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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Dec 30. 2023

그 남자의 저녁 식사

그는 마트 카트를 잡고 어떤 남자의 도움을 받아 푸드코트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기요. 제가 눈이 잘 안 보여서요. 이거 먹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그의 목소리는 꽤 커서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 정도였다. 손에는 마트에서 구입한 듯한 비빔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는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크다고 느껴질 정도로 동그란 눈을 갖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기름을 바른 김처럼 새까맣고 서로 딱 붙어있었다. 옷은 여기저기 거무스름한 때가 묻어 있었다. 손톱은 그림책에 나오는 마녀 손톱처럼 끝이 뾰족하고 길었다. 동그란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있는 그는 중년 남자 같았지만 말하는 건 어린아이 같았다. 옆쪽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금세 조용해졌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이거 먹어야 하는데 숟가락이 없어서요. 숟가락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는 푸드코트에 있는 한 식당 직원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푸드코트 중간으로 와서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제가 이걸 먹어야 하는데 눈이 안 보여서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는 식당에서 숟가락을 빌리지 못한 듯했다. 아까 보였던 남자도 없었다.

이때 한 중년 여자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그에게서 악취가 나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제가 눈이 안 보여서요. 이걸 데워야 하는데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비빔밥을 받아 비닐 포장지를 벗겼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말했다.

"이거 따뜻하게 데워 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비빔밥 뚜껑을 열었다. 아래에는 밥이 있고 위쪽에는 종류별 반찬이 여러 구분된 칸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반찬들 가운데 고추장이 있었다.

"네. 전자레인지에 돌려 드릴게요. 이 반찬들 밥 위에 올려서 같이 데워도 되죠?"

그녀는 위쪽의 플라스틱을 들어 반찬을 밥 위에 쏟으면서 말했다.

"네. 고추장은 빼고 해 주세요."

그녀는 그를 빈 식탁에 앉혔다.

"이거 데워 올 테니깐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고추장은 식탁에 올려놓은 후 밥과 반찬이 담긴 일회용기를 갖고 한쪽에 마련돼 있는 전자레인지로 갔다.

"삐~~~~~~~~"

그녀는 전자레인지에서 일회용기를 꺼내 그에게 갖고 갔다. 그리고 고추장을 넣으려고 뚜껑을 열었다.

"잠깐만요. 제가 매운걸 잘 못 먹어서요. 고추장은 조금만 넣어주세요."

그는 그녀가 고추장을 넣는 것을 쳐다보며

"이만큼이요. 이제 됐어요. 그리고 숟가락이 없는데 얻어다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와 함께 있던 다른 여성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인근 카페에서 포크를 빌려왔다.

포크로 비빔밥을 비벼주며

"포크로 드세요. 숟가락은 없대요."

"제가요 눈이 잘 안 보여서 포크로 먹으면 다 흘려요. 숟가락 얻어다 주시면 안 될까요?"

그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그녀들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둘은 대화하더니 한 여성이 또 다른 식당에 가서 일회용 숟가락을 얻어왔다. 그에게 갖다 주자 그가 큰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들은 자기들 일이 끝난 듯 다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후 식사를 마친 그가 다시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제가 한약을 먹어야 하는데 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컵이요?"

"네. 제가 혼자 살아서 건강을 챙겨야 해서요. 이거 데워서 따뜻하게 먹게 도와주세요."

"그럼 어떻게 해 드릴까요?"

그는 비빔밥을 먹었던 그릇을 갖고 와서

"여기에 한약을 넣고 데워주세요."

그녀는 정수기로 가 뜨거운 물을 비빔밥 용기에 넣고 한약이 담긴 비닐팩을 집어넣었다.

"컵이 있어야 하는데요. 한약을 먹어야 해서요."

그녀는 식탁으로 갔다.

"이거 아까 제가 음료 마시던 컵인데 빨대로 마셨어요. 이거 괜찮을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컵을 세면기에서 물로 세척 후 한약팩을 찢어서 컵에 따르고 그에게 주었다.

그는 한약을 먹은 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혼자 살아서요. 눈도 잘 안 보이고요."

"네~ 네~"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커서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서 그런지 그의 말에 재빨리 답했다.

그는 그녀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 후 푸드코트를 나섰다.



보통 사람들에게 누워서 떡먹기인 비빔밥도시락 먹기가 그에게는 살기 위한 생존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저렇게 컸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에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옷차림과 손톱을 보며 오랜 시간 돌봄 받지 못한 삶이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빔밥도시락을 사고 한약을 먹는 모습에서 '어디선가 도움을 받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도 중년 여성들이 없었다면 그는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도움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정책에 관한 글을 찾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블로그 글을 찾아보았다. 아직 한국은 장애인정책에 대한 재정지출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2020년 기준)이라고 한다.



2020년 한국의 장애인정책 재정지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0.8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현물급여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에 근접하는 것과 달리 현금급여 지출은 OECD 평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임.


- 최근 한국의 전체 사회지출 수준이 OECD 평균에 빠르게 근접하는 것과 달리 장애인정책 재정지출 수준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어 전체 사회지출 내에서의 지출 불균형이 조속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


- 한국의 장애인정책 재정지출 수준이 낮은 데에는 협소한 포괄 범위와 낮은 급여 수준이 모두 작용한 것으로 판단되며, 상대적으로 미약한 현금급여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편과 확대가 없다면 장애인정책 재정지출의 낮은 수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      

[출처]한국 장애인정책 재정지추의 구성과 추이: OECD 국가 비교를 중심으로 [보건복지 Issue&Focus 제442호] 작성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은 노약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다. 어린아이, 노인, 장애인, 아픈 사람들이 사는데 불편함이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전에 위라클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휠체어를 타고 편의점에 가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하반신 마비인 그는 휠체어를 타고 편의점에 들어가지 못했다. 서너 개의 작은 계단이 있어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알게 됐다. 이후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끌면서 그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약자일수록 거동에 어려움이 있으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이런 불편을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가 약자들도 배려하고 함께 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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