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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Oct 03. 2024

나를 마주 보는 방법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참여하는 독서모임에 내면을 글로 쓰는 사람이 있었다. 난 내면에 별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내면을 글로 옮기는데 관심이 없었기에 마음을 글로 옮긴 적이 거의 없었다. 몇 년 전 감사일기가 유행했을 때 '이런 게 감사하다'란 식으로 써 본 적은 있어도.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할 때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 장문의 글을 써왔다. 그리고 자기 차례에 읽어 주었다.

'그녀는 내면에 관심이 많구나. 난 왜 그렇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작가가 글 쓰는 방법 중 자기 내면에 대해 종이에 그대로 쓰고 찢어버리는 것에 대해 쓴 글을 보게 됐다. 어차피 찢어버리니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작성하고 찢어버리라는 것이다. 그 글을 접하는 순간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종이를 찢어버리면 아무도 못 보니깐'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내면 글을 쓰기 싫은 것은 누군가 내 마음을 아는 게 싫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알려주기 겁났던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써도 아무도 모르는 방법은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매주 내면을 적어와 우리에게 읽어주는 그녀가 매우 용감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방법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그것을 해 보았다. 난 내가 관심 없는 것은 옆에서 말해도 못 듣지만 관심 있는 것은 저 멀리서 말해도 소머즈처럼 귀를 쫑긋 하고 듣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를 매우 무디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매우 예민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옆사람이 "너 괜찮아?"라고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경우가 있고, 어떤 때는 아무도 못 느끼지만 내면이 요동칠 때가 있다. 가끔 이렇게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으로 무의식이 휘저어질 때가 있다. 마치 버블밀크티가 가라앉았다가 빨대로 휘저으면 위로 올라오듯 말이다. 그럴 때 가끔 숨쉬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런 일이 있을 때 종이에 솔직하게 내 감정을 써보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A랑 만나면 화가 나고 그녀의 말에 짜증이 났는데 정확히 그 이유를 몰랐다. 그날도 그녀를 만나고 짜증이 난 상태에서 마음을 해소하고자 종이에 내면을 솔직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이런 말 했는데 짜증이 났다'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글을 이어가다 보니 그녀의 말을 싫어하는 내 마음이 보였다. 그러면서 욕도 쓰고 '지가 뭔데' 이런 말도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찢어 버릴 거니깐. 그렇게 쓰다 보니 내가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마주한 마음은 알고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데 그녀가 잘난 척을 하니 그 꼴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난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됐다. 나름 교회 다니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척, 겸손한 척 살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마음을 만난 것이다. 나 자신에게 나도 속고 있었다. 난 나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쇳덩이처럼 단단한 내 마음속에 교만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에게 났던 화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화가 나는 원인을 알게 되니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내 무의식의 실체를 만나니 내면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제 내면의 쇳덩이 같은 교만을 깨부수어 주세요'라고.


 이 날 이후로 무슨 일로 감정이 어지러울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최대한 솔직하게 내 마음을 작성한다. 주변에 무슨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방법을 추천해 주기까지 한다. 꼭 무슨 일이 없더라도 나를 알고 내면을 알고 싶을 때 해보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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