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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Apr 24. 2024

선교지에서 일어난 기적

 지은은 교회에서 빌린 45인승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악취가 났다. 지은은 검지 손가락을 코에 살며시 대고 숨을 들이마시며 창문을 살짝 열었다. 버스는 빈자리가 별로 없었고 그들 중 절반은 탈노숙 한 사람들이었다. 탈노숙을 한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들에게선 특유의 냄새가 났다. 선교팀장은 전날 그들 귀에 딱지가 지도록 여러 번 반복하며 힘줘 말했다.

"오늘 집에 가서 꼭 샤워하세요. 내일 우리만 타는 게 아니라 다른 성도들도 같이 타니깐 꼭 씻고 오셔야 해요."

아침 이른 시간, 출발 시간에 늦은 사람은 없었다. 탈노숙한 분들은 교회에서 마련해 준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되자 버스는 출발했고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 들른 후 4시간 정도 걸쳐 전라도의 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점심쯤 됐다.

 선교는 3박 4일로 진행되며 숙박은 인근 모텔을 미리 예약해 뒀다. 각자 배정된 숙소에 짐을 푼 후 버스를 타고 연계 교회로 갔다. 연계 교회는 성도가 10명도 안 되는 개척교회였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선교대원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선교대원들은 몇 명씩 팀을 이뤄 팀별로 동네에 나가 주민들에게 사영리를 전했다. 또한 전도물품을 나눠 주며 다음날 있을 행사를 소개하고 주민들을 초대했다. 


 지은은 배정된 팀사람들과 함께 전도를 하러 나섰다. 같은 팀인 분들 중 4분이 탈노숙한 남자분이셨다. 대부분 지은의 아버지뻘로 연세가 있으셨다. 지은은 같은 팀인 우혁과 함께 4분을 챙기면서 동네로 나아갔다. 지나가다 동네분이 계시면 다가가 말을 걸고 사영리를 전하며 내일 있을 행사를 안내했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분이 계시거나 밭에서 일하는 분을 만나는 정도였다. 어느 정도 전도가 끝난 후 지은과 우혁은 팀 내 탈노숙하신 분들을 챙겼다. 그들은 오랜 시간 노숙 생활을 해서 다들 몸이 좋지 않았다. A집사님은 허리가 안 좋아 바닥에 앉지 못하고 소파에나 겨우 앉았다. B집사님은 평생 택시, 버스 운전을 하신 분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한쪽 다리를 절어서 지팡이를 집고 다니셨다. 지은과 우혁은 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사진도 여러 장 찍어드리고 멋진 장소도 모시고 갔다. 좀 덥긴 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집사님들은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셨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됐다. 점심시간이 되자 마을회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분 한분 오셨다. 선교대원들은 상차림을 하고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한 후 삼계탕을 갖다 드렸다. 식사가 끝난 후 성극, 목사님 말씀 등이 진행됐다. 이후 원하는 분들에게 염색과 팩, 매니큐어를 발라 드렸다. 오후 3시쯤 일정이 끝나자 목사님은 선교대원들을 데리고 근처 유명 관광지로 갔다. 목사님 얼굴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서 기쁜 아이처럼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목사님은 같이 온 선교대원들 중 특히 탈노숙하신 분들을 관광지에 모시고 가고 싶어 했다. 서둘러 달려가 입장권을 구매하고 대원들에게 나눠주면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은은 그런 목사님을 보며 그가 얼마나 성도들 특히 탈노숙한 분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부모님을 좋은 곳에 모시고 온 효자 같은 표정과 행동이었다. 관광지를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이 됐다. 오늘은 선교 3일째다. 오전에 팀별로 마을로 나가 주민들을 전도해서 교회로 모시고 왔다. 2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전도를 받아 교회로 오셨다. 우리는 교회에 식사를 마련하고 주민들과 식사를 했다. 이후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졌다. 첫날 전도되어 어제 마을회관에서 뵙고 오늘 또 뵌 분들도 있어서 그런지 선교대원과 부쩍 친해진 분들도 여럿 보였다. 우리는 주민들 한분 한분 사진을 찍어 드리고 인쇄기로 사진도 한 장씩 인화해 드렸다. 한 분이라도 전도되어 앞으로 교회에 나오시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며 그날의 선교를 마무리했다.


드디어 선교 마지막 날. 이제는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떠나는 날이다. 선교대원들은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으며 선교지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런데 선교 내내 허리가 아파 소파에나 겨우 앉았던 두 분이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 앉으면 안 되지 않으세요? 소파에 앉으세요. 힘드실 거 같은데."

다들 걱정되어 그분들에게 한 마디씩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허리 다 나았어요."

지은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 나았다고?'

지은은 그분들을 다시 유심히 쳐다봤다. 그분들은 선교 기간 내내 나이 들고 노인처럼 보였는데 10년은 젊어진 사람처럼 건강해 보였다. 그들은 담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혁은 옆자리에 앉은 지은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저렇게 앉아서 더 나빠지시면 어쩌지?"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이후 더욱 상태가 나빠질까 걱정되는 듯했다. 그건 지은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및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짐 챙겨서 버스 타기 전 마지막으로 선교팀장이 대표기도를 했다. 그는 오랜 시간 노숙자 전도와 탈노숙한 분들을 챙기는 팀에서 리더를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가 3박 4일의 선교 일정을 마치고 이제 서울로 떠납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선교 잘 마무리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올라가는 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거라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후 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로암 찬송 부르고 출발합시다."

실로암은 이 팀에서 거의 주제가 같은 곡이었다. 매주 노숙자 전도를 갈 때마다 부르기도 하고 주일 예배 때도 매번 부르는 찬송이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서 주님 맘 속에 사랑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선교 대원들은 가사를 곱씹으며 목소리 높여 실로암을 부르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 실로암이 넘쳐흘렀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울기 시작했고 한 명 한 명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거의 울부짖음이 됐다. 그렇게 다들 울면서 찬송을 마쳤다. 


저녁 7시쯤 서울에 있는 교회로 돌아왔다. 다들 짐을 챙기고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향했다. 지은 역시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선교 기간 같은 팀이었던 B집사님과 마주쳤다. 선교기간 내내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고 그래서 관광지 구경도 못하고 입구에서 기다리셨던 분이다. 인사를 나누는데 그동안 익숙했던 지팡이가 안보였다.

"집사님. 지팡이 어디 갔어요?" 지은이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

"버렸어요. 다리가 다 나았어요. 하나님이 고쳐 주셨어요."

지은은 어안이 벙벙했다. 

B집사님은 다리를 절지도 않고 힘차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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