 진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위의 말씀처럼 내 손에 든 창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틀에 갇힌 자아를 좀 더 큰 세상으로 열어가는 자아로 자꾸만 자기를 열어가야 한다.

성숙한 자아를 가질 때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마음에 집중함으로 삶의 순간이 하나님의 은총의 때임을 자각하라.


<전도서 3:1-8>

전도서 3:2-8절까지 14쌍 28개의 때가 나온다.

전도자가 14쌍의 때를 언급하며 한없이 확장되는 인생의 때를 보여준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기한: 정해진 시간, 때때로 덧없는 시간, 흘러가는 시간

때: 시간


그리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뉜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자식 중 하나가 자신의 권력을 빼앗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여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아이를 삼켜버린다. 여기서 자식을 삼키는 것은 시간의 폭력성을 의미한다.(매정하고 사멸하며 멈춰지지 않는 시간)

크로노스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 결정되는 시간, 생로병사의 시간,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체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길이, 삶의 경험적 시간, 질적 시간, 주관적, 특별한 시간, 결단의 시간을 의미한다. 돌입하는 수직의 시간이며 의도와 상관없이 갑자기 우연히 떠오르게 된 기억처럼 비의지적 시간이다. 하나님은 나의 순간에 돌입하심으로 잊고 있던 일들을 기억하여 회개하게 하신다.


인간은 두 가지 시간을 다 잘 살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목격함이고

미래의 현재는 기대다.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늙었다.

우리의 태어남은 되돌아감의 시작이고 전진과 후퇴는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더욱 때를 분별해야 한다.

인간은 파종하는 존재이며 수확하는 존재이다.

인생의 모든 때는 추수의 때이다.


호세아 8: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안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건강한 것을 심을 때 아름다운 수확이 있다.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역사는 치료를 향한 여정이다.

국가적 재난인 경우 국가도 치료가 필요하다.

나라나 문명도 수명을 다하면 무너진다. 무너져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웃고 있는 지금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울 때도 올 것이라는 걸 알아야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웃을 때 울 때를 생각하고 울 때는 웃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인생의 시간은 파동을 치며 간다.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 적군을 정복한 후, 적군의 우물에 돌을 채워 넣어 확실한 승리를 선언하는 것

돌을 거둘 때: 밭을 경작할 때


어미새는 둥지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턱으로 둥지를 고른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먹이를 바로 주지 않고 짧은 거리를 두고 날아와서 먹게 한다. 자란 만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끼가 날 수 있게 되면 어미 새는 새끼들을 쫓아버린다. 이것이 새의 사랑이다.


인간은 새의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다.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성경에서 찾음은 주님께로 돌아오는 때를 의미하기도 한다.

잃음은 원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면 삶이 누추해진다.


참 삶이란 부단히 버리는 것과 든든히 붙잡는 것의 통일이다. <전우익_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성경에서 옷을 찢는 것은 참회의 의미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때때로 굳은 마음을 찢어야 할 때도 있다.


꿰맴은 슬픔의 봉합을 의미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을 때의 문제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많다.


집회서 20:5 [공동번역 로마 가톨릭 성경]

침묵을 지켜 현명함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지껄임으로써 남에게 미움을 사는 사람도 있다.

대답을 못해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답할 때를 기다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가 오기까지 침묵을 지키나 어리석은 사람은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수다를 떤다.

너무 수다를 떠는 자는 남의 빈축을 사고 말로 남을 누르려는 자는 남의 미움을 받는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소음이다. _스위스 작가 막스 피카르트(1888-1965)



잠잠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은 불의를 보는 순간이다.


무릎이 구부러지는 건

세상의 아름다운 걸 보았을 때

굽히며 경배하라는 것이고

세상의 올곧지 못함을 보았을 때

솟구쳐 일어나라는 뜻이다

때를 가리지 못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

<때 1>_반칠환 작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부정 속에 담긴 긍정적 요소를 발견하며 모든 때를 아름답게 살 줄 아는 자가 지혜자이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말하기 좋아하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미움을 사진 않았을까?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지껄인 적은 없을까? 왜 난 침묵하지 못하고 듣는 걸 즐겨하지 못할까. 말하기 좋아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한때 잠언을 읽으며 말을 줄이고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고자 결심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또 한편으로 불의를 봤을 때 나는 말을 했을까 생각해 봤다. 피해 볼까 봐 침묵하진 않았을까?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말해야 할 때는 가만히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면 안 된다. 난 과연 그랬을까? 난 불의를 보고 일어났던가.


새가 아기새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딸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느려 답답해도 기다리며 스스로 하게끔 더욱 노력해야겠다. 아기새가 날게 되면 어미새가 쫓아버린다는 부분에선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임을 더욱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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