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성서학당 요약(전도서1:8~18)
오늘의 본문 전도서 1:8~18
전도서는 무가치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돕는다.
전도서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는 변화에 노출되어 피곤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그리워한다. 예를 들어 고향 같은 것.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물만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 물에 들어가는 나 자신도 변함을 의미한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로 인해 피곤한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그리워한다.
인간의 오감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언제나 만족을 지향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결핍된 존재이므로 무언가 채워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족이라는건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그리움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없다.
나르시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숲속 요정 에코(메아리). 자기애에 빠져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을 즐겼던 나르시스는 결국 에코의 고백을 거절한다. 고백을 거절당한 요정 에코는 목소리만 남기고 사라진다. 자기애에 사로잡힌 자는 타인의 사랑에 응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에로스(EROS)는 결핍된 인간이란 뜻이다. 결핍이 있어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플라톤의 책 [향연]에 소개된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 보자.
아프로디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신들. 그 중 풍요의 신 포로스도 온다. 그는 신들의 음료인 넥타를 많이 마셔 취한 후 잠이 든다. 이때 잠든 포로스를 보고 반한 가난의 여신 페니아가 그의 옆에 눕고 둘 사이에 에로스가 태어난다. 에로스는 아버지인 포로스(풍요의 신)와 어머니 페니아(가난의 신)의 영향으로 행복을 누리지만 동시에 결핍을 느끼는 존재가 된다.
인간은 에로스(결핍)적 존재이다. 전도서는 인간의 욕구는 채워질 수 없음을 말한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기도 하다. 새로운 상품을 구입해도 허무한 이유는 또 다시 신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도서1: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변화되는 문명 가운데 살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부분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 철학자)는 인류의 정신이 기원전 8세기-2세기 사이 약 600여 년 간 사이에 완성됐다고 했다. 이 시기에 석가모니, 조로아스터, 이사야 등 예언자, 공자, 맹자, 장자 등 사상가들이 존재한다. 칼 야스퍼스는 그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기원전 8세기-2세기 사이를 인류문화의 중심축이 되었다는 뜻으로 차축시대라고 불렀다.
성경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예레미야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전도서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인간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잊혀질 것을 두려워한다.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건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얘기일까?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라는 뜻이다.
전도서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마음(레브(히)): 마음, 심장, 정신
지혜(호크마(히)): 인간의 재능
세상의 모든 일을 알려고 했지만 알 수 없기 때문에 얻는 괴로움. 즉 유한성의 자각을 의미한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존재로 부르는 것도 내 능력이 아니다.
전도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음을 자각하고, 세상의 중심은 창조주 하나님이며 자신은 그 분의 일부분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지혜란 굽은 것을 굽은 것으로 인식하되 굽은 것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굽은 것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면 굽어졌을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며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전도서 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전도서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미친 것들(인간 정신 속의 광기, 망상)인 광기의 본질까지도 이해하려한 전도자
미련한 것들: 이성적,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전도자는 미친 것들인 광기의 본질과 미련한 것들도 이해하려 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전도서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자는 세상을 이해하려하는 인간의 헛된 자부심을 깨닫는다.
진짜 지혜란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자기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관련 답을 찾기 위해 책도 읽어보고 유튜브에서 강의도 들어봤지만 명확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성경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고민이 생기거나 곤란에 처했을때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설교와 강의를 들었지만 그 역시 완벽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오늘 전도서를 공부하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인간이란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내가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성경 역시 인간이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성경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강의를 적용해 본다면 내가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겠다.
성서학당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전도서2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